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좋은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

글 수 900



 

  

어느 40대의 고백 

 

 

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내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아내의 남편입니다.


명세서만 적힌 돈 없는 월급 봉투를 아내에게  내밀며
내 능력 부족으로 당신을 고생시킨다고...


말하며 겸연쩍어하는 아내의 무능력한 남편입니다.

 

세 아이의 엄마로 힘들어하는
아내의 가사일을 도우며 내 피곤함을 감춥니다.


그래도 함께 살아주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남편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이들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 가 없는 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요것 조것 조잘대는 막내의 물음에
만사를 제쳐놓고 대답부터 해야하고
이제는 중학생이 된 큰놈들 때문에
뉴스 볼륨도 숨죽이며 들어야합니다.


막내의 눈 높이에 맞춰 놀이 동산도 가고.
큰놈들 학교 수행평가를 위해 자료도 찾고. 답사도 가야합니다.

 

내 늘어진 어깨에 매달린 무거운 아이들.


유치원비, 학원비가 나를 옥죄어 와서
교복도  얻어 입히며 외식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생일날. 케이크 하나 꽃 한 송이 챙겨주지 못하고.


초코파이에 쓰다만 몽땅 초에 촛불을 켜고.


박수만 크게 치는 아빠.
나는 그들을 위해 사는 아빠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어머님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 가 없는 어머님의 불효자식입니다.


시골에 홀로 두고 떨어져 있으면서도
장거리. 전화 한 통화에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불쌍한 아들입니다.

 

가까이 모시지 못하면서도 생활비도
제대로 못 부쳐드리는 불효자식입니다.


그 옛날 기름진 텃밭이 무성한 잡초밭으로.
변해 기력 쇠하신 당신 모습을 느끼며.


주말 한번 찾아 뵙는 것도 가족 눈치 먼저.
살펴야 하는 나는 당신 얼굴 주름살만 늘게 하는
어머님의 못난 아들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40대 직장 (중견) 노동자입니다.


월급 받고 사는 죄목으로 마음에도 없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며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도 삼켜야 합니다.

 

정의에 분노하는 젊은이들 감싸안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고개 끄떡이다가
고래 싸움에. 내 작은 새우 등 터질까 염려하며
목소리 낮추고 움츠리며 사는 고개 숙인 40대 남자.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집에서는 직장 일을 걱정하고.


직장에서는 가족 일을 염려하며.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엉거주춤, 어정쩡, 유야무야한 모습.


마이너스 통장은 한계로 치닫고
월급날은 저 만큼 먼데 돈 쓸 곳은 늘어만 갑니다.


포장마차 속에서 한 잔 술을 걸치다가.
뒷호주머니 카드만 많은 지갑 속의
없는 돈을 헤아리는 내 모습을 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가장이 아닌 남편,


나는 어깨 무거운 아빠,
나는 어머님의 불효 자식.
나는 고개 숙인 40대 직장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껴안을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어도,
그들이 있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그들이 없으면 나는 더욱 불행해질 것을 알기때문에
그들은 나의 행복입니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나일 때보다 더 행복한 줄 아는
40대 입니다..

 

 

 

 

profile
댓글
2010.01.21 15:35:56 (*.186.21.11)
청풍명월

40대 젊은이의 솔직한 고백을 잘 들었습니다

적은 수입으로 가정생활비 교육비 부모 부양비

등을 제대로  주지못하는  심정은 이해 하지만

그렇게 기죽어 살아야 되는지 불쌍한 생각이

드네요

댓글
2010.01.21 18:55:22 (*.56.3.21)
데보라
profile

그러게요~....

우리의 40대는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댓글
2010.02.02 12:11:23 (*.91.52.164)
들꽃향기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는가 봅니다

나도 몇칠전에야 남편이 이제 내 편인 사람이구나 알게되었습니다

언제나 남편은 내가 위로 해주고 내가 감싸고 내가 믿어야 만 하는사람

나에게는 아무것도 해주는것 없는 아이를 낳게 만들어 아이 엄마 집안 솥뚜껑 운전사

이렇게만 여기는줄 알았는데 얼마전 남편이 참으로 따뜻한 말을 하고

가정을 생각하는 말을 해 주더라고요 이제 남편의나이는 54세 내나이 50이다도어 가서야

이제 제데로 가정이 만들어졌나 생각이 들었으니 얼마나 외로웠 겠습니까

진작 남편이 나의 편이 였다는것을 알았다면 더 행복 했을 텐데 그러나 좋아요 지금에 라도 알았았으니

세월은 참으로 빨리 흐르네요^_^

댓글
2010.02.03 10:54:41 (*.56.3.21)
데보라
profile

맞아요!...

이제 들꽃향기님도 그만큼의 세월의 경륜이 쌓인거랄까...

그나이가 되면 삶의 모든것을 터득한다고나 할까요

 

그전엔 아이들과 사느라고 보이지 않던 것이

이제 조금은 안정된 삶속에서 나를 돌아 보게 될때

옆에 늘 함께 했던 나의 동반자가 편안히 보인답니다

 

이제 살아온 사간보다 짧아질 나의 삶을 함께 할

영원한 동반자와 손잡고 함께 가야 할 길이니까요

 

늦었다고 할때가 시작인거 아시지요...

이제부터 사랑하는 동반자와 함께 행복한 삶을

영원히 영원히 나누며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너무 주제 넘었나용~....ㅎㅎㅎ

제가 쫌 더 살다 보니 이런~...생각이

예쁜 사랑 많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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