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좋은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

글 수 900

새의먹이깜.jpg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지퍼가 고장난 검은 가방 그리고 색바랜 옷.....
내가 가진 것 중에 헤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사전 뿐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원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칠판을 지우고 물걸레 질을 하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를 들고 이 교실 저 교실 바쁘게
옮겨 다녀야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머리에 하얗게
분필 가루를 뒤집어 쓴 채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속에선 앞날에 대한 희망이
고등어 등짝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다니며,  
가을에 입던 홑 잠바를 한겨울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갔다. 
그런데 몇 걸음 뒤에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눈물을 참으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 날밤 나는 졸음을 깨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 가며 밤새워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어릴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형과 나,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은 불행히도 나와 같은 장애인이다. 
중증 뇌성마비인 형은 심한 언어장애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려면 얼굴 전체가 뒤틀려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형은 엄마가 잘 아는 과일 도매상에서
리어카로 과일 상자를 나르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런 형을 생각하며 나는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하던 날,  
나는 합격 통지서를 들고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 날도 엄마는 좌판을 등지고 앉아
꾸역꾸역 찬밥을 드시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등뒤에서
엄마의 지친 어깨를 힘껏 안아 드렸다.
'엄마...엄마..., 나 합격했어.....'
나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엄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엄마도 드시던 밥을 채 삼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 골목에서
한참동안 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그날 엄마는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에게
함지박 가득 담겨있는 생선들을 돈도 받지 않고 모두 내주셨다.
그리고 형은 자신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 나를 태운 뒤.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내게 입혀 주고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나를 자랑하며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때 나는 시퍼렇게 얼어있던 형의 얼굴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시장 한 구석에 있는 순대국밥 집에서
우리 가족 셋은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엄마는 지나간 모진 세월의 슬픔이 북받치셨는지
국밥 한 그릇을 다 들지 못하셨다.
그저 색바랜 국방색 전대로 눈물만 찍으며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너희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기뻐했을텐데......
너희들은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원래 심성은 고운 분이다.
그토록 모질게 엄마를 때릴만큼 독한 사람은 아니었어.
계속되는 사업 실패와 지겨운 가난 때문에 매일 술로 사셨던 거야.
그리고 할말은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몸이 성치 않은 자식을
둔 애비 심정이 오죽했겠냐?

내일은 아침일찍 아버지께 가 봐야겠다.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알려야지.'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는데,
늘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들 앞에서 엄마를 때렸다.
그러다가 하루종일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서 한 장만 달랑 남긴 채 끝내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나는 우등상을 받기 위해 단상위로 올라가다가
중심이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계단 중간에서 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이지 못할 만큼 온 몸이 아팠다.

그때 부리나케 달려오신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얼른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잠시 뒤 나는 흙 묻은 교복을 털어 주시는
엄마를 힘껏 안았고 그 순간,
내 등뒤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한번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들렀는데
여학생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절룩거리며 그들 앞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구석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측은해 보일까봐,
그래서 혹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까봐
주머니 속의 동전만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열람실로 돌아왔다.
그리곤 흰 연습장 위에 이렇게 적었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건 굽이굽이 고개 넘어
풀꽃과 함께 누워계신 내 아버지를 용서하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꽃등처럼 환히 나를 깨어 준
엄마와 형에게 사랑을 되갚는 일이다.



지금 형은 집안 일을 도우면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한시간씩
큰소리로 더듬더듬 책을 읽어 가며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발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채.
오늘도 나는 온종일 형을 도와 과일 상자를
나르고 밤이 되서야 일을 마쳤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두운 창 밖을 바라보며
문득 앙드레 말로의 말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말이다.


**위의 글은 10 년전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에서 고른 글이다.



그후 이 학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하여
지금은 미국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여 박사과정에 있으며 
국내의 굴지 기업에서 전부 뒷바라지를 하고있으며
어머니와 형을 모두 미국으로 모시고 가서
같이 공부하면서 가족들을 보살핀다고 한다.



