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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주전자 / 이 별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오작교 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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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찻주전자를 백 년 이상 사용하면 차를 넣지 않아도 물만 부으면 주전자가 저절로 차를 우려낸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커피알갱이를 넣지 않아도 저절로 커피를 끓여내는 포트가 있다면 그 커피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겠지요. 한 가지 일을 백 년 이상 계속하면 그 분야의 장인이 된다는, 뭐 그 비슷한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수명이 백 년을 넘기기 힘들고, 주전자는 깨어지기 쉬우니 모든 것이 저절로 일어나는 경지에 이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진정한 장인이란 치열한 노력 끝에 함이 없이 하는 경지, 하고자 하는 것이 저절로 일어나는 경지에 다가선 사람일 것입니다.

   진정한 시인 또한 모든 것이 저절로 일어나는 경지에서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가 나를 쓰는’ 경지에 이른 사람일 것입니다.

   시를 쓴다고 유난을 떠는 사람치고 시다운 시를 쓰는 사람 못 봤고, 말끝마다 국민을 위한다고 떠들어내는 정치꾼치고 참된 정치인을 본 적 없습니다.

   완전한 노력이란 무엇이 되기 위해,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맹목적인 행위를 그만둘지, 새로운 행위를 만들지 않을지를 배우는 것이라 합니다.

   하면서도 함이 없이 하는 경지.

   백 년을 살기엔 턱없이 모자라는 연륜이라 저절로 차를 우려내는 주전자 같은 사람이 되긴 힘들어도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간 다시 일어나는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쓸모없는 행위를 하지 않으려 명심할 나이는 된 것 같습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을 자주 하지만 참으로 비운다는 말은 맹목적인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글출처 : 이 별에 다시 올 수 있을까(김재진 산문집, 시와시학사)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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