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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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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슬픔도 고통도 부끄러움도 없는 나라에서 편히 쉬고 계실 테지요? 일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네요. 추기경님께서 남기신 사랑의 나눔정신은 더 크고 넓게 확산돼 갑니다. 추기경님을 본받아 저도 장기기증서(2005년 심장 기증 서약)를 소중히 보관해 두고 있답니다. 제가 추기경님을 처음 뵌 것은 1965년 부산 분도병원 약국에서 꼬마 예비수녀로 있을 때였습니다.
특별히 아끼시던 약국장 김지상 수녀님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그 무렵 추기경님께선 가톨릭신문사 사장으로 재직하셨어요. 검은 구두를 벗어 들고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시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난해 명동성당에서 유난히 크게 보였던 그 구두를 보며 문득 옛 생각이 났었지요. 49년 7월 11일 지금은 대부분 고인이 되신 우리 수녀원 초창기 수녀님들을 부산까지 안내하던 신학생이 바로 추기경님이셨다는 기록을 보니 새삼 반가웠습니다. 이런저런 특별한 인연에서인지 먼 길에도 우리 집 큰 행사에는 꼭 참석하셨던 추기경님이셨어요.
저 역시 추기경님을 종종 사석에서, 공석에서 뵐 수 있었어요. 2008년 서울성모병원에서는 좀 더 인간적으로 가까이 뵐 수 있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문병을 가고 싶어도 자제하고 있던 저를 어느 날 추기경님이 병실로 불러주셨어요. 그 후 미사에도 참여하고 간식도 같이 먹는 영광을 누렸지요. 늘 즐겁게 해 드리고 싶어 왈가닥처럼 행동하는 저를 보며 빙그레 웃어주시던 모습도 그립습니다.
병실에 어쩌다 잘 모르는 이가 있으면 누구냐고, 어디서 왔느냐고, 못 알아봐 미안하다며 자신이 불편한 중에도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잊지 않으시는 모습에서 저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성인의 덕목은 친절함, 한결같음, 남을 편하게 해 주는 자연스러움이라는 것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저더러 항암치료 받느냐고 물으셔서 그렇다고 하니 연민의 정 가득한 눈빛으로 “그래? 대단하다 수녀!” 하시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힘든 치료를 하는 이들에게 종종 “대단하세요, 정말!” 하며 추기경님의 그 표현을 흉내 내어 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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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수녀원 잔디밭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이해인 수녀와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다. |
| 막상 먼 길 떠나시고 나니 방해가 돼도 좀 더 자주 찾아 뵐 걸, 같이 사진도 찍고 추기경님의 그림이 있는 달력에 사인도 받아두고 덕담도 녹음해 둘 걸 등등, 욕심에서 오는 인간적인 아쉬움이 가득하지 뭐예요. ‘마더 테레사 효과’가 있듯이 저는 요즘 종종 ‘아버지 김수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답니다. 마치 희망과 기쁨의 게임을 하듯이 필요할 때마다 이름을 부르며 도움을 청하는 것이지요. 사실 처음부터 부른 것은 아니고 하도 다급하니까 어느 날 저절로 부르게 되었고 왠지 잘 도와주실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팔이 아프고 허리가 아플 적에도 병원 가기 전에 일단 통증을 조금만 멎게 해 달라고 전구(傳求·성모님 혹은 성인에게 주님께 대신 기도해달라고 구하는 것)를 하면 거짓말같이 괜찮아지곤 했답니다. 급히 찾아야 하는 물건이 있을 적에도 ‘제발 좀 도와주세요!’ 하거든요. 오늘도 창고에 보관해둔 수많은 사진 중에서 딱 두 장만 추기경님과 같이 찍은 것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니 신기하게도 5분 안에 금방 찾아지는 거였어요.
지인들에겐 일일이 친필로 글을 적으신 다정함도 잊을 수 없습니다. 진정 당신의 일생은 세상과 인간을 향해 깨어있는 ‘사랑의 인사’였습니다. ‘모든 이의 모든 것’ 되신 둥글고 따뜻한 사랑의 영성, 받은 사랑 과분하고 베푼 사랑 부족했다 하신 겸손의 영성, 남모르는 고독 속의 아픔과 인내로 빚어내신 평화의 영성,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고 고마운 일부터 찾아내신 감사의 영성, 날마다 새롭게 삶 속에 가슴속에 되새기며 사는 이 땅의 우리를 축복하소서.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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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시며 수녀이신 이해인 김수환 추기경님께
드리는 편지 를보고 감동 했습니다
수녀님은 투병중에 게시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데
대단하신분으로 찬사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