며칠 전부터 연일 눈이 내린다. 장마철에 날마다 비가 내리듯 그렇게 눈이 내린다. 한밤중 천지는 숨을 죽인 듯 고요한데 창밖에서는 사분사분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따금 앞산에서 우지직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가 잠시 메아리를 이룬다. 소복소복 내려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생나무 가지가 찢겨 나가는 것이다.

 

   어제 밖에 나갈 예정이었지만 길이 막혀 나가지 못했다. 고속도로와 국도는 제설작업으로 어지간하면 길이 뚫리는데 지방도로와 산골짜기는 눈이 녹아야 길이 열린다. 지금까지 내려 쌓인 눈도 무릎께를 넘는데 며칠 더 내리면 허벅다리까지 빠질 것이다.

 

   한겨울 깊은 산중에서는 행동반경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마루방에 있는 난로에 불을 지핀다. 전날 해질녘에 불쏘시개와 장작을 미리 들이고 물통에 가득 물도 길어다 놓아야 한다. 난롯불이 활활 타올라 집 안이 더워지면 이때부터 내 하루 일과는 시작된다.

 

   예불하고 좌선, 날이 새면 털모자와 목도리, 장갑, 눈에 신는 장화를 신고 생활공간에 필요한 최소한의 길을 가래로 친다. 먼저 개울가에 이르는 길을 치고 밤새 얼어붙은 얼음장을 깬다. 시냇물 소리가 다시 살아난다. 다음은 정랑(뒷간)으로 가는 길을 치고 디딤돌이 얼어붙지 않도록 싸리비로 쓸어 낸다. 사람은 먹는 것만큼 또한 내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집 뒤에 있는 나뭇간으로 가는 통로를 쳐야 한다. 짧은 거리지만 지붕에서 녹아내린 눈이 쌓여 얼어붙으면 드나드는 데 장애가 된다. 마지막으로 뒤꼍에 있는 헌식대(큰 바위 아래 있는 반석)로 가는 길을 낸다. 산중에 사는 짐승들에게 먹이를 주는 곳이다. 요즘처럼 눈이 많이 내려 쌓이면 먹이를 찾기가 어렵다. 눈 위에 난 발자국으로 보아 토끼와 노루가 다녀가는 것 같다. 물을 먹으로 개울가에 온 노루와 마주칠 때 우리는 서로 놀란다.

 

   눈 치우는 일을 마치고 집안으로 들어오면 난로 위 돌솥에서 물이 끓는다. 겉옷을 벗어 말리고 난롯가에 앉아 공복에 차를 마신다. 뭐니 뭐니 해도 공복에 마시는 차가 가장 향기롭다.

 

   한겨울 내 오두막에서는 낮 동안은 주로 난로가 있는 마루방에서 지내게 된다. 지난 가을 다람쥐들이 부지런히 월동 준비를 할 무렵, 나도 게으르지 않게 겨울철에 땔 장작을 마련하느라고 땀깨나 흘렸었다. 유비무환, 미리 준비해 두면 근심할 일이 없다.

 

   이 난롯가에서 몇 권의 책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 헬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감명 깊게 읽었다. 헬렌은 스코트 니어링을 만나 55년의 세월을 함께 지내면서 덜 갖고도 더 많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그들 두 사람 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그 자취는, 남아 있는 우리에게 빛을 전하고 있다.

 

   백 살을 살면서 세상을 좋게 만들고 지극히 자연스런 죽음을 품위 있게 맞이한 스코트 니어링, 그리고 그를 만나 새롭게 꽃 피어난 헬렌은 그들의 건강과 장수를 위한 생활태도를 이렇게 말한다.

 

   적극성, 밝은 쪽으로 생각하기, 깨끗한 양심, 바깥일과 깊은 호흡, 금연, 커피와 술과 마약을 멀리함, 간소한 식사. 채식주의, 설탕과 소금을 멀리함, 저칼로리와 저지방, 되도록 가공하지 않은 음식물. 이것들은 사람에 활력을 주고 수명을 연장시킬 것이라고 하면서, 약과 의사와 병원을 멀리하라고 충고한다.

 

   흙을 가까이하면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살아간 그들이 장수와 건강의 비결로써 약과 의사와 병원을 멀리하라고 한 말에는 큰 의미가 담겨 있다. 약에는 부작용이 따르고, 의사 자신도 병자일 수 있다. 그리고 병원이 병을 낫게도 하지만, 없던 병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묘법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제시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라.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

 

   집, 식사, 옷차림을 간소하게 하고 번잡스러움을 피하라.

 

   날마다 자연과 만나고 발밑에 땅을 느끼라.

 

   농장일이나 산책, 힘든 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이라.

 

   근심걱정을 떨치고 그날그날을 살라.

 

   날마다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 나누라. 혼자인 경우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무엇인가 주고,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를 도와라.

 

   삶과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라. 할 수 있는 한 생황에서 유머를 찾으라.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는 하나의 생명을 관찰하라. 그리고 우주의 삼라만상에 애정을 가지라.‘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은 대목은 스코트가 ‘주위의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으로 기록한 그의 유서다. 그의 소원대로 사후를 마무리한 헬렌 또한 지혜롭고 존경스런 여성이다. 스코트가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는 어떤 선사의 죽음보다도 깨끗하고 담백하고 산뜻하다. 죽음이란 종말이 아니라 다른 세상으로 옮겨감인데, 그런 죽음을 두고 요란스럽게 떠드는 요즘의 세태와는 대조적이다.

 

   스코트는 70대에 노령이 아니었고. 80대는 노쇠하지 않았으며, 90대는 망령이 들지 않았다. 이웃 사람들의 말처럼 스코트 니어링이 백 년 동안 살아서 서ㅔ상은 더 좋은 곳이 되었다. 그의 삶을 우리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자루 촛불 아래서 이 글을 마친다.

 

글출처 : 오두막 편지(法頂 스님, 이레)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