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좋은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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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8 12:38:02 (*.145.21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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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 훈(沈薰)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鍾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曺)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鼓)을 만들어 둘처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봄 비 하나님이 깊은 밤에 피아노를 두드리시네 건반(鍵盤) 위에 춤추는 하얀 손은 보이지 않아도 섬돌에, 양철 지붕에, 그 소리만 동당 도드랑, 이 밤엔 하나님도 답답하셔서 잠 한숨도 못이루시네 밤 깊은 밤 바람이 뒤설레이며 문풍지가 운다. 방 텅비인 방 안에는 등잔불의 기름 조는 소리뿐 쥐가 천장을 모조리 써는데 어둠은 아직도 창 밖을 지키고, 내 마음은 무거운 근심에 짓눌려 깊이 모를 연못 속에서 자맥질한다. 아아, 기나긴 겨울 밤에 가늘게 떨며 흐느끼는 고달픈 영혼의 울음소리.... 별 없는 하늘 밑에 들어 줄 사람 없구나! 痛 哭 큰 길에 넘치는 백의의 물결 속에서 울음소리 일어난다. 총검이 번득이고 군병(軍兵)의 말굽소리 소란한 곳에 분격(憤激)한 무리는 몰리며 짓밟히며 땅에 엎디어 마지막 비명을 지른다. 땅을 뚜드리며 또 하늘을 우러러 외오치는 소리 느껴 우는 소리 구소(九소)에 사모친다. 검은 「댕기」드린 소녀여 눈송이같이 소복 입은 소년이여 그 무엇이 너희의 작은 가슴을 안타깝게도 설움에 떨게 하더냐 그 뉘라서 저다지도 뜨거운 눈물을 어여쁜 너희의 두 눈으로 짜내라 하더냐? 가지마다 신록(新綠)의 아지랑이가 되어 오르고 종달새 시내를 따르는 즐거운 봄날에 어찌하여 너희는 벌써 기쁨의 노래를 잊어버렸는가? 천진한 너희의 행복마저 차마 어떤 사람이 빼앗아 가던가? 할아버지여! 할머니여! 오직 무덤 속의 안식 밖에 희망이 끊긴 노인네여! 조팝에 주름잡힌 얼굴은 누르렀고 세고(世苦)에 등은 굽었거늘 창자를 쥐어 짜며 애통하시는 양은 차마 뵙기 어렵소이다. 그치시지요 그만 눈물을 거두시지요 당신네의 쇠잔한 자골이나마 편안히 묻히고저 하던 이 땅은 남의 「호미」가 샅샅이 파헤친 지 이미 오래어늘 지금에 피나게 우신들 한번 간 옛날이 다시 돌아올 줄 아십니까? 해마다 봄마다 새 주인은 인정전(仁政殿) 「벚꽃」그늘에 잔치를 베풀고 이화(梨花)이ㅡ 휘장(徽章)은 낡은 수레에 붙어 티끌만 날리는 폐허를 굴러다녀도 일후(日後)란 뉘 있어 길이 설워나 하랴마는.... 오오 쫓겨가는 무리여 쓰러져 버린 한낱 우상 앞에 무릎을 꿇치 말라! 덧없는 인생 죽고야 마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어니 한 사람의 돌아오지 못함을 굳이 설워하지 말라. 그러나 오오 그러나 철천(徹天)의 한을 품은 청상(靑孀)의 설움이로되 이웃집 제단조차 무너져 하소연할 곳 없으니 목매쳐 울고저 하나 눈물마저 말라붙은 억색(抑塞)한 가슴을 이 한날에 뚜드리며 울자! 이마로 흙을 비비며 눈으로 피를 뿜으며 孤 獨 진종일 앓아누워 다녀간 것들 손꼽아 보자니 창살을 걸어간 햇발과 마당에 강아지 한 마리 두 손길 펴서 가슴에 얹은 채 임종(臨終) 때를 생각해 보다. 