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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불고 간 뒤 / 나의 치유는 너다

오작교 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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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인생은 태풍이 몰아치는 산속 같다.
거센 비바람이 불다가 잠깐 햇살이 비치다가
또다시 바람이 불고 비가 퍼붓는 동안
우리는 나비가 되고 새가 되어 어디선가
비바람을 피해야 한다.


   태풍이 수많은 것들을 땅바닥에 버리고 갔다. 아니 태풍이 버린 것은 버린 것이 아니라 내동댕이친 것이다. 때로 우리는 인생의 태풍을 만나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 때도 있다. 뿌리째 뽑힌 아카시아를 보며 문득 나는 내 인생에 지나갔던 태풍들을 떠올린다. 태풍이 불 듯 닥쳐왔던 인생의 고통스러운 순간들. 그러나 몇 번씩 내동댕이쳐졌어도 다행히 나는 뽑히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태풍은 그쳤고, 우산을 접어든 나는 땅바닥에 누워 있는 나무를 향해 걸어간다. 걸어가는 내 어깨 위로 종잇조각 하나가 팔랑거리며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바닥을 향해 내려앉을 것 같던 종이 조각이 도로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는 그게 종이 조각이 아니라 나비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나비, 그 가녀린 생명체가 산사태가 나고, 나무가 뽑히는 그 강한 태풍 속에서 살아있다니?

   생각이 거기에 미치는 순간 생명의 경이로움에 코끝이 찡해진다. 거센 비바람을 견뎌낸 저 작은 생명체는 지금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퍼붓던 빗줄기와 거센 바람 속에 새들은 어디서 날개를 접고, 다람쥐들은 어디서 비를 피할까?

   때로 인생은 태풍이 몰아치는 산속 같을 때가 있다.

   거센 비바람을 불다가 잠깐 햇살이 비치다가, 또다시 바람이 불고 비가 퍼붓는 동안, 우리는 나비가 되고 새가 되어 어디선가 그 비바람을 피해야 한다. 그러나 그 비바람 속에서도 꽃은 핀다. 서로가 서로를 헐뜯거나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고 미워하며 상대를 짓밟아야 올라설 수 있는 전쟁 같은 이런 세상에도 상처받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손길이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나를 버렸던 그 사람들도 사실은 그들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상처가 나를 버린 것은 아닐까“ 그들은 나보다 더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고, 설령 그들이 나를 버렸다 해도 어쩌면 그들 또한 새처럼, 다람쥐처럼 가녀린 생명의 힘을 다해 인생의 태풍을 피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가지마다 촘촘하게 돋아 잇는 아카시아 나무의 가시를 보며 나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해 자책하는 나무의 내면을 느낀다.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서 있어도 나무는 제 몸 하나 보호하지 못하고 저렇게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품어 안던 대지로부터 버림받아 나자빠져 있지만 나무는 알 것이다. 내가 나를 버리지 않는 한 나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내가 나를 보호하지 않은 한 누가 누구를 끝까지 보호할 수 있는 세상 또한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은.

   허공을 향해 날아가던 나비는 이제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사라지고 없다. 나무가 뽑히면서 벌겋게 드러난 대지의 속살은 쏟아진 비를 받아 축축하게 젖어 있다. 드러난 대지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쪼그려 앉은 채 우산대로 흙을 헤집는다. 무수한 잔뿌리와 부러진 가지 사이로 지렁이 한 마릴 꿈틀댄다. 온몸으로 흙바닥을 밀어야 겨우 기어갈 수 있는 저 허약한 생명체.

   그러나 우산대로 헤집어본들 대지의 내면을 이해할 수는 없다. 흙 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태풍이 몰아치는 세상은 여전히 난해하고, 우리는 늘 우리가 품고 있는 가시보다 더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려고 애쓴다.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 우리는 먼저 버리려 하며, 상대의 아픔을 받아들이기보다 내 아픔을 줄이기 위해 상대를 아프게 하는 삶을 습관처럼 살아왔다.

   어디서 비를 피했던 것인지 다시 새들이 날아가고, 비를 머금어 무거워진 줄기 구부린 채 꽃들은 햇빛을 그리워한다. 고양이가 많아져서 그런지 이제 다람쥐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사라지는 것이 있으면 늘어나는 것도 있는 법인지 다람쥐 대신 어느새 청설모가 빠르게 나무 위를 올라간다.

   비바람 지나가자 산은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인생의 태풍 또한 마찬가지라 비바람 그치고 나면 해가 떠오른다. 터널의 끝이 빛이듯 태풍의 끝도 언제나 빛이다.

글출처 : 나의 치유는 너다(김재진, 쌤앤파커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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