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LPGA 2번째 제패한 장정 그녀의 우승 세러모니는 ‘묵념’



뉴욕대회후 인근 한국戰 참전용사 묘역참배


“당신들의 희생 있었기에… 내년에도 올 것”


윤희영기자 hyyoon@chosun.com

입력 : 2006.06.27 00:30 33'












장정이 17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 우승을 확신하고 있을 때였다. 딸을 따라다니며 경기를 지켜보던 장정의 아버지 장석중(62)씨 곁으로 단아한 차림의 한 아주머니가 다가섰다.

 

“근처에 한국전쟁 참전용사 묘역이 있는데 오늘이 한국전쟁 56주년 되는 날이어서 기념행사가 있었어요. 마침 오늘 따님이 이 미국 땅에서 자랑스럽게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50대 후반쯤 돼 보이는 교민 아주머니였다.


 


장씨는 딸의 경기가 끝나는 대로 함께 묘역을 참배하고 싶다고 했다. 생존 참전용사들에게 인사도 드리고 싶다며 만남을 주선해 주도록 부탁했고, 그 아주머니는 흔쾌히 그 뜻을 받아들였다.


 


장정이 25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주 로커스트힐 골프장에서 열린 미LPGA 투어 웨그먼스대회에서 우승한 직후 인근 로체스터 국립묘지 내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묘역을 찾았다.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돌아온 이 지역 출신 참전용사 165명의 영령 앞에 머리를 숙였다. “당신들께서 우리나라를 위해 싸워주셨기에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됐습니다.”


 


장정은 생존 참전용사 대표로 나온 조 보겔(77·참전 당시 상병), 돈 코프스키(72·당시 병장)씨와 함께 165명 전몰 장병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기념비 앞에 나란히 서서 묵념을 올렸다. “경찰이었던 제 큰아버지도 한국전쟁 당시 전사하셨습니다. 어쩌면 당신들과 멀지 않은 곳에 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정 부녀가 도착한 묘역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반기(半旗)로 걸려 있었다. 매년 6월 25일 기념행사를 하며 반기를 게양하고, 7월 27일까지 그 상태로 놓아 둔다고 했다. 전쟁 발발 이후 유엔이 한국전쟁 참전 결정을 내린 날짜까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40~50명의 참전용사가 기념식에 참가했으나, 최근엔 해가 다르게 그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장정 부녀는 아주머니께 “이 말은 꼭 좀 통역을 해주세요” 하고 부탁했다. “젊은 시절 희생을 무릅쓰고 도와주신 덕분에 지금 우리는 평화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감사하다는 것 외엔 뭐라고 다른 말씀을….”


 


보겔씨는 딴소리를 했다. “우리가 도와줬다고는 하지만, 많은 한국 사람들이 같이 싸워서 얻은 평화이고요. 이제 와서 보니 한국전에 참전한 것이 우리에게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오늘이 한국전쟁 기념일이어서 한국에서 온 이 ‘꼬마 아가씨’가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하는 덕담도 건넸다.


 


“갑자기 오게 돼서 아무 준비도 못 하고…. 부끄럽지만, 작은 성의로 생각해 주시면….” 장정은 보겔씨 손에 봉투 하나를 쥐어드리며 “내년 대회에 참가하러 올 때 다시 정식으로 인사하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할아버지한테 1000달러밖에 못 넣어드렸어요. 어쩌면 좋아요.” 장정은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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