이글은 한번만 읽기보다는 두서너번 읽을수록
가슴에 뜨거운 전류가 흐른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울 적에
올라가던 암벽에서 생명줄인 밧줄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요즘 우리사람들은 사랑이나 행복. 성공을
너무 쉽게 얻으려고 하고
노력도 해보기전 너무도 쉽게 포기하려고 한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이런글에서 배워야 하리라.

 

- 흐르는 음악 :Les Larmes Aux Yeux(흘러 내리는 눈물) -


댓글
2010.06.19 10:51:59 (*.184.73.20)
바닷가

청풍명월님

또 다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전 이보다는 몇배나 나은 환경속에서 공부했지만 그때 어렵게 공부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댓글
2010.06.19 11:01:40 (*.186.21.11)
청풍명월

바닷가님 감명깊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댓글
2010.06.19 16:00:36 (*.159.49.14)
바람과해

불행한 가정이지만

온식구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광명이 비칠거예요.

가슴이 뭉클한 글 잘 보았습니다.

댓글
2010.06.19 16:24:01 (*.186.21.11)
청풍명월

바람과해님 감명깊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늘 건강에 유의 하세요

댓글
2010.06.22 00:15:41 (*.2.36.110)
고운초롱

캄캄한 터널속을 헤쳐나와

고로케도 훌륭한 박사가 되었는데 ...........

 

초롱인 쪼분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드릴게욤^

구론데~

난 모얌??

넘넘 부끄부끄럽네용

 

