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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 / 아버지의 뒷모습

오작교 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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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잠이 없던 아버지는 평생 이른 새벽부터 농사일을 하셨다. 예전에는 논 한쪽에 못자리를 설치했다. 직사각형 못자리에 모가 자라는 동안 도랑을 통해 물을 공급했다. 모판에 뿌린 볍씨는 자박자박한 물기가 있어야 뿌리를 내린다. 물이 많으면 볍씨가 뜨고, 물이 적으며 벼가 말라 싹이 트지 않는다. 큰 못자리에 물을 퍼내고 채울 때 쓰는 두레박은 피라미드를 잘라 뒤집어 놓은 모양의 판자로 만들었다. 네 귀퉁이에 끈을 묶어서 퍼 올리는 한 바가지 용량은 20리터 내외였다. 물을 담을 때는 아랫줄을 늘여주고 퍼 올릴 때 아랫줄과 윗줄의 균형을 잡아야 물이 둑 사이로 옮겨졌다. 힘의 균형이 어긋나면 두레박은 엎어지거나 감긴다. 줄이 떨어지면 물을 쏟아지고, 균형이 무너지면 주저앉기도 했다.

   이른 새벽에 두레박질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키 작고 힘 약한 아들은 논두렁에 서서 맨발로 찬 물 속에 선 아버지로부터 두레박질을 배웠다. 물의 무게를 못 이겨 두레박 끈을 놓치거나, 물의 무게로 끈이 떨어지면 낭패였다. 동트기 전, 일을 마쳐야 했던 아버지의 옥양목 핫바지는 항상 논물에 젖어 있었다. 거머리에 뜯긴 장딴지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 뒤따르던 귀로였다. 논배미 하나는 1,500평이 넘는 수렁논이었다. 농약이 없던 때라 여름철에 김매기를 했다. 추수 때는 참게와 붕어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평생 농사일만 하시다 돌아가신 선친은 애주가였다. 60도를 넘던 법성 토종 술을 즐겨 드셨다. 취직 기념으로 사 간 베리나인 골드 양주도 글라스에 따라 단숨에 드셨던 주량이었다. 김제 만경의 일본인 농장에서 일을 하신 아버지는 28세에 16세 어린 신부와 결혼은 정신대 공출 때문이라고 했다. 슬하의 8남매를 둔 대가족 종가의 가장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결혼하였고, 일본에 끌려갔던 동생들과 고모, 조부모 포함, 17명 대가족 장남이셨다. 일제가 만든 삼양사 염전이 만들어지기 전 선친은 소금을 굽는 가마터를 인수하셨다고 했다. 소금가마를 판 사람은 과도한 세금 부담을 피하고자 매각하였고, 이를 모르고 산 아버지는 매도인의 세금까지 덤터기 썼다고 한다. 체납자로 몰려 순사의 매를 맞아 기절하였고, 가마니에 덮어 버려졌다고 했다. 기적처럼 소생하여 반년 동안 소금을 팔아 세금을 냈다. 일제 강점기 모범 납세자로 받은 방짜 유기그릇 세트를 자랑삼아 이야기해 주신 아버지였다.

   혼수상태로 운명하실 것 같다는 소식에 고향 집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둘째 아들 왔어요.”

   아들 목소리를 들은 아버지가 눈을 뜨고 떠듬거리며 말씀하신다.

   “국록을 먹는 사람은 국사에 전념해야 한다.” 핫저고리 속에 나온 마른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고 말한 것이 유언이 되었다. 아버지의 손을 놓고 공무원의 본분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집을 나왔다. 야간 근무가 끝나던 새벽에 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당직실에서 받았다.

   부음을 받고 달려가던 새벽, 길옆에 늘어선 코스모스도 우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글출처 : 아버지의 뒷모습(이준구 수필집, 수필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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