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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불짜리 미소

오작교 6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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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우리가 작고 미미한 방식으로 베푼 관대함이
누군가의 신생을 영원히 바꿔놓을 수 있다


    한국인에게는 뛰어난 음악적 유전자가 면면히 흐르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계속해서 세 음악계에 훌륭한 음악가를 배출해내는 걸 보면 참 자랑스럽다. 한국 사람치고 노래 못하는 이 없다는 농담은 그저 웃어 널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일찍이 옛날 중국의 기록에도 우리 민족이 가무를 즐긴다고 한 걸 보면 말이다.

   많은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선망하는 미국의 줄리아드 음악원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거기에 ‘강효’ 교수가 있다. 그는 일찍이 뛰어난 바이올린 실력으로 미국에 유학 간 사람이다.

   줄리아드에서 강효를 가르친 스승은 유명한 도로시 딜레이였다. 50여 년 동안 줄리아드에서 뛰어난 제자들을 길러낸 사람이다. 이작 펄만, 나이젤 케네데 등이 그녀의 제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냥 연주 기법만 가르치는 뛰어난 선생으로 그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재능이 뛰어난, 멀리 한국에서 온 제자 강효의 표정이 늘 밝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던 그녀는, 그의 향수병을 달래주고 스스로 음악에 몰입할 여유를 주며 기다렸다. 다른 학생 하나를 함께 붙여서 자기 집에 초대해 그림도 그리게 하면서 격려한 것이다. 아마도 강효는 그런 스승에게 배워서 그런지 사람에 대한 애정과 신뢰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물론 그의 천성 또한 그런 기질이었을 것이다.

   줄리아드를 졸업한 강효는 그곳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연주자로서도 뛰어나지만 그의 진가는 가르치는 데 있었다. 길 샤함, 장영주, 용재 오닐 등이 그가 길러낸 제자들이다. 그는 제자들의 좋은 점을 먼저 발견해내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의 능력에 자신감을 갖게 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미흡한 점까지 제 눈으로 찾아서 극복하게 하는 그의 교수법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것을 스스로 키워서 더 잘하게 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교수법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자들에 대한 근원적 사랑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는 지금도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한다. 그가 미국에 건너간 게 1964년이었으니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가 특별히 구문과 낱말 공부를 하는 까닭이 궁금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이 무딘 심장을 두드렸다.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상류 계층의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그들이 쓰는 품격 있는 영어를 사용해야 도움이 되거든요. 그러니 부지런히 공부해야죠. 젊고 유능하지만 가난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교수 강효는 제자들, 특히 가난한 제자들에게 좋은 악기를 대여해 주는 일에 앞장서온 사람인데, 돈 많고 교양 있는 부자들에게 부탁하려면 품위 있는 영어를 구사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공부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참 대단한 스승이다. 뛰어난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이 누구나 동경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에 입단 승낙을 받고도 강 교수 곁에 머문 건, 아마도 스승의 그런 매력에 흠뻑 빠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강효 교수는 이미 세계 정상급으로 평가받는 ‘세종솔로이스트’를 창단하고 가르쳤으며, 최근에는 ‘대관령국제음악회’를 꾸리고 이끌어가며 한국의 음악계에 공헌하고 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더 좋은 매니지먼트사를 물색해주는 걸 큰 기쁨으로 삼는다. 그는 그렇게 늘 겸손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그 아름다운 미소를 전해주는, 아름다운 음악가이다.

   지금은 유명한 연주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씨도 바로 강효 교수의 줄리아드 제자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유 있는 가정에서 자랐다고 하지만, 그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줄리아드에 다니고 있었다. 그러니 교습비를 내는 것도 빠듯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강효 교수가 그녀를 불렀다. 바로 며칠 전 교습비를 냈던 터였다. 교수는 만면에 그의 백만 불짜리 미소를 머금으며 봉투 하나를 건넸다.

   “아버님께 감사 카드를 썼으니 전해드려요.”

   김지연 씨는 그냥 감사 카드인 줄만 알았다. 교습비를 받고 감사 카드를 쓴다는 것도 예삿일은 아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아버지께 드린 봉투에는 전날 드렸던 교습비와 함께 이런 글이 담겨 있었다.

   “지연이 같은 재능 있는 아이를 가르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연이가 크게 성공하면 그때 아버님과 술 한 잔 함께하면 어떨까요?

   제자의 사는 형편을 눈여겨봤던 스승이 돈 걱정하지 말고 음악에만 몰두하라는 격려였고 사랑이었다. 그냥 돌려주는 일도 흔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돌려주었다면 그것도 은근히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일이 될지 모른다. 그래서 상대를 보듬으며 마음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며칠 있다가 카드와 함께 보낸 것이다. 따뜻한 배려이며 진정한 제자 사랑이다.

   자신의 삶이 그 결대로 따르지 않으면 그리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 스승에게 배운 제자들은 그저 재능만 뛰어난 예술가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자신의 예술을 통해 사람과 세상에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그대로 전하고 나누는 전령이 될 것이다.

   그의 미소는 정말 아름답다. 수줍은 소년 같은 그의 미소를 경험한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흠뻑 빠져든다. 그러나 그 미소를 만들어 낸 건 그의 삶이 품어온 향기이다. 그런 미소를 조금이라도 닮으며 살아간다면 행복한 일이겠다.

글출처 : 위로가 필요한 시간(김경집, 조화로운삶)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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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2012.02.22. 14:53

향기나는 아름다운 미소...

그런삶 살며 행복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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