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삶에 한 주걱 맑은 물이 되기를
  • 돌아가기
  • 아래로
  • 위로
  • 목록
  • 댓글

백지 명함 / 이 별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오작교 3773

0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 만나는 사람들에게 백지 명함을 내밀었던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거 잘 못 준 거 아닌가요?” 하며 물어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뜻밖에 아무 반응 없이 그 명함을 받아 넣었습니다. 조금 의아한 듯 ‘무슨 심오한 뜻이 있나?’, 아니면 ‘이 사람 또라이 아냐?’ 하는 표정을 짓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내가 타인에게 아무런 판단도 받고 싶지 않은 것처럼, 타인 또한 내게 아무런 판단도 받고 싶어 하지 않는 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름 없이 살고 싶은, 아니 꼬리표 없이 살고 싶은 사람이 세상엔 참 많습니다.

   그러나 한편 세상에 스스로 판단을 받고 싶어 하는 이름들이 넘쳐납니다. 여기서 판단 받고 싶다는 말은 곡 ‘인정받고 싶다’는 말이지요. 판단 받고 싶어 애쓰는 이들의 명함엔 대부분 화려한 직함들로 빛나는 긴 꼬리표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새겨놓은 꼬리표는 결코 마음에 고요함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나 또한 그런 꼬리표를 누군가에게 붙이거나 남들이 내게 달아놓은 꼬리표에 익숙한 채 살아왔습니다.

   남아 있는 생애 동안 백지 수표를 받는 횡재를 바라지는 않지만 한번쯤 누군가가 내미는 백지 명함을 받고 싶은 날이 가끔 있습니다.

글출처 : 이 별에 다시 올 수 있을까(김재진 산문집, 시와시학사) 中에서……
공유스크랩
0
댓글 등록
취소 댓글 등록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목록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92
normal
오작교 16.08.26.17:21 4316
191
file
오작교 16.08.26.17:11 3741
190
normal
오작교 16.08.22.14:51 3684
189
normal
오작교 16.08.22.14:47 3812
188
normal
오작교 16.08.22.14:25 3729
187
normal
오작교 16.08.11.09:41 3705
186
normal
오작교 16.08.11.09:34 3702
185
normal
오작교 16.08.11.09:28 3759
normal
오작교 16.06.01.11:23 3773
183
normal
오작교 16.06.01.11:16 3698
182
normal
오작교 16.03.23.11:00 4077
181
normal
오작교 16.03.23.10:50 3872
180
normal
오작교 16.02.11.14:00 3804
179
normal
오작교 16.02.02.15:57 3827
178
normal
오작교 16.02.02.15:48 3707
177
normal
오작교 16.01.19.15:04 3906
176
normal
오작교 16.01.19.14:43 3824
175
normal
오작교 16.01.15.14:23 3806
174
normal
오작교 16.01.12.10:57 3716
173
normal
오작교 15.11.17.15:50 3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