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곁에 가는 날 입니다.


오늘은 그대에게 가는 날 입니다.
내 오늘은 그대에게 가서 내 가슴에 맺혀있는 아픔과 슬픔,
서러움과 외로움을 하나도 남김없이 털어놓을 것입니다.
그대 오늘은 마음을 비우고 종일 나를 기다려 주십시오.

오늘은 그대에게 가는 날입니다.
내 오늘은 그대에게 가서 내 마음에 쌓여있는 미움과 욕심과 질투와
교만의 못된 모습들을 다 고해 바칠 것입니다.
그대 오늘은 문을 활짝 열어 두고 내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달려 나와
나를 꼬옥 껴안아 주십시오.

오늘은 그대에게 가는 날입니다.
내 오늘은 그대에게 가서 내 삶을 둘러싸 고 있는 겹겹의 갈등과
무거운 일들을 모두 일러바칠 것입니다.
그대 오늘은 멀리 가지 마시고 집에서 겨울준비를 하고 계십시오.
그리고 내가 가면 나를 따뜻한 곳에 앉게 해 주십시오.

오늘은 그대에게 가는 날입니다.
내 오늘은 그대에게 가서 내 착한 마음과 남몰래 베푼 선행과 눈물의
기도를 모두 말해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오늘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 내 등뒤에 서서 지친
내 두 어깨를 다독거려만 주십시오.

오늘은 그대에게 가는 날입니다.
내 오늘은 그대에게 가서 모든 것 털어 내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내 사랑의 소식을 전할 것입니다.
그때 그대는 "가슴이 설렌다" 는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차마 "사랑한다" 는 말은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그대에게 가는 날입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날씨는 맑고 바람 한 점없습니다.
다리는 튼튼하고 몸은 가볍습니다.
이미 문은 얼렸고 나서기만 하면 됩니다.
아! 그러나 오늘도 떠나지 못하겠습니다. 내 마음의 아픔들을 전하고
돌아올 때 그 아픔들이 그대 가슴에 남을 일이 걱정되어
오늘도 그대에게 가지 못하고 문을 닫습니다.

정용철 《마음이 쉬는 의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