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글 - 법정스님께서 남기신 글을 올립니다.

글 수 293
번호
제목
글쓴이
공지 법정스님의 의자 1 file
오작교
1799   2022-08-06 2023-02-27 19:46
133 순수한 모순
오작교
302   2021-11-14 2021-11-14 16:53
6월을 장미의 계절이라고들 하던가. 그래 그런지, 얼마 전 가까이 있는 보육원에 들렀더니 꽃가지마다 6월로 향해 발돋움을 하고 있었다. 몇 그루를 얻어다 우리 방 앞뜰에 심었다. 단조롭던 뜰에 생기가 돌았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노라면 모차르트의 청렬...  
132 새벽 달빛 아래서
오작교
301   2021-11-14 2021-11-14 14:10
예불을 마치고 뜰에 나가 새벽달을 바라보았다. 중천에 떠 있는 열여드레 달이 둘레에 무수한 별들을 거느리고 있다. 잎이 져 버린 돌배나무 그림자가 수묵으로 그린 그림처럼 뜰 가에 번진다. 달빛이 그려 놓은 그림이라 나뭇가지들이 실체보다도 부드럽고 ...  
131 풍요로운 아침
오작교
301   2021-11-09 2021-11-09 16:55
산중에는 고요와 거룩함이 있다. 특히 아침나절의 산은 더욱 아름답고 신선하다. 들이마시는 공기에는 숲 향기와 밤새 내린 이슬기가 배어 있다. 이와 같은 신선한 아침을 잘 맞이할 수 있어야 그날 하루의 삶도 알차다. 이 거룩한 시간을 신문이나 방송 등 ...  
130 겨우살이 이야기
오작교
300   2021-11-14 2021-11-14 17:11
내 오두막에는 유일한 말벗으로 나무로 깎아 놓은 오리가 한 마리 있다. 전에 살던 분이 남겨 놓은 것인데 목을 앞으로 길게 뽑고 있는 것이 그 오리의 특징이다. 누구를 기다리다 그처럼 목이 길어졌을까. 방 안 탁자 위에서 창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 그야...  
129 당신의 눈을 사랑하라
오작교
300   2021-11-13 2021-11-13 08:36
몇해 전 눈병이 나서 조직검사까지 해가면 병원을 드나들 때 막막하게 육신의 비애를 느꼈었다. 그때 생각으로는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너무 많이 보아버린 과보로 눈병을 앓는다고 여겨졌다. 눈이 나으면 이제는 시력을 아끼면서 사람으로서 꼭 볼 것만을 가...  
128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
오작교
299   2021-11-14 2021-11-14 17:16
요즘 강원도 고랭지에는 감자꽃이 한창이라 더러는 발걸음을 멈추고 귀엽게 피어난 그 꽃과 은은한 향기에 반쯤 취할 때가 있다. 감자꽃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나는 고장에 와 지내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가 감자를 먹을 때 그 꽃과 향기도 함께 음미할...  
127 떠오르는 두 얼굴
오작교
299   2021-11-14 2021-11-14 17:07
여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마루에서 지냈다. 밤에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방을 쓰지 않았다. 천장이 낮고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방은 여름을 지내기에는 답답하다. 나 혼자서 사는 오두막이라 남의 시선이 없어 정장을 할 필요가 없다. 헐렁한...  
126 사유(思惟)의 뜰이 아쉽다
오작교
299   2021-11-13 2021-11-13 08:28
8년 가까이 산 위에서 살다가 산 아래 골짜기로 내려와 지내는 요즘, 문득문득 느껴지는 것은 뜰이 인간의 생활에 얼마나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가이다. 밝은 햇살과 맑은 바람이 지나고, 멀리 툭 트인 시야와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  
125 텅 빈 속에서
오작교
298   2021-11-13 2021-11-13 08:52
겨울비가 내린다. 눈이 와야 할 계절에 비가 내린다. 메마른 바람소리만 듣다가 소곤소곤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도 촉촉이 젖어드는 것 같다. 이런 날 산방(山房)에서는 좌선이 제격이다. 덤덤히 앉아서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되니까. 선(禪)의 명제...  
124 해도 너무들 한다
오작교
297   2021-11-14 2021-11-14 16:21
사람이 살 만치 살다가 인연이 다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유일한 증거로서 차디찬 육신을 남긴다. 혼이 나가버린 육신을 가리켜 어감은 안 좋지만 시체(屍體)라고 부른다. 육신을 흔히 영혼의 집이니 그림자이니, 그럴듯하게 표현하고들 있지만 평소에는 그...  
