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좋은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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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마저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 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혼령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갔었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이 바람속에
바람은 찢겨진 피리의 소리
하설은 파적(破笛)의 피울음이 아니고야
바람은 분명 찢겨진 피리
나도 바람처럼 울던 날을 가졌더랍니다.
달밤에 벗은 맨몸과도 같은
염치 없고도 어쩔 수 없는 이 회상
견뎌 낸 슬픔도 지나고
못 견딘 슬픔도 지나고
모두 물처럼 이젠 흘러 갔는데
잊어 버리노라 죽을 뻔하고
잊히움에서 못내 쓰라린 가슴
왜 아직 이런 것이 남았답니까
정념(情念)의 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熱氣)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는
이제금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것이란다.
황제의 항서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래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 드린다.
너를 위하여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祝願).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서 시
가고 오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더 기다려 줍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부끄러워 할 것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 없습니다
요행이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 부디 먼저 사랑하고
많이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 됩시다
물망초
기억해 주어요 부디 날 기억해 주어요
나야 이대로 못잊는 연보라의 물망초지만
혹시는 날 잊으려 바라시면은
유순히 편안스레 잊어라도 주어요
나야 언제나 못잊는 꽃이름의 물망초지만
깜깜한 밤에 속 잎파리 피어나는
나무들의 기쁨
당신 그늘에 등불 없이 서 있어도 달밤 같은 위로
사람과 꽃이
영혼의 길을 트고 살았을 적엔
미소와 도취만이 큰 배 같던 걸
당신이 간 후 바람결에 내버린 꽃빛 연보라는
못잊어 넋을 우는 물망초지만
기억해 주어요 지금은 눈도 먼 물망초지만
사 랑
오래 잊히음과도 같은 병(病)이었습니다
저녁 갈매기 바닷물 휘어적신 날개처럼
피로한 날들이 비늘처럼 돋아나도
북녘 창가게
내 알지 못할 이름의 아픔이던 것을
하루 아침 하늘 떠받고 날아가는
한 쌍의 떼기러기를 보았을 때
어쩌면 그렇게도
한없는 눈물이 흐르고
화살을 맞은 듯 갑자기
나는 나의 병 이름의 그 무엇인가를 알수가 있었습니다
그대 있음에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사람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가난한 이름에게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여인을 만나지 못해
당신도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까
검은 벽의
검은 꽃 그림자 같은 어두운 향로
고독 때문에
노상 술을 마시는 고독한 남자들과
이가 시린 한겨울 밤
고독 때문에 한껏 사랑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들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얼굴을 가리고
고독이 아쉬운 내가 돌아갑니다
불신과 가난
그중 특별하기론 역시 고독 때문에
어딘지를 서성이는
고독한 남자들과 허무와 이별
그중 특별하기론 역시 고독 때문에
때로 골똘히 죽음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들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머리를 수그리고
당신도 고독이 아쉬운 채 돌아갑니까
인간이라는 가난한 이름에
고독도 과해서 못 가진 이름에
울면서 눈감고 입술을 대는 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 김남조 시인은~~~
1927년 9월 26일 경북 대구 출생
1940년 대구에서 초등학교 졸업
1944년 일본 후꾸오까(福岡)시 규슈여고(九州女高)졸업
1947년 서울대학교 문예과(文藝科) 수료
1951년 서울대 사범대 국문과 졸업
마산 성지여고, 마산고 교사
1953년 시집 『목숨』 간행
이화여고 교사. 서울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강사
1984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소설 문학에 꽁트 「아름다운 사람들」 연재(24개월간)
1985년 日譯詩集 『바람과 나무들』을 간행(花神社)
<서울시문화상> 수상
1986년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
1988년 시집 『바람세례』 간행.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한국방송공사(KBS)이사
1990년 예술원 회원
1991년 서강 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1992년 <三·一 문화상> 수상
1993년 숙명여자대학교 정년퇴임, 명예교수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음
英譯시집을 미국 코오넬대학에서 간행함
1995년 시집 『평안을 위하여』 간행
日譯詩集 『바람세례』 간행(花神社)
1996년 독일어번역시집 『바람세례』 간행. 독일 홀레만출판사
예술원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