그림자하고 단 둘이서만 지내는 살림이어늘 천장이 울리도록 그의 이름은 불렀는고 쥐라도 들었을세라 혼자서 얼굴 붉히네. 밤 깊어 첩첩이 닫힌 덧문 밖에 그 무엇이 뒤설레는고 미닫이 열어젖히자 굴러드느니 낙엽 한 잎새 머리맡에 어루만져 재우나 바시락거리며 잠은 안 자네. 값없는 눈물 흘리지 말자고 몇 번이나 맹세했던고 울음을 씹어서 웃음으로 삼키기도 한 버릇 되었으련만 밤중이면 이불 속에서 그 울음을 깨물어 죽이네. 풀밭에 누워서 가을날 풀밭에 누워서 우러러보는 조선의 하늘은 어쩌면 저다지도 푸르고 높을까요? 닦아 논 거울인들 저보다 더 깨끗하리까. 바라면 바라볼수록 천 리 만 리 생각이 아득하여 구름장을 타고 같이 떠도는 내 마음은, 애달픈 심란스럽기 비길 데 없소이다. 오늘도 만주(滿州)벌에서는 몇 천 명이나 우리 동포가 놈들에게 쫓겨나 모진 악형(惡刑)까지 당하고 몇 십 명씩 묶여서 총을 맞고 거꾸러졌다는 소식! 거짓말이외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거짓말 같사외다. 고국의 하늘은 저다지도 맑고 푸르고 무심하거늘 같은 하늘 밑에서 그런 비극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소이다. 언땅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은 상팔자지요. 철창 속에서라도 이 맑은 공기를 호흡하고 이 명랑한 햇발을 쬐어 볼 수나 있지 않습니까? 논두렁 버티고 선 허자비처럼 찢어진 옷 걸치고 남의 농사(農事)에 손톱 발톱 달리다가 풍년 든 벌판에서 총을 맞고 그 흙에 피를 흘리다니.... 미쳐날듯이 심란한 마음 걷잡을 길 없어서 다시금 우러르니 높고 맑고 새파란 가을 하늘이외다. 분한 생각 내뿜으면 저 하늘이 새빨갛게 물이 들듯하외다. 故鄕은 그리워도 나는 내 고향을 가지를 않소. 쫓겨난 지가 10년이나 되건만 한번도 발을 들여 놓지 않았소, 멀기나 한가, 고개 하나 넘어연만 오라는 사람도 없거니와 무얼 보러 가겠소? 개나리 울타리에 꽃 피던 뒷동산은 허리가 잘려 문화주택이 서고 사당 헐린 자리엔 신사가 들어 앉았다니, 전하는 말만 들어도 기가 막히는데 내 발로 걸어 가서 눈꼴이 틀려 어찌 보겠소? 나는 영영 가지를 않으려오. 오대(五代)나 내려오며 살던 내 고장이언만 비렁뱅이처럼 찾아가지는 않으려오 후원(後苑)의 은행나무나 부둥켜 안고 눈물을 지으려고 기어든단 말이요? 어느 누구를 만나려고 내가 가겠소? 잔뼈가 긁도록 정이 든 그 산과 그 들을 무슨, 낯짝을 쳐들고 보드란 말이요? 번잡하던 식구는 거미같이 흩어졌는데 누가 내 손목을 잡고 옛날 이야기나 해 줄상 싶소? 무얼 하려고 내가 그 땅을 다시 밟겠소? 손수 가꾸던 화단 아래 턱이나 고이고 앉아서 지나간 꿈의 자최나 더듬어 보라는 말이요? 추억의 날개나마 마음대로 펼치는 것을 그 날개마저 찢기며 어찌 하겠소? 이대로 죽으면 죽었지 가지 않겠소 빈손 들고 터벌터벌 그 고개는 넘지 않겠소 그 산과 그 들이 내닫듯이 반기고 우리집 디딤돌에 내 신을 다시 벗기 전엔 목을 매어 끌어내도 내 고향엔 가지 않겠소. 輓 歌 궂은 비 줄줄이 내리는 황혼의 거리를 우리들은 동지의 관(棺)을 메고 나간다. 만장(輓章)도 명정(銘旌)도 세우지 못하고 수의조차 못입힌 시체를 어깨에 얹고 엊그제 떼메어 내오던 옥문을 지나 철벅철벅 말없이 무학재를 넘는다. 비는 퍼붓듯 쏟아지고 날은 더욱 저물어 가등(街燈)은 귀화(鬼火)같이 껌벅이는데 동지들은 옷을 벗어 관 위를 덮는다 평생을 헐벗던 알몸이 추울 상싶어 얇다란 널조각에 비가 새들지나 않을까하여 단거리옷을 벗어 겹겹이 덮어준다. 동지들은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인 채 저벅저벅 걸어간다. 친척도 애인도 따르는 이 없어도 저승길까지 지긋지긋 미행이 붙어서 조가(弔歌)도 부르지 못하는 산송장들은 관을 메고 철벅철벅 무학재를 넘는다. 