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좋은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

글 수 900


♡ 어느 의사가 말하는 감동 이야기(실화) ♡


죽음마저 거부한 사랑 


지금으로 5년전,
내가 진주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공사장에서 추락 사고로 뇌를 다친
26살의 한 젊은이가 새벽에 응급실로 실려왔다.
이미 그의 얼굴과 머리는 심하게 손상되어
원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고
의식은 완전히 잃은 후였다.
서둘러 최대한의 응급 조치를 했으나
살 가망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식물인간이 된 상태나 마찬가지인 그가
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그날 아침,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계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나의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규칙적이고도 정상적인 심장 박동을 나타내던
ECG(Electrocardiogram, 심전도) 곡선이
갑자기 웨이브 파동(V-tach)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힘차고 반복적인 정상적인 인간의 심장 박동에서
점차 약해지며 그 힘을 잃어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그것은 곧 죽음이 가까이 옴을 의미했다.

보통 이러한 ECG의 곡선이 나타난 이후
10분 이상을 살아있는 이는 나는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운명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느낀 나는
중환자실을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환자가 운명할 때가 되었으니 와서 임종을 지켜보라고 일렀다.

이미 가족들은 환자에 대한 어떠한 조치(응급 심폐소생술)도 포기
한 채 그의 죽음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젊은이의 부모님과 일가 친척인 듯한 몇몇 사람들이 슬피 울며
이미 시체나 다름없이 누워있는 그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중환자실을 나왔다.
간호사에게는 심전도 파동이 멈추면
곧바로 영안실로 옮기라고 일러두었다.
다른 환자를 보고 잠시후 다시 그 중환자실을 지나치면서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시간이 지난 아직도 그의 심장 박동이
느린 웨이브 파동 ECG를 그리면서 살아있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를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신기하게 생각되어 지면서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날 오후는 쏟아지는 응급 환자들을 돌보느라
더 이상은 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응급실은 거의 매일이 전장의 야전 병원 같은 분위기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는둥 마는둥 그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나는 왠지 갑자기 생각이 들어 다시 그 중환자실을
가 보았다. 물론 지금쯤은 아무도 없는 빈 침대이거나 다른 환자
가 누워있으리란 당연한 생각으로 였지만 웬지 그의 생각이 머리
속에 떠나지 않음은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었다.

방에 들어선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나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그가 있었다..

더없이 나약하지만 끊이지않는 ECG 곡선을 그리며
그의 영혼은 아직 거의 몸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웬지 이 세상에서 그가 쉽게 떠나지 못할그 어떤 이유라도 있는 것
일까. 이것은 과학적, 의학적 상식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였다.

나는 의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어떤 존재를
그 순간 무의식중에 감지했던 것 같다.

하루가 다시 그렇게 지나고
그의 심전도가 웨이브 파동을 그린 지 장장 이틀이 지났다.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중환자실에 가보았다.
그의 신체는 죽은 것과 다름없었지만
영혼은 어떠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더없이 미약하게나마 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고 있었다.

심전도를 나타내는 모니터 화면이 그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고
나의 예사롭지 않은 느낌 역시 그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젊은 여인이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이제까지 보호자 중에 없었는데,
마치 멀리서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온 듯 했다.

젊은이의 애인인 둣 했는데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제대로 환자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창백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나는 한 옆으로 비켜주었다.
젊은 여인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까스로 침대 옆에 섰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그의 심전도 파동이 멈추었다.
모니터 화면에서 끊임없이 지속되던 웨이브 파동이 한순간 사라
지고 마치 전원이 꺼진 것 같은 한줄기 직선만이 화면에 나타났다.

이틀간 미약하게나마 뛰어왔던 그의 심장이 바로 그때 멈춘 것이었다.
내가슴은 순간 서늘해지면서 웬지모를 거대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젠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난 그와
그의 곁에 남겨진 여인을 두고 나는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그의 임종 소식을 전하고
나는 보호자 중의 한 사람에게
방금 온 그녀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내게는 그녀가 그의 삶을 오늘까지,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장시킨 어떤 존재로까지 여겨졌던 것이다.

그녀는..
결혼한 지 3개월에 접어드는 그의 부인이었고
뱃속에 아기를 임신중이었다.

놀라움과 마음 속 깊숙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밀려옴을 느끼며
나는 그 순간 내가 해야할 행동이 무었인지를 깨달았다.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야기해 주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당신과 뱃속의 아기를 만나기위해
그가 얼마나 그 오랬동안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지..
얼마나 힘겹고 가슴 아픈 영혼의 기다림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은 부인과 그의 아기에게 전하는
그의 이 세상 마지막 메시지라고..
그것은 바로 사랑의 작별 인사라고..

듣고 있는 그녀의 눈에서 넘치는 눈물을 바라보며
나는 두려움과 함께 어떠한 경외심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한 한 영혼이
바로 우리 곁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존재를 믿을 뿐 아니라 생생히 느꼈고 경험했다.
그리고 그 존재를 이끌어주는 가장 큰 힘이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 역시..

