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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것은 다 혼자다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오작교 3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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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이 떨어지듯 후두득 별이 떨어진다. 장대로 휘젓기만 해도 떨어질 것처럼 지천으로 깔려 있는 별. 오대산 산중에서 보는 밤하늘은 그야말로 무공해 별 천지다. 별 사이로 간신히 보이는 밤하늘의 청정함은 깨끗하다 못해 서늘하다. 


   오대산 산중이건 히말라야 산중이건 총총한 별을 보면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별을 끝없이 세며 누워 있던 노천에서의 그 잠들지 못하던 밤들. 쏴아쏴아 바람에 물결치는 소리를 내는 미루나무 끝에 매달려 있던 그 많은 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별을 보면 외로운 마음이 든다. 상상할 수 없이 먼 거리를 지나 인간의 눈에 닿은 별빛의 그 고독한 여행을 생각하면 내가 사는 지구라는 별이 바다의 섬처럼 외롭게 느껴진다. 별똥별이 쏟아지는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홀로 서 있는 듯한 고독감이 가슴을 싸하게 만든다. 시공을 초월하는 긴긴 여행 끝에 마침내 인간의 눈에 다다른 별빛의 그 외로운 행로가 마음을 흔들어놓는 것이다.


   히말라야의 작은 왕국 부탄에서 만난 별 생각이 난다. 수도인 팀푸를 떠난 자동차는 바퀴의 끝과 절벽의 끝이 함께 물려 돌아가는 아찔한 굽이를 넘고 또 넘어 깊은 산 한가운데에 있는 숙소에 일행을 부려놓았다. 별을 보러 그곳까지 간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별이 가장 많이 나온다는 새벽 시간에 시계를 맞춰놓은 채 잠이 들었다.. 살갗을 스치는 산중의 공기는 신선했고, 검다 못해 푸르게 느껴지던 밤의 깊이는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동굴 같았다.


   알람이 울리고, 그 소리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창가로 달려갔다. 허름한 커튼을 젖히고 싸늘한 유리창에 눈을 대는 순간, 저절로 "악!"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별 때문이었다. 하늘은 촘촘히 박힌 별의 광채로 축제의 밤처럼 휘황했다. 마음이 바빠진 나는 얼른 외투를 걸치고 삐거닥거리는 문을 밀면서 바깥으로 나갔다.


   풀어놓은 등산화의 끈도 제대로 묶지 않은 채 그렇게 바깥으로 막 발을 내딛는 순간, 감자기 다가서는 그림자가 있어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나마스테!"


   인도식 인사였다. 인도와 접경 지역이라 그런지 이곳 사람들의 인사는 인도어였다. 소리의 주인공인 소녀는 담요를 가져다주고 물을 떠다주던 숙소 직원이었다. 이 새벽에 잠도 안 자고 이 아이가 왜 여기 서 있을까 하는 의문은 금새 풀렸다. 새벽에 일어나 별을 보겠다는 내 말을 전해 들은 소녀가 시간이 될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초롱거리는 별만큼이나 맑은 소녀의 눈을 보자 나는 미안함과 함께 애처로움이 밀려왔다. 저 어린 소녀가 낯선 이방인의 별 보는 호사를 위해 잠도 못 자고 있었다니……. 밤을 지키던 소녀의 고독함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 마음이 느끼는 고독일 뿐 소녀의 것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소녀는 어쩌다 산중까지 찾아온 이방인의 호사가 흥미로웠을 뿐, 지겹도록 반짝이는 별을 보겠다며 잠도 자지 않고 일어나는 여행객이 신기했을 것이다. 


   구겨 신은 신발 뒤축을 손가락으로 펴며 나는 소녀를 따라 언덕길을 올라갔다. 쏟아지는 별빛 덕에 길은 환했다. 언덕 위로 올라가 소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던 나는 또 한 번 "윽!"하는 감탄사를 토해야만 했다. 쏟아지는 별빛 아래 은빛 띠 같은 것이 아스라하게 허공에 떠 있었다.


   히말라야였다. 부탄의 히말라야가 머리에 인 만년설을 빛내며 어둠 속에 아스라이 떠 있는 것이다. 달과 별의 빛을 받아 광채가 나는 설산 정경은 신비스러움 그 자체였다. 마치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같이 창공에 떠 있는 산들의 장관, 산 위로 쏟아지는 별의 폭포를 보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감탄사를 토해내는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몸짓에서 그녀가 이 장관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지겹도록 보는 별이 아니라, 소녀에게도 히말하야의 별은 감동과 신비의 대상인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며 나는 소녀의 정성에 답례하기 위해 뭔가 선물할 것을 찾았다. 여행 갈 때마다 허리에 차고 다니던 시계 생각이 났다. 한국의 은행 로고과 찍혀 있는 사은품인 그 시계를 주고 싶었다.


   시계와 함께 히말라야 장학금이라며 10달러짜리 지폐를 손에 쥐여주자 소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티베트에서도 보지 못한 순진무구한 미소를 부탄의 소녀에게서 봤다. 따뜻하고 행복한 미소였다. 그러나 그런 미소는 몰랍게도 부탄의 전통 의상인 스커트를 입고 있는 나이 든 남자들의 얼굴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별을 보고 느끼는 기쁨이야 나 혼자의 몫이지만 새벽까지 기다린 소녀의 순수함이 샘물처럼 찰랑거리며 나를 적셨다. 시계를 주며 나는 소녀와 내가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그 연결은 아득한 옛날 나 어릴 적, 한국으 시골에서 마주치던 미소와 닿아 있는 것이었다. 우리도 저런 미소를 짓던 시절이 있었다.



   막막한 우주에서 각각의 개체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고독한 사건이다. 쏟아지는 별빛 세례를 받으며 나는 황홀감과 함께 가벼운 외로움을 느꼈다. 외로움은 때로 욕망이 사라지고 텅 비어버린 마음에 찾아오는 손님같은 것이다. 외로움은 또한 벼랑 끝에 내몰린 순간 다가오기도 하는데, 인생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혼자만으 순간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어 있는 공간에 음악이 잘 울리듯 혼자라는 공간 속에서 고독은 저만의 깊이를 갖는다. 


   아무도 없는 밤을 지새우며 장미는 저 혼자 향기를 품고, 길 위에서 방랑자는 외로움과 맞서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은 그 모든 것에 반응하지 않고 묵연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외로움 또한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감정에 반응하지 않는 이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으니 그럴 대의 외로움이야말로 텅 비어 가득한 충만함이다.



글 출처 : 김재진 산문집(사랑하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 감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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