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엽서 - 대한민국 60년] 대우빌딩


상경한 이들에게 '충격' 줬던 서울의 상징


서울역에 내린 촌뜨기가 대우빌딩을 보고 감탄을 연발하며 쳐다보고 바라보고 올려다보고 우러러봤다. 서울 깍쟁이가 다가와 말하기를 "2500원 내놔! 내가 저 빌딩지기인데 남들이 한 층 볼 때마다 100원씩 받게 돼있어." 시골 사람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500원만 받아. 난 5층까지만 봤으니까." 시골 사람은 자기가 속은 줄 모르고 서울 놈 속여먹은 얘기를 고향 사람들에게 의기양양하게 들려주었다. 국문학자 김열규가 들려주는 대우빌딩 유머다.

시인 함민복은 '장항선'(〈눈물은 왜 짠가〉)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작업복 한 벌, 책 몇 권, 트레이닝복 한 벌, 쌍절곤 하나가 든 체크무늬 트렁크를 들고 서울역에 내렸다. 밤 아홉시. 대우빌딩 쪽으로 길을 건너갔다. 중학교 때 테니스 선수 생활을 하던 친구 경수가 서울로 시합을 갔다 와서 유리창 하나가 한 층인, 문 하나만 열어놔도 금방 표시가 나는 건물이 햇빛에 반짝반짝 빛난다고 감탄하던 대우빌딩."

1977년 6월 지상 23층 지하2층 연면적 13만2560㎡ 규모로 완공된 대우빌딩은 당시 국내 미증유의 초고층이었던 데다가, 서울역 앞에 떡 하니 서 있다는 점에서 집단적 기억이자 표상이 되었다. 서울에 첫 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그것은 압도적인 숭고(崇高) 그 자체였다. 신경숙은 '외딴 방'에서 작중 화자의 입을 빌려 그 숭고의 체험을 말한다.
"그날 새벽에 봤던 대우빌딩을 잊지 못한다. 내가 세상에 나와 그때까지 봤던 것 중에 제일 높은 것.… 거대한 짐승으로 보이는 저만큼의 대우빌딩이 성큼성큼 걸어와서 엄마와 외사촌과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여명 속의 거대한 짐승 같은 대우빌딩을, 새벽인데도 벌써 휘황찬란하게 켜진 불빛들을, 어딘가를 향해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두려움에 찬 눈길로 쳐다본다."

대우빌딩은 높이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주변에 다른 고층 빌딩이 없어 '각하가 계신' 청와대가 내려다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대우빌딩 최상층의 유리창은 모두 막혀야 했고, 옥상에는 민간인 출입이 제한되고 대공포가 설치되었으며 군인들이 배치됐다. 수도 서울 대공방위의 일익을 담당하는 건물이 된 것이다.

대우빌딩이 완공된 1977년은 우리나라가 수출 1백억 불을 달성한 해이다. 그 해 5월에 대우그룹은 수단의 영빈관 공사를 2000만 달러에 수주하여 최초로 아프리카 건설 시장을 개척했고,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당시 북한 단독 수교국이던 수단과 수교할 수 있었다. 정부 주도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통한 고도경제성장의 기념비이자 대우그룹의 전성시대를 알리는 상징이 대우빌딩이었다. 그러나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긴 우여곡절을 겪으며 작년 여름, 외국 금융기업 모건스탠리의 부동산펀드에 매각되었으니 이 역시 시대적 상징에 값하는 운명이라 할까.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임웅균-떠나는 마음

출처 : 조선일보 2008.08.21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