玄海灘 달밤에 현해탄(玄海灘)을 건느며 갑판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몇 해 전 이 바다 어복(魚腹)에 생목숨을 던진 청춘 남녀의 얼굴이 환등(幻燈)같이 떠오른다. 값 비싼 오뇌에 백랍같이 창백한 인테리의 얼굴 허영에 찌들어 여유예술가의 풀어 헤친 머리털. 서로 얼싸안고 물 우에서 소용돌이를 한다. 바다 우에 바람이 일고 물결은 거칠어진다. 우국지사(憂國志士)의 한숨은 저 바람에 몇 번이나 스치고 그들의 불타는 가슴 속에서 졸아 붙는 눈물은 몇 번이나 비에 섞여 이 바다 우에 뿌렸던가 그 동안에 얼마나 수많은 물건너 사람들은 「인생도처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을 부르며 새 땅으로 건너 왔던가 갑판 위에 섰자니 시름이 겨워 선실로 내려가니 「만열도항(漫熱渡航)」의 백의군(白衣群)이다. 발가락을 억지로 째어 다비를 꾀고 상투 자른 자리에 벙거지를 뒤집어 쓴 꼴 먹다가 버린 벤또밥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강아지처럼 핥아 먹는 어린것들! 동포의 꼴을 똑바로 볼 수 없어 다시금 갑판 위로 뛰어 올라서 물 속에 시선을 잠그고 맥없이 섰자니 달빛에 명경(明鏡)같은 현해탄 우에 조선의 얼굴이 떠오른다! 너무나 또렷하게 조선의 얼굴이 떠오른다. 눈 둘 곳 없어 마음 붙일 곳 없어 이슥하도록 하늘의 별 수만 세노라. 심 훈(沈薰)(1901~1936) 본명 대섭(大燮) 소설가·시인·영화인. 호는 해풍. 서울 출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재학중 3·1운동에 참가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복역, 1920년 중국 항저우[杭州(항주)] 치장대학[之江大學(지강대학)]에 입학하여 국문학을 공부하였다. 1923년 귀국하여 신극 연구 단체인 극문회(劇文會)를 조직하였고,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였다. 1925년 영화 《장한몽(長恨夢)》에 이수일역으로 출연하였다. 1 926년 《동아일보》에 영화소설 《탈춤》을 연재하고 1927년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집필, 각색, 감독하였다. 조선일보사·경성방송국·조선중앙일보사 등에 입사하였으나 번번이 사상문제를 일으켜 사직하였다. 1930년 《동방의 애인》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소설을 썼는데, 《영원의 미소》 《직녀성》 《상록수》 등을 남겼다. 장편 《상록수》는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 소설에 당선된 작품이며 그 상금으로 당진에 상록학원(常綠學院)을 설립하였다. 이 소설은 이광수(李光洙)의 《흙》과 함께 <브 나로드운동>의 모범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동방의 애인》 《불사조》의 연재 중단과 애국시 《그날이 오면》 《오오 조선의 남아여!》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에는 강한 민족의식이 흐르고 있다. 저항적이고 행동적이었던 그는 작품 속에서 당시 일고 있던 좌익적 사상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계급적 저항의식과 순진한 인도주의를 결합시키고 있다.

        Pursuit Of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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