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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라면 / 아버지의 뒷모습

오작교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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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명의 가족이 떠난 무주구천동 스키 여행이었다. 아내는 콘도에서 비용을 아끼자며 두 끼 식사는 라면 여덟 봉지로 해결하자고 챙겼다. 콘도에 도착하자마자 밥솥에 라면 네 봉지만 꺼내 끓이던 중이었다. 이를 본 아이들은 봉지라면 네 개는 너무한다며, 다 끓여 먹자고 소리쳤다. 이때 걸려 온 전화를 받던 아내가 갑자기 사무실에 나가야 한다면 되돌아가자고 서둘렀다. 끓이던 라면이나 먹고 가자는 말에 “집에 가서 먹자.”라는 것이었다.

   아내의 성화로 급하게 운전대에 올라 콘도를 벗어나 전용도로에 오를 때쯤이었다. 화가 난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도대체 집에서 라면을 어떻게 먹자는 거야?” 아내의 대답이 이어졌다. “인터넷으로 당겨먹으면 되지.”

   생필품까지 인터넷을 통해 구입하던 아내다운 답변이었다. 화를 누르며 냉정하게 다시 물었다. “콘도에서 끓고 있는 라면이 퍼지고, 끊다가 화재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져야지?” “아니, 내가 착각했네. 빨리 되돌아가서 먹고 가자.”

   차를 되돌려 덕유산 콘도로 가자고 했다. 중앙선을 U턴하다가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이 여자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 “아니, 이 남자가 남편 맞아? 지금 연말정산과 부가세 신고 기간이라 눈코 뜰 새 없는 사람을 데려와 놓고 어디서 화를 내는 거야?” 아내의 말대꾸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화를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다 벌떡 일어나 보니 꿈이었다.

   침대 옆자리에는 아내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컴퓨터와 씨름하던 아내다. 자정 무렵 갑자기 다리의 마비 증세가 나타났었다. 한의원과 집 근처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어도 차도는 없었다. 민간요법으로 프라이팬에 볶은 소금을 허리에 차고 일하는 아내가 안쓰럽다. 평일 새벽부터 저녁 시간, 휴일에도 재택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아내의 일상이다. 종일 컴퓨터와 씨름하던 아내의 절박한 모습이 꿈에 나타난 것이다.

   꿈이 현실로 변하는 시대가 다가왔다. 얼마 전, 아내의 지인들과 용인 에버랜드에 갔다. 에버랜드 디지털 테마파크 VR 관에서는 홀로그램으로 제작된 가상현실 콘텐츠를 관람하였다. 고글 같은 도구를 눈앞에 장착하고 자연과 역사를 재현한 장면을 시청하였다. 360도 전방위 카메라 앵글 속에 펼쳐진 입체적 화상은 비행기를 탄 듯한 착각이 든다. 시공을 초월한 역사 속 주인공 같은 가상의 현실 같은 환상의 세계였다. 스펙터클한 과거와 현재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제작되었다. IT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경험과 비일상적인 체험을 맛보게 하고 있다.

   기술 발전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영역에 다가섰다. 이미 뉴질랜드에서는 작년 말, 드론을 이용한 피자 배달에 성공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라면을 받아먹으려 했던 꿈같은 일은 드론의 등장으로 가능한 현실이 된 것이다.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하는 알파고 시대는 바둑을 통하여 눈앞에서 확인시켰다. 조리하는 음식을 TV를 통하여 양방향 동 시간대, 같은 음식이 만들어지는 시대가 다가왔다.

   꿈속에서 끓이던 라면을 덕유산 향적봉에서 주문배달로 맛보게 될 꿈같은 현실이 다가오는 중이다.

글출처 : 아버지의 뒷모습(이준구 수필집, 수필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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