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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간 전생 / 이 별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오작교 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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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본 사람인데 어디서 많이 본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사람, 처음 간 장소인데 마치 자주 온 곳처럼 익숙하게 느껴지는 장소.

   프랑스 말로 ‘데자뷰’라고 부르는 기시감을 전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생을 보는 능력, ‘역행인지력(逆行認知力)’이라고 하는 그 능력을 황당한 이야기라며 무시해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평범한 사람에게도 이런 능력은 심심찮게 나타납니다.

   데자뷰 현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우리의 인식능력이 고착된 시간과 공간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정된 시공간의 틀을 뛰어넘는 우주관으로 보면 과거를 거슬러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은 타당성 없는 망상이 아닙니다. 현대 양자물리학에서도 이런 인식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생의 지금이 내게; 미치는 영향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제한적으로 작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생 또한 일종의 자기 창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생에 대해 끝없는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한 스승은 이런 말을 합니다. “지금 그대 자신이 어디 있는지 발견하라. 그 지점이 곧 그대가 온 곳이며 그대가 돌아갈 지점이다.”

   전생을 궁금해하고 다가올 내세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스승이 던진 메시지는 ‘과거나 미래에 끌리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경험한 전생이 아무리 누추하거나 화려하다 해도 그건 이미 과거이며 모든 건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날 뿐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다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스승의 말처럼,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과거나 미래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과거나 미래에 관심이 많을수록 지금 자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또 지금, 이 순간을 놓치는 사람의 미래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여질 수도 없는 법입니다.

   어딘가에 전생이 있다 해도 그것이 내게 미치는 영향은 그것을 의식하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합니다. 전생의 에너지가 내게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그 에너지를 의식하는 범위로 한정됩니다. 전생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는 만큼만 전생은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 사람. 지금, 이 순간을 의식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챙길 수 있는 사람에게 시간은 어딘가로부터 흘러와 또 다른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으로만 존재할 뿐이며, 과거와 미래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가령 누군가 아는 사람을 길에서 마주쳤다고 해봅시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 그의 얼굴을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내 의식 속에서 그는 낯선 사람일 뿐입니다.

   “반갑습니다.” 하면서 말을 건네는 그를 향해 “누구신지요?”하고 되묻는 순간, 그와 나 사이에 함께했던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란 지금, 이 순간 만들어내는 기억에 의해 존재할 뿐입니다. 그 기억을 부정하는 한 과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 또한 나의 창조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일을 깡그리 부인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적어도 부정적인 기억으로부터 지금, 이 순간 어떻게 마음을 지어내느냐에 따라 놓여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역사에 기록된 과거는 대대로 전해질지 모르지만, 내 의식 속의 과거는 나의 창조에 따라 사라지게 할 수도, 머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과거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망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내 마음이 끝없이 지어내고 있는 과거. 그것이 고통스러운 것이건 달콤함이건 간에 그것을 만들어내는 근원은 현재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나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는 한 과거나 미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끝없는 현재만을 살고 있으며, 현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과거에 매달리는 사람은 결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조주 선사는 이런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왜 전생을 기억하는가? 한 번의 생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운데…….’

글출처 : 이 별에 다시 올 수 있을까(김재진 산문집, 시와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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