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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놀이 / 아버지의 뒷모습

오작교 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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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하, 아~ 하, 어쩔거나 어쩔거나 불쌍해서 어쩔거나.”

   상여놀이에 메기는 숙부의 선창이 밤하늘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빈 상여를 멘 장정들이 진양조 느린 가락으로 받고 있었다.

   “어허- 넘, 어허- 넘, 어허-넘, 어허- 너엄.”

   “북망산천 멀다더니 바로 앞이 북망일세, 어허지고, 어허지고.”

   “어허- 넘, 어허- 넘, 어허-넘, 어허- 너엄.”

   “삼천갑자 동박삭은 삼천 년을 살았는데 북망산천 가는 길이 어찌 그리 급하셨소. 어허지고, 어허지고.” “어허- 넘, 어허- 넘, 어허-넘, 어허- 너엄.”

   “못-가겠네, 못-가겠네. 한 번 가면 못 올 길을 너를 누고 어찌 가나.” “어허- 넘, 어허- 넘, 어허-넘, 어허- 너엄.”

   삼베 상복과 굴건을 쓴 형제들과 아들, 상복(喪服)을 입은 여인들은 백지로 감은 지팡이를 짚고 죄인처럼 허리를 굽혔다. 어머니와 작은어머니 세 분, 고모 두 분과 시집간 누이 넷, 며느리 두 명이 상여 뒤에 섰다. 누런 상복에 짚으로 만든 허리띠, 산발한 머리 위에는 고리 테를 얹고 있었다. 지팡이에 기대어 가성 곡소리가 시작되었다.

   “아이-고 아이고, 아- 이고 아이고…….

   곡소리에 농담을 걸던 짓궂은 상여꾼도 보였다.

   “외양스럽게 울지 말고 눈에 침이라도 바르고 우는 시늉을 하시오.”

   차일 밖 마당 한쪽에 ‘따다닥’ 소리를 내며 장작불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곡소리는 차츰 구슬프게 퍼졌다. 장작불 옆에 둘러선 구경꾼 눈가에 맺힌 눈물이 모닥불빛에 반짝이다가 이슬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고인은 심덕이 고왔지. 이제 살만하니 돌아가시다니 불쌍하구먼.”

   “아니여 호상이여. 죽음 복 타신 분이여.”

   들어서지 못한 담장 밖 사람들의 소곤거림도 들렸다.

   야밤에 벌어지는 빈 상여놀이는 볼거리 많은 잔치였다. 사계절 어느 때나 상가에서 벌어지던 민속놀이 중 하나였다. 망자의 일생을 회고하는 요령잡이 소리꾼의 사설은 불꽃처럼 퍼져나갔다. 위친계를 통하여 들여온 막걸리 단지와 소주 궤짝, 팥죽이 조문객과 상여꾼, 구경꾼들에게 무한 제공되었다. 상여 앞에 매달아 놓은 새끼줄에는 유족들이 끼운 지폐가 상여꾼들의 움직임 따라 흔들거렸다. 망자의 황천길 배웅에 나선 유족들의 곡소리도 밤하늘에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이별의 슬픔은 망자로 빙의한 소리꾼의 사설에 따라 유족들의 통곡 소리도 변하였다. 삼 년 시묘살이와 백일 탈복, 사십구재와 삼우재 탈상 풍습이 이제는 당일 탈상으로 변화했다.

   주자가례 유교식 장례문화였던 두레와 계, 향약 형태로 이어지던 상여놀이도 사라져 버렸다. 백이십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마을에서 망자의 나이와 신망에 따라 호상도 달라졌다. 볼거리가 흔치 않던 시절에 음식과 술, 소리꾼의 구성진 사설이 있던 상여 놀이는 볼만하였다. 골목 담벼락에서 기댄 아낙들은 망자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였다. 슬퍼하던 동네 사람들은 평생을 같이 살아왔던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에 대한 서러움이라고도 했다.

   빈 상여놀이 때 들었던 소리꾼의 예행연습은 상여 행렬에 서면 더욱 처연했다. 영원한 이별의 순간이 가까워지는 운구 행렬이 유족들의 애달픈 통곡은 보는 이들까지 슬프게 하였다. 산 사람과 죽은 자의 이별의 순간은 언제나 숙연하다. 소리를 메기던 작은아버지는 빈 상여 놀이를 마치신 다음 펑펑 우셨다. 일본 탄광에서 막장 사고로 귀향하여 아버지와 소금을 구워 파신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순사에게 맞아, 죽었다고 거적에 덮인 아버지를 지게로 운반하셨다고 했다. 되살아나신 형님에게 설날마다 음식상을 직접 들고 오셔서 세배를 드리던 모습은 너무 경건하였다. 어느 틈에 아버지 형제 6남매와 작은어머니 한 분, 누님과 형님까지 아홉 분이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모든 분들은 매장되었다. 세 분의 작은아버지 중에서 두 분의 장례까지는 빈 상여놀이가 이어졌다. 소리꾼 셋째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나는 빈 상여놀이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공무원이 되면서 하루 휴가였기에 소리꾼 작은아버지의 장례를 지켜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서울에 사시다 돌아가신 넷째 작은아버지, 둘째 누이와 형님 모두 운구차에 실려 묘지에 안장하던 현장만 지켜보았다.

   초로 같은 인생, 일장춘몽처럼 지나버린 어머님의 청춘을 나는 알지 못한다. 덕진구 금상동 회안대군 묘역 앞 요양원이 새롭게 보였다. 옥상에 나온 노인들은 묘지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눈만 뜨면 바라다보이는 묘지는 모두 가야 할 본향이었다.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는 아직도 꽃상여 타고 선산에 묻히기를 바라시는데…….

글출처 : 아버지의 뒷모습(이준구 수필집, 수필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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