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좋은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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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로(卞榮魯) 논 개(論介) 거룩한 분노(憤怒)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 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릿답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石榴)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魂)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생시에 못 뵈올 임을 . 변영로 생시에 못 뵈올 임을 꿈에나 뵐까 하여 꿈 가는 푸른 고개 넘기는 넘었으나 꿈조차 흔들리우고 흔들리어 그립던 그대 가까울 듯 멀어라 아, 미끄럽지 않은 곳에 미끄러져 그대와 나 사이엔 만리가 격했어라 다시 못 뵈올 그대의 고운 얼굴 사라지는 옛 꿈보다도 희미하여라 조선의 마음 . 변영로 조선의 마음을 어디 가서 찾을까 조선의 마음을 어디 가서 찾을까 굴 속을 엿볼까. 바다 밑을 뒤져 볼까 빽빽한 버들까지 틈을 헤쳐 볼까 아득한 하늘가나 바라다 볼까 아, 조선의 마음을 어디 가서 찾아 볼까 조선의 마음은 지향할 수 없는 마음, 설운 마음 봄 비 . 변영로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렴풋이 나는 지난 말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은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나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누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생애 : 1898년 5월 9일 - 1961년 3월 14일 학력 :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로스앤젤레스교 수상 : 서울시 문화상 경력 : 1955년 한국펜클럽 회장 1954년 대한공론사 이사장 서울신문 이사 해방후 성균관대.해군사관학교 교수 이화여전 등서 교직생활 후 渡美 시인·영문학자. 호는 수주(樹州). 서울 출생. 1909년 중앙학교(中央學校)에 입학하였으나 자퇴하고, 1915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 영어반에 입학하여 3년 과정을 6개월 만에 마쳤다. 1919년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였으며 1921년 《페허》, 1921년 《장미촌》 동인으로 참가하였다. 1918년 중앙고보 영어교사가 되었고, 1931년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주 산호세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그뒤 1935년 동아일보사에 들어가 1946년 《신가정》잡지 주간을 지냈다. 성균관대학교 영문학 교수, 1953년 대한공론사 이사장에 취임, 1955년 제27차 빈국제펜클럽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시작활동은 1918년 《청춘》에 영시 <코스모스(Cosmos)>를 발표하면서 시작하였고, 영미문학의 소개 및 국내 작품의 영역도 하였다. 1949년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다. 지은책에 시집 《조선의 마음(1924)》 《수주시문선(1959)》 《차라리 달없는 밤이 드면(1983)》 《논개(1987)》 등이 있고 수필집 《명정사십년(酩酊四十年, 1953)》 《수주수상록(1954)》 영문시집 《진달래동산(Grove of Azalea, 1948)》 등이 있다. Sign Of Glory / Tonei Huljie
문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자면
그 이야기 속엔 꼭 주점 `은성` 과 `막걸리` 이바구가 낀기듭미더...
1950~60년대 서울 명동 막걸리집 은성은 전후(戰後) 배고픈 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다.
여주인은 술값은 주는 대로 받고 외상값을 따지지 않았다.
이 집 아들 최불암이 나중에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 라면상자 가득한 외상장부를 발견했다.
'이 돈 다 받으면 부자가 되겠구나' 싶어 들춰본 그는 실망했다.
이름 대신 어머니만 알아볼 별명과 암호가 적혀 있었다. 예술가의 자존심을 생각한 배려였다.
은성 여주인이 사발이 철철 넘치도록 권하던 막걸리. 막걸리는 마음을 여는 나눔의 술이다.
1959년 최불암이 대학에 간다고 하자 은성 단골인 수주(樹州) 변영로가 막걸리를 따라줬다.
벌컥벌컥 받아 마시고 잔을 다시 드리려니 찌꺼기가 남아 있어 바닥에 털었다.
수주가 최불암의 뺨을 툭 쳤다.
"이놈이 곡식을 버리는 놈이구먼!"
논두렁 새참 때 농부의 갈증과 허기를 함께 달래주던 농주(農酒).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천상병 '막걸리').
ㅎㅎㅎ
나의 사랑 深淵님. 언제 우리 만나몬
`술이 아니고 밥`
`하나님의 은총인 막걸리`
사발이 철철 넘치도록 ↔ 주고받음시키
코^ 가 함 삐뚜르져 보입시더^^*
- 필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