우리에게 가장 없어서는 안될
영혼과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의사의 길에 들어서는 후배들에게
나는 요즘도 이 이야기를 자주 해주고는 한다.

profile
댓글
2010.01.24 11:22:27 (*.56.3.21)
데보라
profile

참으로 감동적인 가슴 아픈 현실의 이야기이군요

인간은 본인 자신도 모르는

어떠한 무한대의 능력이 있는것 같습니다

 

떠난이의 큰 사랑이 있으니

남은 사람들이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2010.01.24 11:50:37 (*.126.67.14)
尹敏淑

아고~~ 눈물이야~~

정말 감동이네요.

님의 말씀처럼

남은이들은 행복하시길 빕니다.

댓글
2010.01.24 15:42:57 (*.56.3.21)
데보라
profile

윤미숙님/..잘 지내시지요?

계신곳은 춥나요

공기좋고 경치좋은 곳에 사시니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겠어요

 

맞아요~...눈물의 스토리이지요

정말 가슴이 먹먹해지지요...

고마워요~

댓글
2010.01.24 16:23:41 (*.186.21.11)
청풍명월

사랑하는 아내와 배속에 있는 아이를

2일이나 기다렸다가  임종했다는

안타까운 사연 이군요 정말 가슴아푼

일 입니다

댓글
2010.01.25 10:52:31 (*.56.3.21)
데보라
profile

눈을 감을 수 없었던 그 마음은 어땟을까요

그 상황에서도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던 ~...

네....참~  마음이 찡 합니다

댓글
2010.01.25 10:33:14 (*.27.111.127)
고이민현

사랑의 힘과 그리움의 열망은

인간의 죽음도 초월 할수 있다는

산 증거입니다.

댓글
2010.01.25 10:54:36 (*.56.3.21)
데보라
profile

그렇죠!....

그 사랑의 힘이 보고픈 사람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고마워요~...늘........

댓글
2010.02.05 03:11:23 (*.159.49.24)
바람과해

안타까운 사연 보고나니

가슴이 짠하네요

부인과 아기가 행복하길 바라며..

 

댓글
2010.02.08 18:57:22 (*.56.3.21)
데보라
profile

가슴 저미는 안타까움이였지요

그러나 그들을 만나게 한

사랑의 힘이 대단하지요

참... 감사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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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해
1582   2010-02-15 2010-02-16 15:21
 
421 소망성취 하세요...... 3 file
별빛사이
2168   2010-02-13 2010-02-15 15:16
 
420 이해인수녀 김수환추기경에 드리는 편지 1
청풍명월
1971   2010-02-10 2010-02-12 16:09
 
419 ♣2만5천원의 友情 4
바람과해
1755   2010-02-09 2010-03-31 15:28
 
418 ...내 삶에 휴식이 되어주는 이야기 3
데보라
1450   2010-02-09 2010-02-11 10:54
 
417 어느95세 어른의수기 4
청풍명월
2466   2010-02-07 2010-02-12 13:31
 
416 내 영혼의 반쪽/.. 소울메이트
데보라
1822   2010-02-06 2010-02-14 13:32
 
415 재치있는 이발사의 말솜씨 3
데보라
1759   2010-02-06 2010-02-07 10:41
 
414 무능한 중 外 / 샤를르 보들레르
琛 淵
1542   2010-02-04 2010-02-04 16:57
 
413 이별 동경 / Johann Wolfgang von Goethe 1
琛 淵
1463   2010-02-01 2010-02-02 11:59
 
412 어머니의 사랑 2
데보라
1528   2010-01-28 2010-02-02 19:51
 
♡ 어느 의사가 말하는 감동 이야기(실화) ♡ 9
데보라
1627   2010-01-24 2010-02-08 18:57
♡ 어느 의사가 말하는 감동 이야기(실화) ♡ 죽음마저 거부한 사랑 지금으로 5년전, 내가 진주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공사장에서 추락 사고로 뇌를 다친 26살의 한 젊은이가 새벽에 응급실로 실려왔다. 이미 그의 얼굴과 머리는 심하게 손상되...  
410 ♡ 겨울나무 편지♡ 2
청풍명월
1370   2010-01-24 2010-01-24 15:42
 
409 나는 내가 아닙니다/...어느 40대의 고백 4
데보라
1635   2010-01-21 2010-02-03 10:54
 
408 ♡ ...여보게 친구 ...♡ 3
데보라
1818   2010-01-19 2010-02-02 12:16
 
407 술 이 란 ? 4 file
청풍명월
1525   2010-01-19 2010-02-06 23:30
 
406 늙은 아버지의 질문... 6
데보라
1657   2010-01-18 2010-02-01 17:54
 
405 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 15
데보라
1758   2010-01-11 2010-01-27 13:10
 
404 ♣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며 / 향일화 3
niyee
1770   2010-01-11 2010-01-17 22:25
 
403 ♡ 말은 씨앗과 같습니다 ♡ 6
데보라
1481   2010-01-10 2010-01-13 21:48
 
402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 7 file
청풍명월
1267   2010-01-10 2010-02-12 01:44
 
401 부부란 이런 거래요.. 1
데보라
2495   2010-01-08 2014-09-0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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