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 묻혀서 지내다가 엊그제 불일암을 다녀왔다. 남쪽에 갔더니 어느새 매화가 피어나고 있었다. 남지춘신(南枝春信)이라는 말이 있는데. 매화는 봄에 햇볕을 많이 받는 남쪽 가지에서부터 꽃을 피운다고 해서 이런 말이 생긴 것 같다. 남쪽 가지에 봄소식이 깃들여 있다니 그럴듯한 표현이다.

   기왕에 심어 놓은 매화인데 생육 상태가 안 좋아 재작년 가을에 자리를 옮기고 거름을 듬뿍 묻어주었더니 활기를 되찾아 올해에는 꽃망울이 많이 맺혀 있었다.

   나무뿐 아니라 사람도 있을 자리에 있지 않으면 자신이 지닌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어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시들고 만다.

   이번에 불일암 내려가면서 수선 다섯 뿌리를 가지고 가 돌담 아래 심어주었다. 이 일을 마치고 나니 숙제를 한고 난 후처럼 마음이 아주 홀가분했다. 이 수선에는 사연이 있다.

   재작년 가을 한라산에 억새꽃을 보러 갔을 때, 남제주 대정읍에 있는 추사 유배지에 들른 일이 있었다. 현지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세한도(歲寒圖)>의 실경이 대정 향교에 있다는 말을 듣고 물어 물어서 일부러 찾아갔었다.

   향교를 수리중이고 그 곁에 수백 년 묵은 노송이 한 그루 서 있는데 곁에 있던 한 그루는 오래 전에 죽어 배어낸 그루터기만 남아 있었다. 그날은 흐리고 바람이 불어 세한도의 분위기처럼 삭막하고 쌀쌀한 늦가을 날씨였다. 돌담 아래 여기저기 수선의 구근이 드러나 있는 걸 보고 몇 뿌리 주워 왔었다.

   남제주 쪽에는 한겨울 길가에서 피어나는 재래종 수선을 흔히 볼 수 있어, 남국의 정취가 한결 더하다. 그때 가져온 수선을 화분에 심어 가꾸어보았지만 잎만 무성하게 자랄 뿐 끝내 꽃을 보지 못했다. 작년 봄 잎을 잘라내고 구근만을 거도우 이 다음 불일암에 내려가면 심어줄 요량으로 화분에 담아둔 채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다.

   며칠 전 지붕에서 눈이 녹아내리는 낙숫물 소리를 들으면서 광을 정리하다가 빈 화분을 밖에 내놓으려고 덮어 놓은 화분 받침을 열었더니, 까맣게 잊고 지낸 수선의 구근에서 뾰족이 새잎이 올라와 있었다. 이것을 본 순간 내가 못할 짓을 했구나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화분 받침에 덮여 깜깜한 빈 화분 속에서 1년 가까이 지내고도 죽지 않고 살아 잇는 그 생명력이 놀라웠다.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 앞에 옷깃을 여미고 싶었다.

   새삼스런 일이지만, 생명력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수선의 구근 속에 무엇이 들어 있기에, 흙에서 떠나 1년 가까이 지내면서도 죽지 않고 새싹을 틔우고 있는 것일까. 생각할수록 그것은 풀 수 없는 생명의 신비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절대 신성이요, 불성이다.

   유정(有情)이건 무정(無情)이건 모든 존재에는 다 불성이 있다는 말도 이 생명의 신비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식물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 속에 이렇듯 신비한 생명의 씨앗이, 기운의 깃들여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살기 위해서 이 세상에 있다. 따로 이유나 목적이 있을 수 없다.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신성한 이유요, 목적이다. 열악한 환경, 어둠 속에 갇혀서도 시들지 않고 새싹을 틔우는 현상이 바로 이것이다.

   이런 생명체를 함부로 꺾거나 죽게 한다면 그것은 큰 허물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 자신 속에 들어 있는 생명의 씨앗이 그만큼 꺾이고 시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의 뿌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인 생명의 뿌리에서 나누어진 가지가 나와 당신이며 또한 우리 이웃이다.

   요즘 우리는 경제적인 큰 어려움 앞에서 삶에 두려움과 위협을 느끼고 있다. 기업만이 파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도 파산을 당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사람이 경제에만 매달리면 경기가 나쁠 때는 경제와 함께 침몰한다.

   이런 때일수록 마음의 안정과 여유가 절실하다. 경제 외적인 곳에서도 얼마든지 삶의 길은 열려 있다. 눈길을 돌려 우리 둘레를 한번 살펴보라. 여기저기서 생명의 신비인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그것은 자연이 무상으로 베풀어주는 은혜다. 어려운 경제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때나마 새봄에 피어난 꽃 앞에 마주 서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건성으로 스쳐 자니가지 말고 차분한 마음으로 꽃잎에 눈길을 모아 꽃술 하나하나와 그 오묘한 빛깔과 모양을 살피고 그 향기에 귀를 기울여보라. 꽃향기는 코가 아니라 귀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문향(聞香), 마음을 활짝 열어 무심히 꽃을 대하고 있으면 어느새 자기 자신도 꽃이 될 수 있다.

   옛날 꽃을 몹시 사랑한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꽃이 피기 시작하면 침구까지 메고 가서 그 꽃나무 아래 묵으면서 꽃의 개화를 지켜보고 만발했다가 시들어 떨어지는 과정까지 낱낱이 살펴본 뒤에야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가히 꽃 같은 사람이다.

   조선시대의 환성 지안 선사는 ‘봄구경’이라는 시를 이렇게 읊었다.
지팡이 끌고 깊숙한 길을 찾아
여기저기 거닐면서 봄을 즐기다
돌아올 때 꽃향기 옷깃에 배어
나비가 훨훨 사람을 따라오네
요즘 남녘에서는 매화가 한창이란다. 옛 시인의 말대로 ‘남해의 신선이 사뿐히 땅에 내려 달밤에 흰옷 입고 와서 문을 두들긴다’는 그 매화가 한창이란다.

글출처 : 오두막 편지(法頂 스님, 이레) 中에서......
 
 
 

  
2012.02.22 (16:12:32)
[레벨:29]여명
 
 
 

들꽃을 좋아해  캐오기도 하고

마구 밝기도 하고...

종교를 갖고 없어진 버릇 입니다.

생명인데....

안스럽고 가엽고 절대 손을 못대구요

밟지도 못하구요...ㅎㅎ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신..

늘 감사하며 산답니다.

우리막내 세실리아가

오래전 스님을 찾아가 취재를 하고 와서는

참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으셨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