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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막이 연 날리기 / 아버지의 뒷모습

오작교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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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달이 남산 위로 두둥실 떠 오르면 우리 집 마당 달집에 불을 지폈다. 시누대 타들어 간 소리는 총소리 같았다. ‘후드득후드득, 뚝 탁 뚝 탁, 타다 탕’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불길이 맹렬하게 처마 위로 올라가면 왕대 터지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팡, 파방, 팡 팡 팡” 잡귀가 도망가기 전, 나부터 혼비백산하여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달과 함께 잡귀와 액을 몰아낸다던 아버지는 마당 한가운데에 모닥불을 준비하셨다. 왕대 몇 개를 사다리꼴로 묶어 세운 다음 대나무 사이에 짚단을 채운다. 시누대와 솔가지를 사다리 주변에 수북이 쌓았다.

   기해년 정월 대보름날은 우수(雨水)였다. 절기 따라 온종일 이슬비가 내렸다. 저녁달을 보고서야 보름날임을 알았다. 달집을 태우거나, 쥐불놀이를 본 지도 까마득한 옛일이 되고 말았다. 대보름날 아침에는 오곡밥을 먹고 더위 팔던 풍습도 사리진 추억이다. 주차하고 나오다가 먹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보름달을 보았다. 액막이 연싸움을 하던 시절을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대보름날 액막이 연날리기대회 광고를 보았다. 하얀 두루마기에 검은 망건을 쓰고 참가하는 연날리기대회 장소가 집에서 바라보는 완산칠봉이었다. ‘거꾸리’ 운동 도주 귀에서 나온 피가 가뜩 신경에 거슬리던 터였다. 기분 전환을 위해 대회 액막이 연을 날려 액땜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비료 포대로 만든 가오리연에 꼬리까지 달고 나갔다.

 

   팔각정 아래 광장에서 노인들이 연을 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학산과 완산칠봉 공간으로 일찍 띄운 방패연 줄이 보였고, 알록달록한 태극 문양 방패연이 장관이었다. 어린 시절 대보름날 연싸움에 나는 항상 패자였다. 황급하게 대회에 참가하면서 유리병과 사기그릇을 낀 가루를 밥풀에 섞어 연줄에 입혔다. 서둘러 연실에 입힌 풀기가 얼레에서 굳어질까 봐 조바심도 났다. 팔각정에서 등록하려니 진행요원은 방패연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복장까지 챙겨서 올라왔는데…….

   당황한 표정을 본 그는 참가를 허락하면서도 비웃는 듯했다. 광장으로 내려와 연을 띄우자마자 연 자세는 스르르 풀렸다. 샛바람을 받은 가오리연이 보름달 곁으로 높이 떠올랐다. 방패연 일색의 하늘에서 볼품없는 가오리연은 꼬리를 흔들며 순식간에 곧추섰다. 여기저기에서 연날리기대회 1등은 당상이라며 엄지를 치켜 주었다. 칭찬하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려다 말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얼굴을 하얀 가면으로 가린 채 눈동자만 반짝거렸다.

   순간 연싸움을 걸어 방패연 연줄이 끊어지며 나타날 그들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언제 올라왔는지 선친은 입구 쪽에 서서 빤히 바라보고 계셨다. 아무 말도 없던 아버지가 휙 돌아서 내려가는 모퉁이로 하얀 두루마기 옷고름이 바람에 날렸다. 아버지가 사라지자마자 하늬바람이 몰아쳤다. 보름달 주변에 떠 있던 가오리연이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자, 돌연한 기상 이변에 참가자들이 웅성거렸다. 기류 따라 흔들거리던 연무(鳶舞) 속에서 내 가오리연만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광장 가운데로 떨어져 박살이 난 연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양쪽 귀를 감싼 채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꿈이었다.

   머리에서 손을 내리는데 왼손에 끈적끈적한 감촉이 느껴졌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거울 속에 나타난 왼쪽 귀에 피가 보였다. 면봉을 찾아 귓속 가득한 피를 몇 번이고 찍어 내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일어난 아내가 방안 불을 켰다. 내가 벤 베개 위에 선혈이 흥건했고 이를 본 아내가 놀라 응급실에 가지고 재촉하였다. ‘위급할 때일수록 침착하자’라는 생각을 하던 중 아스피린 부작용이 떠올랐다.

   혈액을 묽게 하는 아스피린은 출혈 시 지혈이 잘 안되니 조심하라던 심혈관 주치의의 설명이었다. 피가 밴 베갯잇을 세면기에 담그던 아내를 안심시켜야 했다.

   “이제 피가 그쳐 괜찮아, 자자.”라고 말했다.

   아내가 베개에 덮어 놓은 수건 위에 머리를 내리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아내의 잠든 숨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내가 잠든 순간에 출혈이 멈추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의 혼돈(카오스)처럼 혼란스러운 마음속에 갈팡질팡 잡념만 끊임없이 이어졌다. 새벽 두 시부터 세 시까지 꼬박 아내의 숨소리 속에서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시 가만히 일어나 양 귓속에 탈지면을 쑤셔 넣어야 했다. 피가 나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책상 위에 읽다 놓아둔 칼 세이건 《코스모스》 책 속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우주의 질서” 그래, 운명은 재천이다. 삶과 죽음 또한 우주의 질서가 아니겠는가? 눈을 뜨지 않으면 영면이라는 생각하고 나자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액막이 연이 고덕산 자락으로 다시 날아가기를 바랐다. 내가 태어났다던 인사에 일어났건만 꿈은 이어지지 않았다. 죽지 않고 깨어났다는 사실이 기뻤다. 꿈속에 마주친 선친의 눈매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글출처 : 아버지의 뒷모습(이준구 수필집, 수필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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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교 글쓴이 2024.11.25. 17:38
랩퍼투혼
랩퍼투혼님.
맞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그러한 놀이들을 하면서
지내온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상상도 못할 그러한 추억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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