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좋은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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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순 (吳相淳)
방랑(放浪)의 마음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魂)
바다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戀慕)하는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 속에
바다를 그려 보다 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
옛 성 위에 발돋움하고
들 너머 산 너머 보이는 듯 마는 듯
어릿거리는 바다를 바라 보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바다를 마음에 불러일으켜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깊은 바닷소리
나의 피의 조류(潮流)를 통하여 오도다.
망망(茫茫)한 푸른 해원(海原)
마음 눈에 펴서 열리는 때에
안개 같은 바다와 향기 코에 서리도다
첫날 밤
어어 밤은 깊어 화촉동방의 촛불은 꺼졌다.
허영의 의상은 그림자마저 사라지고
그 청춘의 알몸이
깊은 어둠바다 속에서
어족(魚族)인 양 노니는데
홀연 그윽히 들리는 소리 있어
아야 ...야 !
태초 생명의 비밀 터지는 소리
한 생명 무궁한 생명으로 통하는 소리
열반(涅槃)의 문 열리는 소리
오오 구원의 성모 현빈(玄牝)이여 !
머언 하늘의 뭇 성화는
이 밤을 위하여 새로 빛날진저 !
밤은 새벽을 배고 침침히 깊어 간다.
오상순 (吳相淳 1894∼1963)
시인. 호는 선운(禪雲)
공초(空超). 서울 출생
1918년 일본 도지샤대학[同志社大學(동지사대학)]
종교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20년 김억(金億) 등과 함께 《폐허(廢墟)》 동인으로
참가하여 창간호에 <시대고와 그 희생>이라는 논설적 수필을 발표한 뒤,
계속 시를 발표하였다.
초기 시들은 주로 운명을 수용하려는 순응주의와
동양적 허무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1923년에는 시 《폐허의 제단》 《허무혼의 선언》 등을
발표하여 일제강점기하의 삶을 허무와 세속에서의
일탈로 영위하려는 몸부림을 보였다.
그의 일생은 《방랑의 마음》에 표현된 것처럼
방랑과 담배연기, 고독과 허무혼 등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힘의 숭배》 《힘의 비애》
《가위쇠》 《의문》 《어느 친구에게》 《나의 고통》
《아시아의 마지막 밤풍경》 《첫날밤》 등 50여 편의 시가 있고,
사후 《공초오상순시선》이 간행되었다.
1956년 예술원상, 1962년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다.
1963년 서울 수유동(水踰洞)에 시비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