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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외할머니

오작교 1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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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담벼락 아래 수줍은 듯 함초롬히 수선화가 피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던 지난 겨우내 땅 속에서 숨은 듯 숨을 고르다가, 어느 날 흙더미를 헤치고 고개 내일었을 때에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아니, 아예 그 존재를 몰랐다. 그런데 여전히 쌀쌀한 바람이 누그러지지도 않았는데, 수선화는 마치 그게 제 시간이란 듯 노란 꽃을 활짝 열었다. 소녀는 그제야 그것에 눈길이 닿았다. 외할머니가 특히 좋아하시던 꽃이라서 보는 순간 외할머니 얼굴이 떠올랐던 것이다.

    소녀의 외할머니는 2년 전 돌아가셨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할머니는 당신 집을 처분하고 딸네와 함께 사시며 자매를 키우셨다. 할머니는 딸과 사위가 미안해할까 봐 오히려 외손녀가 더 예쁜 법이라며 자매를 기쁘게 맡아주었다. 자매에겐 외할머니가 세상의 반쪽 같았다. 할머니는 어찌나 이야기를 구수하게 잘해주시는지 아일들이 모르는 옛날이야기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손녀들이 먹고 싶은 게 있다 하면 요술 방망이처럼 뚝딱 맛있는 간식거리들을 척하니 내놓는 할머니였다. 자매는 할머니의 넘치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잘 자랐다.

    그러나 소녀가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부터 할머니는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그토록 깔끔하고 못하는 게 없던 할머니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곤 하더니 아주 간단한 것도 까먹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소녀는 할머니께 짜증을 냈다. 심지어 할머니가 하는 음식 맛도 예전과 달랐다. 어떤 때는 짜고 어떤 때는 턱없이 싱거워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마침내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시장에 간다고 나가신 할머니가 한밤중까지 집에 돌아오시지 않은 것이다. 처음에는 시장에 가셨다가 친구 분들 만나서 재미 삼아 고스톱이라도 치고 오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으셨고, 당황한 어머니는 불안해하며 할머니 친구 분들께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할머니의 행적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전하를 받은 한 할머니께서 “요즘 자네 모친이 이상하지 않던가? 우리를 만나도 잘 못 알아보고 엉뚱한 소리를 한 지 꽤 되었다네. 내 생각에는 치매가 온 게 아닌가 싶은데”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설마설마 했던 일이 사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날 밤 식구들은 온 동네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어디에도 계시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파출소에 실종 신고를 하러 갔더니 그곳에 할머니가 계셨다.

    “연락처를 여쭤봐도 할머니께서 자꾸만 이상한 소리를 하셔서 알리지 못했습니다. 어떤 분이 모시고 왔는데 반나절 내내 사람 이름 몇 개만 중얼거리시네요. 혹시 손자 손녀 이름이냐고 여쭤봤더니 그렇다는 말씀뿐이셨어요.”

    할머니를 찾아서 안도했지만, 그날 이후 식구들은 할머니가 혼자 밖에 나가시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식구 중 한 사람은 반드시 집에 있어야 했다. 할머니는 얼마간 간혹 정신이 돌아오실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 그대로였다. 그 시간이 하루의 절반쯤만 되면 어 이상 바랄 게 없었다. 그러나 그건 잠시뿐, 갈수록 치매는 심해져만 갔다.

    마침내는 집 안 아무 데서나 대소변을 보시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혹시라도 어머니가 미안해할까 봐 오히려 친아들처럼 할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대하셨고, 시간 날 때마다 할머니를 모시고 가벼운 산책을 다녀오시곤 했다. 하지만 소녀는 학교 공부에 바빠서 할머니와의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차라리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게 편했다. 집에 있으면 할머니 때문에 도무지 마음이 편치 않았으니까.

    결국 가족은 할머니를 요양 병원에 모시기로 결정했다. 아버지는 자식 된 도리가 아니라고 반대하셨지만, 자식들의 무성의나 불효가 아니라 할머니 당신을 위해서 더 낫다는 어머니의 주장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대부터 주말은 늘 할머니가 계신 요양 병원 방문으로 채워졌다.

    공부에 찌든 소녀는 가끔 부모님께 따지듯 물었다.

    “나도 공부하느라 힘들어 죽겠어. 우리도 어디 여행 갔다 오면 안 돼?”

    그런 딸에게 부모님은 미안해하면서도 늘 이렇게 설득했다.

    “할머니를 병원에 모셔놓고 우리끼리 여행 가면 엄마가 마음이 편할까? 조금만 참자.”

    아버지는 딸에게 미안하고 할머니에게 송구하기만 했다. 어머니는 그런 남편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는 가족들 얼굴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만큼 할머니의 병세는 심해졌지만, 묘하게도 식구들만 보면 표정이 환해지셨다. 그래서 주말마다 할머니께 가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한 지 1년도 채 못 되어 돌아가셨다. 어느 날부터 식사를 아주 조금만 드시더니 나중에는 곡기를 거의 끊고 영양주사에 의존하셨다고 한다. 병원 관계자들은 그것이 아마도 당신 스스로 잠깐잠깐 정신 드실 때마다 하셨던 말씀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손녀들도 못 알아보는 게 너무 마음 아파. 걔들도 그렇겠지? 이제 그만 떠나고 싶네.” 할머니는 소녀가 막 고3에 올라간 어느 날 세상을 떠나셨다. 소녀는 할머니의 죽음이 안타깝고 슬펐지만, 한편으로는 큰 짐을 내려놓은 듯했다. 그리고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외람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그게 당시 소녀의 마음 한 부분을 차지한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제 소녀는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 부모님은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신 뒤 쓰시던 방을 동생에게 쓰도록 했다. 그러나 동생은 그 방을 싫어해서 언니인 그녀가 마지못해 할머니 방을 쓰기로 했다. 할머니 방에서는 이상한 냄새도 났지만, 소녀는 자기 방을 갖데 된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소녀는 가끔 그 방에 계시던 할머니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 그 방은 최고의 놀이동산이었고. 때론 이야기 창고였으며, 어떤 땐 피난처이기도 했다. 이제 그곳에 할머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담벼락에 부끄러운 듯 핀 수선화를 보고 소녀는 갑자기 할머니 행각이 간절해졌다. 할머니께서 자신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셨는지, 그리고 그에 비해 자신은 병든 할머니를 얼마나 박대했는지 새록새록 떠올랐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눈물도 나지 않았던 자신이 미웠다.

    “할머니, 보고 싶어요. 그리고 미안해요. 내가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 난 참 나쁜 손녀딸이었어요. 할머니 사랑해요.”

    수선화가 마치 할머니의 환생인 듯 반갑고 사랑스러웠다. 할머니가 지내셨던, 이제는 자기 방이 된 그 방에도 수선화의 향훈(香薰)이 너그럽게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글출처 : 위로가 필요한 시간(김경집, 조화로운삶)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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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초롱 2011.07.01. 18:19

존경하고 사랑하는 울 감독오빠

오늘도 까아껑?

 

저희도 외할머니랑 거의 함께 살았지요..

 

정말

지극정성으로 저희들을 아끼며

내 새끼라며 사랑해 주셨던

하늘에 계신 울 외 할머니가 보고싶네요..

 

지금껏 잊고 살았었는데..

 

암튼

참 좋은글 고맙습니다.^^

 

이케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더위먹지 않게 잘 지내시공
행복한 날 맹그러 가시길 빌오욤 ^^*

 

사랑합니다~

고운초롱~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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