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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그이름, 누나

오작교 6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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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그는 지금 큰 기업을 운영하는 회장이다. 그에게는 형제자매들이 많았지만, 그가 어린 시절 당시로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남자 형제만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진학했다. 누나들은 일찌감치 직장에 나가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해주었는데, 특히 큰누나는 그 탓에 혼기까지 놓쳐 느지막이 시집을 갔다.

   그때는 그랬다. 딸은 중학교에도 보내지 않는 부모도 많았다. 딸은 시집가면 남의 식구가 되지만, 아들은 든든한 버팀목이자 집안을 일궈낼 재목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나들은 남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공장에 다니거나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누나들은 박봉을 받으면서도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며 알뜰하게 모아 동생 학비며 생활비를 대주었다. 누나들에게 그렇게 뒷바라지해 교육시킨 동생은 어쩌면 반은 자식과도 같을 것이다.

   그도 그렇게 큰누나의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대기업에 다니다가 호기롭게 독립해서 자기 회사를 세우고 한동안 잘나갔다. 그렇다고 큰누나에게 보은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큰누나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그래도 누나는 서운한 기색 한 번 드러낸 적 없이 동생이 잘사는 것이 그저 고맙다며 대견해했을 뿐이다.

   하지만 잘나가던 회사가 뜻하지 않은 부도를 맞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이때 아내보다 더 애통해한 사람이 큰누나였다. 몇 달 동안 백수로 지내다가 안 되겠다 싶어 식구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집 짓는 공사판에 막일을 하러 다녔다. 그런데 하필 일하던 집 주인이 누나의 친구였다. 그가 막노동하는 걸 누나가 알게 된 것이다.

   한 달쯤 지났을 때 그는 매형에게 연락을 받고 다방에서 만났다. 과묵하고 무던한 성격의 매형은 자리에 앉자마자 봉투 하나를 건넸다. 제법 묵직한, 누나와 매형 살림에 비춰볼 때 큰돈이었다.

   “이게 웬 돈이에요? 매형 저 이거 없어도 돼요. 누나네 살림에 도움을 드린 적도 없는데 제가 무슨 염치로 이걸 받아요. 그냥 가져가세요. 마음만 받을게요.”

   그는 잘나갈 때 미처 챙겨주지 못한 누나에게 미안하고, 매형에게는 민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 별로 없는 매형의 한마디 말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처남, 자네가 예뻐서 주는 게 아니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마누라가 죽을 것 같아서 그래. 자네 부도난 이후에 누나는 거의 매일 불공을 드리러 절에 다녔어. 그런데 자네가 누나 친구 집 짓는 데서 일하고 있더라는 말을 듣더니 매일 운다네. 한숨에 방바닥이 꺼질 것 같아. 내게는 말도 못 꺼내고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니는 누치던데 그게 어디 쉽나. 그러더니 이젠 안달이 났어. 이러다 사람 죽겠다 싶어 내가 눈 딱 감고 주택부금을 깼네. 자네는 처가의 희망이고 기둥이 아닌가. 남자 대 남자로서 부탁하네. 자네 이걸 기반으로 다시 일어서 보게나.”

   그는 그날 매형의 손을 잡고 엉엉 울었다. 그리고 누나와 매형을 위해서라도 꼭 재기하겠다고 결심했다.

   마침내 그는 그 귀한 돈을 기반으로 예전 사업할 때 자기가 도와줬던 거래처 사람의 도움을 받아 ‘집장사’를 시작했다. 처음 한 채를 지을 때는 자금이 모자라 피가 마를 듯하더니, 조금씩 규모가 커지고 돈도 벌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큰 건설 회사를 설립했다.

   “내 평생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재기해서 누나와 매형에게 근사한 집 한 채 지어드렸던 일입니다. 지금 보면 보잘것없는 집이겠지만 그때는 얼마나 흥분되고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마흔 다 돼서야 처음으로 누나에게 은혜를 갚았으니 늦어도 너무 늦었지요. 그래도 누나와 매형이 얼마나 고마워하던지······. 우리 누나와 매형이 그런 분이었어요.”

   남자 형제들에게 누나는 반은 엄마와도 같은 존재이다. 예전에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 때문에 부모는 함께 논밭에 나가 일을 해야만 했던 시절이다. 그럴 때 큰딸이 동생들을 보살피고 끼니를 챙겨주는 몫을 맡았다. 아이들에게 ‘큰누나’는 엄마와 진배없었다. 그래서 중년의 사내들에게 큰누나는 특별한 의미로 자리 잡고 있다.

   누나는 어린 동생의 학교 숙제를 위해서 천도 깁고 종이도 접고 물감도 칠해줬을 것이다. 어쩌다 동생들 바지의 무릎이 해지면 엄마처럼 그냥 누덕누덕 깁지 않고, 예쁜 곰이나 강아지 모양을 만들어 덧대주는 센스까지 넘치던 누나들이었다. 누나들의 손은 늘 그렇게 마법과 기적의 솜씨를 발휘하곤 했다.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떡볶이나 카레라이스도 뚝딱 해줬던 누나들이다. 해거름까지 온 동에 골목을 누비고 들판으로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돌아다니느라 새까매진 동생들 귀를 잡아끌고 와 씻어주었던 누나들. 때가 덕지덕지 딱지처럼 앉은 코흘리개 녀석들은 누나의 손길에 뽀얗게 변모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녀석 하나 그런 누나에게 고맙다 말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누나, 미워!” 소리치며 혀만 날름대며 약을 올릴 뿐이었다. 그러면 그저 등짝 한 번 갈겨주는 것으로 누나의 응징은 끝이곤 했다. 도대체 누나가 하지 못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 누나들이 벌써 환갑 지나고 칠순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동생들 훌쩍 커서 이미 자식들 혼인까지 시켰는데도, 누나들의 눈에 비친 동생들은 여전히 예전 코흘리개 어린 모습 그대로인 모양이다. 그런 누이들이 있어서 동생들은 늘 행복하다.

   누나, 세상에서 가장 정겨운 이름이다. 그 앞에서 우리는 상상 어리광 부리던 꼬맹이의 모습으로 서 있다. 어릴 적 누나 품에 안길 때 맡았던 화장품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걸려 있다.

글출처 : 위로가 필요한 시간(김경집, 조화로운삶)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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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민현 2012.02.03. 09:29

우린 5형제이다보니 누이 누이동생이

부러웠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우리세대의 한단면을

보는듯해서 뒤를 잠깐 돌아 보았습니다.

오작교 글쓴이 2012.02.03. 10:48
고이민현

아하. 고이민현님께서는 남자 형제분만 계시는군요.

저도 누나가 한 분 있었는데,

제가 21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 누나의 생각이 많이 났었거든요.

꼭 우리 누나의 이야기인 듯 착각을 하기도 하면서.

새달사 2012.05.07. 01:04

저 역시 하늘보다 소중한 누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라는 노랫말을 좋아하기도 하구요

오작교 글쓴이 2012.05.07. 10:50
새달사

새달사님께서도 그러한 추억이 있군요.

어떻게 보면 '누나'라는 이름은 '엄마' 다음으로

친근한 이름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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