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사랑하되 그 사랑하는 바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성인이란 스스로 삶을 도모하는 범인과 차이가 있겠지요. 범인들은 주린 제 배를 채우는 데 바쁘고 제 삶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남과 다투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성인은 무릇 살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지 않음으로 사사로움을 뛰어넘습니다. 성인은 사특함이 없기 때문에 보되 보는 바를 드러내지 않고 사랑하되 사랑하는 바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성인은 무위함으로 영원합니다.

 

   밤새 작달비 퍼붓더니 날이 개며 뚝, 그쳤습니다. 하천에 불은 물 흘러가는 소리 우렁차네요. 비 온 뒤끝이라 대기가 닦아낸 듯 깨끗합니다. 옻샘 약수터 쪽 물오른 초록으로 울울창창한 숲은 형광물질을 발라놓은 것처럼 선명하지요. 간밤에 비가 퍼부었는데도 호수 물은 많이 빠져나가 바닥이 드러나 있습니다. 벌써 장마를 대비해 수문을 다 열고 물을 빼는 것이지요.

 

   극채색의 고요 속에 잠긴 새벽 풍경 속에 서 있자니 어렸을 때 시럽 감기약 먹은 것처럼 현기증이 납니다. 이 세상 몇 번 다시 살아도 내 그리움들은 영영 채워질 것 같지 않습니다. 불길한 것ㅎ은 그 그리움을 핑계 삼아 이 세상을 자주 드나들 것 같기 때문이지요. 새로 나온 영화나 별미 음식을 빌미로 자꾸 당신을 바깥으로 꼬여내듯이 이 세상은 또 내 속에 그리움으로 움푹 팬 결핍의 자리들 몇 개 파놓고 그걸로 날 유혹할 것 같습니다. 구린 입 냄새가 제 코로 분별 안 되듯 내 그리움의 추접스러움도 내 눈과 코로는 식별이 되지 않는 거지요. 세상에 떠도는 그리움이란 것들은 다 비릿하고 늙은 암캐의 발정처럼 어느 정도는 추접스러운 거지요.

 

   언 땅에 어깨가 빠지도록 괭이질을 해도 괭잇날은 퉁퉁 튕겨나갑니다. 현실은 언 땅과 같이 녹록치 않고, 그걸 일구는 건 어깨가 바질 듯 버겁지요. 실패는 많았고, 보람은 적었습니다. 분단 이전의 식민지 시대였더라면 저 대륙의 낯선 땅들은 어지간히 밟고 헤매 다녔겠지요.

 

   어느 순간 내 손에 쥔 괭이자루는 그대로였으나, 괭이자루 끝에 달렸어야 할 괭잇날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하지만 손바닥에 물집 여러 번 잡혔다가 다시 터지고, 그 아렸던 상처들 아문 흔적이 내 속에 아직 많습니다. 나, 벼랑 끝에 서 있으나 용기 없어 뛰어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지요. 당신, 와서 내 등을 힘껏 밀어주세요!

 

   묵정밭에 키 큰 망초꽃들은 군락을 이뤄 흰 꽃을 피우고, 거무튀튀한 들 뱀은 나와 숨바꼭질을 합니다. 너무 오래 씹어서 단물 다 빠진 이 삶을 아직도 씹고 있지요. 아직 다른 세상으로 주소를 이전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미진한 것이지요. 어제 아침엔 먹다 남긴 고등어자반에 하얗게 곰팡이 핀 걸 보았지요. 고등어자반 담은 냄비 뚜껑을 덮고 밥맛을 잃어 수저를 놓아버렸습니다. 내 살림 형편이 이러합니다.

 

   시내 수구레 집에서 수구레무침에 소주 한 병 비우고 와서 글 쓰는 부역 두 시간 가까스로 채우곤 허리 펴니 저녁이었지요. 저 깨끗한 공기 속에 수굿이 솟아 있는 산, 한 오라기 물안개 하늘로 피어 오르고, 저 고요 속에 월경 주기도 알리지 않은 채 지아비 없이 수태한 물……. 마침내 해산 고통이 땅을 덜어 식물들을 죄 뜯어 놓고 말겠지요!

 

   며칠 전 만월이었지요. 그 만월의 밤에 수태한 세상의 모든 여자들에게 복 있겠지요! 만월의 밤에 집개들이 짖는 걸 멈추고 고요에 들었더니 집 아래 무논의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한껏 볼륨을 높였습니다. 그 볼륨 높인 개구리들 울음소리를 들으며 텃밭의 복숭아나무에 다닥다닥 매달린 복숭아들은 여물고, 땅속에 줄기를 키우는 감자들의 씨알은 둥글게 커가겠지요. 만월에는 외로움도 목까지 차오르지요. 달이 야위면 외로움도 함께 야윕니다. 

 

   내 사는 꼬락서니야 중국집 자장면 빈 그릇을 덮었던 신문지처럼 역겨운 음식 쉰내가 난다 해도 저 초록들의 향기와 경이가 홀연하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이윽고 참담해집니다. 당신을 두고 혼자 밥 끓이며 사는 내 삶에 대한 자긍심을 어젯밤 갑자기 한꺼번에 잃어버렸지요. 명상을 한다고 차가운 마룻바닥에 담요를 깔고 두어 시간 버텨보지만, 마음이 모아지지 않고 자꾸만 흩어집니다. 이렇게 사는 것 치욕스럽지요. 밤새 토사물 흥건한 이불 위에 토한 것도 모른 채 코 박고 죽은 듯 잠들었다가 깨어난 이튿날 아침처럼.

 

글 출처 : 느림과 비움(장석주, 뿌리와이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