울 청풍명월님 감동의 글 잘 보았습니당

고운밤 되세요^^

댓글
2010.06.24 06:57:30 (*.186.21.11)
청풍명월

고운초롱님  감명깊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아빠의 눈물~ (1)
데보라
2010.07.13
조회 수 3212
♣ 청보리 / 시 조용순 (1)
niyee
2010.07.13
조회 수 3862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3)
바람과해
2010.07.11
조회 수 3553
천천히 가자 (5)
데보라
2010.07.09
조회 수 3372
빨간주머니와 노란주머니 (5)
데보라
2010.07.08
조회 수 3786
3천원이 가저다 준 행복 (7)
바람과해
2010.06.28
조회 수 2496
조회 수 3742
쥔것을 놓아라 (2)
데보라
2010.06.22
조회 수 3495
바보 마누라~ (2)
데보라
2010.06.20
조회 수 3298
조회 수 2834
아내의 만찬 (5)
청풍명월
2010.06.15
조회 수 2949
당신의 말이 행복을 만든다.. (2)
바람과해
2010.06.15
조회 수 3447
나는 미운 돌멩이... (3)
데보라
2010.06.12
조회 수 2909
조회 수 2671
붕어빵 아주머니와 거지아이 (2)
바람과해
2010.06.11
조회 수 2514
조회 수 3662
조회 수 5717
사랑의 유산~ (2)
데보라
2010.06.08
조회 수 3227
진드기..신부 입장 (1)
데보라
2010.06.08
조회 수 3292
어느아빠의 감동적인 스토리 (8)
청풍명월
2010.06.04
조회 수 3229
♣ 1000 억짜리의 강의 ♣ (4)
데보라
2010.06.02
조회 수 2624
아내의 사랑 (1)
데보라
2010.06.01
조회 수 2635
아침 편지 - 사랑의 수고 (6)
데보라
2010.05.28
조회 수 3963
희망이라 는 약 (3)
바람과해
2010.05.26
조회 수 3910
나폴레옹과 사과파는 할머니 (2)
바람과해
2010.05.19
조회 수 3857
♬♪^ 코^ 아가야는 디금 (2)
코^ 주부
2010.05.18
조회 수 4033
조회 수 3522
모래위의 발자국~ (2)
데보라
2010.05.14
조회 수 10757
두 少年의 아름다운 友情이야기 (4)
바람과해
2010.05.07
조회 수 3087
조회 수 3393
조회 수 2828
♬♪^. 쉿` 1급비밀 (7)
코^ 주부
2010.04.22
조회 수 3493
♬♪^ . 꿈의 넓이 (11)
코^ 주부
2010.04.20
조회 수 3754
♣ 들꽃의 교훈 / 박광호 (2)
niyee
2010.04.14
조회 수 3300
조회 수 2847
조회 수 2703
어느 대학교 졸업 식장에서 (6)
바람과해
2010.04.02
조회 수 2763
또 아픕니다 (3)
오작교
2010.04.02
조회 수 2494
좋은 사람 (2)
바람과해
2010.04.01
조회 수 2737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1)
바람과해
2010.03.28
조회 수 2311
소중한 벗에게 띄우는 편지 (4)
바람과해
2010.03.23
조회 수 2468
♣ 꽃바람 -詩 김설하 (1)
niyee
2010.03.21
조회 수 2125
조회 수 2584
♠ 좋은글 좋은생각♠ (3)
청풍명월
2010.03.19
조회 수 5259
☆ 신부님과 과부 이야기☆ (3)
청풍명월
2010.03.17
조회 수 2434
조회 수 3329
조회 수 4504
행복 십계명 (1)
바람과해
2010.03.15
조회 수 2770
반기문 총장의 성공 비결 19계명 (1)
바람과해
2010.03.14
조회 수 2251
百壽의 秘訣은勞力 (4)
청풍명월
2010.03.14
조회 수 2039
♡ 단한번 주어진 특별한 하루♡ (7)
청풍명월
2010.03.11
조회 수 2304
♬♪^ . 섬안의 섬 (8)
코^ 주부
2010.03.10
조회 수 1925
조회 수 2155
내게온 아름다운 인연 (2)
바람과해
2010.03.06
조회 수 2594
조회 수 2064
아! 어머니 / 신달자 (2)
niyee
2010.03.06
조회 수 2184
아름다운 인생을 위하여 (1)
바람과해
2010.03.06
조회 수 2197
내人生에 가을이 오면 (2)
청풍명월
2010.03.03
조회 수 2170
잃은 것, 남은 것 (1)
바람과해
2010.03.03
조회 수 2077
빨간 벙어리 장갑 (5)
청풍명월
2010.03.02
조회 수 1916
친구야 나의 친구야! (1)
데보라
2010.03.01
조회 수 2300
행복 요리법 (1)
데보라
2010.03.01
조회 수 1959
조회 수 1789
나이가 가져다 준 선물 (4)
데보라
2010.02.28
조회 수 2354
참 좋은 일입니다 (2)
바람과해
2010.02.28
조회 수 2051
조회 수 1700
호롱불 같은 사람이 되려무나 (2)
데보라
2010.02.26
조회 수 2381
아줌마는 하나님 부인이세요? (3)
바람과해
2010.02.25
조회 수 1714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어 보세요. (3)
바람과해
2010.02.24
조회 수 1899
조회 수 1878
내인생에 가을이오면 윤동주 (6)
청풍명월
2010.02.17
조회 수 1942
당신곁에 내리고 싶습니다 (3)
장길산
2010.02.16
조회 수 1792
옹달샘 같은 친구 (2)
바람과해
2010.02.15
조회 수 1657
소망성취 하세요...... (3)
별빛사이
2010.02.13
조회 수 2238
조회 수 2039
♣2만5천원의 友情 (4)
바람과해
2010.02.09
조회 수 1812
조회 수 1519
어느95세 어른의수기 (4)
청풍명월
2010.02.07
조회 수 2538
조회 수 1894
재치있는 이발사의 말솜씨 (3)
데보라
2010.02.06
조회 수 1843
조회 수 1615
조회 수 1538
어머니의 사랑 (2)
데보라
2010.01.28
조회 수 1601
조회 수 1696
♡ 겨울나무 편지♡ (2)
청풍명월
2010.01.24
조회 수 1447
조회 수 1710
♡ ...여보게 친구 ...♡ (3)
데보라
2010.01.19
조회 수 1892
술 이 란 ? (4)
청풍명월
2010.01.19
조회 수 1604
늙은 아버지의 질문... (6)
데보라
2010.01.18
조회 수 1721
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 (15)
데보라
2010.01.11
조회 수 1824
조회 수 1849
♡ 말은 씨앗과 같습니다 ♡ (6)
데보라
2010.01.10
조회 수 1563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 (7)
청풍명월
2010.01.10
조회 수 1338
부부란 이런 거래요.. (1)
데보라
2010.01.08
조회 수 2561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