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떠나 6, 7년 시정(市井)의 절간에서 사는 동안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적지 않았다. 얻은 것이라면 이 어지러운 시대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면서 세상 물정을 몸소 보고 느낀 점이었고, 잃은 것은 내 안에 지녔던 청청한 빛이 조금씩 바래져 갔던 점이다.

   수행자에게 있어서 자기 내면에 지닌 빛이 바래져간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수행자가 빛의 기능을 잃는다면 자신뿐 아니라 그 둘레까지도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게 마련이니까.

   시정에서 뭣보다 아쉬웠던 것은 내가 기댈 만한 숲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한동안 그 그늘 아래서 사유하고 행동하던 울창한 숲도 날로 비대해만 가는 수도권에 침식을 당하고 말았다. 밖에서 밀려드는 소음이 너무 두터워 내 안에서 움터 나오는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빛이 바래져갔던 것이다.

   산승(山僧)의 본거지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숲이 있는 적정처(寂靜處). 지난해 가을 숲속에 산거(山居)를 마련하여 훌쩍 귀환하였다. 마치 한 마리 산짐승이 들에 나가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지친 몸으로 옛 보금자리를 찾아 돌아온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뜻을 같이하던 동료들 곁을 떠나온 미안함의 무게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지만, 건강과 빛을 잃어가던 내 처지로서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숲에는 질서와 휴식이, 그리고 고요와 화평이 있다. 숲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안개와 구름, 달빛과 햇살을 받아들이고, 새와 짐승들에게는 깃들일 보금자리를 베풀어준다. 그리고 숲은 거부하지 않는다. 자신을 할퀴는 폭풍우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이런 것이 숲이 지니고 있는 덕인 모양이다.

   숲으로 돌아오자 우선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흙을 만지고 나무들을 대하니 시정에서 묻은 대가 씻기어 갔다. 맑은 바람을 쏘이고 시원한 샘물을 마실 때 시들었던 내 속뜰이 조금씩 소생하기 시작했다. 침묵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서 숲에 새로운 물감이 번지고 새들의 목청에 물기가 배자, 나도 한 그루 정정한 나무인 양 온몸에 푸른 수액(樹液)이 돌았다. 외부의 소음에 매몰되어 들리지 않던 저 ‘밑바닥의 소리들’이 조금씩 들려오는 것이었다.

   흙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김을 매면서 손수 가꾸어 먹으니, 자연의 질서에 새삼 머리가 숙여진다.

   흙과 나무와 무로 이루어진 자연에는 거짓이 없다. 뿌리고 가꾼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 질서 앞에서는 억지나 속임수 같은 게 용납이 될 수 없고, 또한 그 세계 안에서는 아무것도 쇄신(刷新)할 게 없다. 본래 갖추어진 그대로이니까. 그저 진로써 대하면 진실의 응답이 있을 뿐, 끈기 있게 기다리면서 길들일 줄 알면 되는 것이다.

   지난 봄 숲에 새 물감이 풀리고 있을 무렵 자연의 조화를 지켜보면서 나는 여러 가지로 배운 바가 많았다.

   나무들은 저마다 자기 빛깔을 잎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그 어떤 나무도 자기를 닮으라고 보채거나 강요하진 않았다. 저마다 자기 빛깔을 마음껏 발휘함으로써 숲은 찬란한 조화(調和)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나무들이 한결같은 빛깔을 하고 있다면 숲은 얼마나 답답하고 단조로울 것인가. 그것은 얼이 빠져버린 고사림(枯死林)이지 생명이 깃든 숲은 아닐 것이다.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허공에 가지를 펼치면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나무들이기 때문에 자기답게 살려고 자신의 빛깔을 내뿜고 있는 것이다. 저마다 자기 나름의 빛깔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토록 찬란한 조화를 이룬 것이다. 날이 갈수록 그저 획일화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우리로서는 그 장엄한 조화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에게 자연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한 흙과 나무와 물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정복의 대상은 아니다. 몇 시간만 비를 내려도, 몇 치만 눈이 쌓여도 벌벌 기는 우리 주제에 정복이란 가당이나 한 말인가. 그 질서와 관용 앞에서 인간은 분수와 역량의 한계를 알고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 인간의 배경은 피곤한 도시문명이 아니라 ‘그대로 놓여진’ 자연일 것 같다. 그 안에서 우리는 사람답게 사는 법을 거듭거듭 배워야 할 것이다. 인류사상 위대한 종교와 사상이 교실 아닌 숲에서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자연은 인간에게 영원한 모성(母性)인 것이다.

   그런데, 요 근래 우리 둘레의 자연은 무슨무슨 구실로 말할 수 없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한번 파괴된 자연은 다시 회복될 길이 없다는 데에 안타까움이 더하다. 주말 같은 때 산사(山寺) 주변을 살펴보라. 거기서 우리는 오늘 이 땅의 뒤뜰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 나라 국민의 자질은 수출고나 소득증대의 숫자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들이 자연을 얼마만큼 아끼고 사랑하느냐에, 자질의 척도를 두어야 할 거라는 생각이다.
<1976 . 8>

글출처 : 서 있는 사람들(法頂 스님, 샘터) 中에서......

  
2012.10.11 (14:26:15)
[레벨:29]id: 고운초롱
 
 
 
 
(125.139.127.135)
  
2012.10.11 (14:36:13)
[레벨:29]id: 고운초롱
 
 
 

이곳

법정스님의 글방

감동적인 글들을 오늘도 읽으며 맘의 평온을 느껴 봅니다.

왜냐구요?

이렇게도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데..

많은 교훈을 깨달게 해주는 거 같아서 참 좋습니다.ㅎ

 

암튼

변함없이 좋은글 만나게 해 주신 울 감독오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온제나 고맙습니다.

고운초롱~드림..  

 
(125.139.127.135)
  
2012.10.14 (20:07:42)
[레벨:5]메지나
 
 
 

아름답고 배움의 글 너무나 좋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183.101.111.142)
  
2012.10.25 (22:58:19)
[레벨:4]천일앤
 
 
 

나이 더 들면 꼭 자연으로의 귀환을 꿈꿉니다 

지금은 공부가르치랴 등등 바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