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좋은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
글 수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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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 하
노 을
장돌뱅이 차림을 하고 꼭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
저기만큼 걸어가고 있어
어릴 적 동뫼로 산소 가던 일, 할아버지 상여 뒤를
따라가던 일들을 연거푸 생각하며 낯이 붉어
재개재개 따라 언덕마루까지 와 보면 거기
고운 자줏빛으로
텅 비어 있는…텅 비어 있는…
저녁답의 시
사다놓고 잊어버린
말의 뒷굽만한 무가
시들고 있다.
동네 슈퍼에서 반백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짝꿍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어서 자리를 피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러지 않아도
달아날 참이었다
물 없는 바다를 걸어
본인은 마악 은하계 제5행성
가리칼리 조폐공사를 한탕하고 온 참이거든
하지만 지금은
터질 지경으로
급하단 말씀야
화장실이
풀장엘 다녀오는지
아직도 발그레한
그녀 귓볼 너머로
비갠 추녀끝 같은
하늘 한쪽이
코발트 빛으로 젖어 있었다.
겨울 저녁의 시
삼각모를 쓴 쬐깐
바라크 들창과 들병이네 방과
빈대떡집과 굴뚝과 하아라한
저 아름다운 연기
섣달 저녁답을 걸어갈 때는
예편네와 간밤에 통정을 하고
싸구려, 싸구려를 낄낄대는 장돌뱅이들의
울음 섞인 목청과
눈감은
파리한 여자와
섣달 저녁답을 걸어갈 때는
장터를 벗어나면 천당 뒷켠인 듯
황홀한 노을자리와
바람자락에 문지르는
두 쪽 내 염통과
단순하게 단순하게
살아 있는 누이 집을 가듯이
단순하게
헛전헛전 이 세상을
걸어가고 싶어라
시인 소개
출생 : 1937년 4월 20일 (경상남도 밀양)
가족 : 딸 소설가 윤이형
학력 : 홍익대학교
1956년 새벗에 동화 '수정구슬' 당선
1957년 현대문학 데뷔
1959년 신태양에 소설 '황색강아지' 당선
1961년 한국일보에 소설 '손' 입상
199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객원교수
1995년 명지대 객원교수
1995년 서울예전 강사
1999년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1953년 제 1회 학원문학상
1985년 제 9회 이상문학상
1987년 한국일보문학상
1999년 재 9회 편운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