123 종점에서 조명을
오작교
296   2021-11-14 2021-11-14 16:40
인간의 일상생활은 하나의 반복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대개 비슷비슷한 일을 되풀이하면서 살고 잇다. 시들한 잡담과 약간의 호기심과 애매한 태도로써 행동한다. 여기에는 자기 성찰 같은 것은 거의 없고 다만 주어진 여건 속에 부침하면서 살아가는 범속한 ...  
122 당신은 조연인가 주연인가
오작교
295   2021-11-14 2021-11-14 17:06
장마철에 별고들 없는지. 해마다 치르는 계절적인 일이지만 겪을 때마다 새롭게 여겨지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겪는 현재의 삶이 그만큼 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개울물이 줄어들만하면 다시 비가 내려 그 자리를 채워주고, 넘치게 되면 날이 들어 스스...  
121 일에서 이치를
오작교
295   2021-11-14 2021-11-14 16:30
두어 달 전에 출가 수도하겠다고 들어왔던 사람이 오늘 아침 하산(下山)을 했다. 그의 말인즉, 일이 고되어 견딜 수가 없으니 내려가야겠다는 것이다.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붙들지 말라고 했으니 굳이 만류하지 않았다. 그는 수도생활이 솔바람소리...  
120 인디언 '구르는 천둥'의 말
오작교
295   2021-11-14 2021-11-14 14:06
여기저기서 꽃이 피고 잎이 열린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귀에 익은 새소리들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난다. 자연의 질서, 순환의 흐름은 이렇듯 어김없다. 먼지와 소음과 온갖 공해로 뒤덮인 번잡한 길거리에서, 그래도 철을 어기지 않고 꽃과 잎을 펼쳐 보이는 ...  
119 우리 인성이 변해간다
오작교
295   2021-11-12 2021-11-12 21:19
인물을 주로 다루는 사진작가 한 분이 찾아와 이런 말을 남기고 간 일이 있다. 그는 대학에서 사진에 대해 강의하는 교수이기도 한데, 그때 말이 ‘한국인의 얼굴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문득 어떤 영감의 심지에 ...  
118 눈 고장에서
오작교
294   2021-11-14 2021-11-14 16:57
며칠째 눈에 갇혀 바깥출입을 못하고 있다. 남쪽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무지무지하게 눈이 내리고, 내리는 양만큼 그대로 쌓인다. 눈 구경이란 한가한 사람들이 할 일이고, 눈 속에 묻혀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길...  
117 중노릇하면서 빛만 많이 졌다
오작교
294   2021-11-13 2021-11-13 09:05
음력 7월 15일 백중날이자 양력으로는 8월 15일 광복절인 이날, 새벽부터 이슬비가 뿌리고 아트막한 산들에는 연무가 어렸다. 법회가 시작될 즈음에는 비가 그치고 날이 무더워졌다. 법당 양옆에는 한여름 더위를 조소하듯 주황색 능소화가 만발했다. 법문 시...  
116 그대 자신이 더위가 되라
오작교
294   2021-11-13 2021-11-13 08:21
장마철이라 하루도 뻔한 날이 없이 빗줄기가 지나갑니다. 잠결에 장 밖 파초 잎에 후드득거리는 빗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산봉우리에는 연일 짙은 비구름이 감돌고 있습니다.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끈적거리는 이 삼복더위가 다 귀찮고 불필요한 것 같지만, ...  
115 식물도 알아 듣는다
오작교
293   2021-11-14 2021-11-14 16:58
난(蘭)이 한 분 나와 함께 겨울을 나고 있다. 안거에 들어가기 전 내 처지를 잘 알고 있는 도반(道伴)이, 빈 산에 홀로 지낼 것을 생각해서 말벗이라도 하라고 기왕에 있던 분에서 포기가름을 해서 안겨준 것이다. 나무와 꽃을 좋아하면서도 나는 방안에 화분...  
114 모두가 혼자
오작교
293   2021-11-14 2021-11-14 16:30
이따금 겪는 일인데, 그때마다 뭐라 말하기 어려운 야릇한 기분에 부푼다. 시내에 나갔다가 우리 연못의 금붕어를 생각하여 비스킷 같은 걸 사들고 가게를 나설 때, 마음 한구석에 맑은 샘물이 흐른다. 세상에서는 이런 걸 가리켜 부성애(父性愛)라 하는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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