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좋은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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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한(朱曜翰)
황혼의 노래
어머님이 허락하시면
아기는 황혼에 나가겠습니다
수수밭 사이에 뚫린 길로
오고가는 손님의 흰옷이
언덕에서 그림같이 보일 적에
그이를 맞으러 나가겠습니다
어머님이 허락하시면
아기는 그이를 맞으러 나가겠습니다
그이가 참으로 오실 때는
황혼이 아기의 눈을 가리워서
색색의 오석을 다 가져간 뒤에야
그이의 참모습을 잘 볼 수 있어요
어머님이 허락하시면
아기는 황혼에 나가겠습니다
저 언덕에서 기다리노라면
먼저 나의 모양을 알아보실 터이지요
그리고 아기는 혼자서 노래부르면
그이는 그 노랫소리를 잘 아실 터이지요
어머님이 허락하시면
아기는 그이를 맞으러 황혼에 나가겠습니다.
가신 누님
강남 제비 오는 날
새옷 입고 꽃 꽂고
처녀 색시 앞뒤 서서
우리 누님 뒷산에 갔네
가서 올 줄 알았더니
흙 덮고 금잔디 덮어
병풍 속에 그린 닭이
울더라도 못 온다네
섬돌 우에 복사꽃이
피더라도 못 온다네
가을은 아름답다
빗소리 그쳤다 잇는
가을은 아름답다.
빛 맑은 국화송이에
맺힌 이슬 빛나고
꿩 우는 소리에 해 저무는
가을은 아름답다.
곡식 익어 거두기에 바쁘고
은하수에 흰 돛대 한가할 때
절 아래 높은 나무에
까마귀 소리치고
피묻은 단풍잎 바람에 날리는
가을은 아름답다.
물 없는 물레방아 돌지 않고
무너진 섬돌 틈에서
달 그리운 귀뚜라미 우지짖는
멀리 있는 님생각 간절한
한 많은 철이여!
아름다운 가을이여!
명 령
사랑이 오라 하면
불로라도 물로라도 아니 가오리까
사랑이 손짓하여 부르면
험한 것을 사양하오리까?
사랑이 오오 사랑이 나를 찾는다면
마중하러 먼 길을 아니 가오리까?
만나거든 다시는 떠나지 않도록
사랑이여 나더러 오라 하소서
발 벗은 채로 뛰어가오리다.
사랑이여 나더러 빨리 오라 하소서
모든 것 버리고 달려가오리다.
사랑이여 나를 따라오라 하소서.
땅 끝가지 가오리다.
그 명령이 그런 힘을 나에게 줍니다.
봄 달잡이
봄날에 달을 잡으러
푸른 그림자를 밟으며 갔더니
바람만 언덕에 풀을 스치고
달은 물을 건너가고요
봄날에 달을 잡으러
금물결 헤치고 저어갔더니
돌 씻는 물소리만 적적하고
달은 돌 넘어 재 넘어 기울고요
봄날에 달을 잡으러
「밤」을 기어 하늘에 올랐더니
반쯤만 얼굴에 내다보면서
「꿈이 아니었더면 어떻게 왔으랴」
봄날에 달을 잡으러
꿈길에 헤어 찾아갔더니
가기도 전에 별들이 막아서서
「꿈이 아니었더면 어떻게 왔으랴
불놀이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江물 우에
스러져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도 四月이라 파일날 큰길을 물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홍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에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城門 우에서 나려다보니 물냄새, 모래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不足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품은
젊은 사람은 過去의 퍼런 꿈을 찬 江물 우에
내어던지나 무정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님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버릴까 이 설움 살아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시원히 오늘밤 이 물 속에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을 차리니 우구우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더 强烈한 熱情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煙氣, 숨막히는 불꽃의 苦痛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는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四月달 따스한 바람이 江을 넘으면, 淸流碧
모란봉 높은 언덕 우에 허어옇게 흐늑이는 사람떼
바람이 와서 불 적마다 불빛에 물든 물결이 미친 웃음을 웃으니
겁많은 물고기는 모래 밑에 들어박히는
물결치는 뱃슭에는 졸음 오는 「이즘」의 形像이 오락가락
어른거리는 그림자 일어나는 웃음소리
달아논 등불 밑에서 목청껏 길게 빼는 여린 기생의 노래
뜻밖에 情慾을 이끄는 불구경도 이제는 겹고
한잔 한잔 또 한잔 끊없는 술도 이제는 싫어
지저분한 배밑창에 맥없이 누우며 까닭 男子들은 때때로
불 이는 慾心에 못 견디어 번뜩이는 눈으로 뱃가에 뛰어나가면
뒤에 남은 죽어가는 촛불은 우그러진 치마깃 우에 조을 때
뜻있는 듯이 찌걱거리는 배젓개 소리는 더욱 가슴을 누른다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
차디 찬 강물이 껌껌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 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綾羅島까지 물살 빠른
大同江을 저어오르라. 거기 너의 愛人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너의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怪異한 웃음소리도 무엇이리오
사랑 잃은 靑年의 어두운 가슴속도 너에게야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오오 다만 네 確實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빗소리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짓을 버리고
비는 뜰 우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으지러진 달이 실낱 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려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우에 창 밖에 지붕에
남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삶·죽음
「삶」은 지는 해 피의 바다
강하고 요란한 하늘이여
「죽음」은 새벽 흰 안개
깨끗한 호흡 소복한 색채
「삶」은 펄럭이는 촛불
「죽음」은 빛나는 금강석
「삶」은 설움의 희극,
「죽음」은 아름다운비극
끓는 물결 산을 삼키려 할 때
돛대에 부는 바람의 통곡
소리 없이 부어 쌓이는 밤 눈에
가득한 웃음에 던지는 가벼운 달빛
「삶」은 「죽음」에 이르는 비탈길
「죽음」은 새로운 「삶」의 새벽
아, 미묘히 섞어 짜는 「죽음」의 실로
무거운 「삶」의 폭우에 성결한 광택을 이루리로다.
샘물이 혼자서
샘물이 혼자서
춤추며 간다
산골짜기 돌 틈으로
샘물이 혼자서
웃으며 간다
험한 산길 꽃 사이로
하늘은 맑은데
즐거운 그 소리
산과 들에 울리운다
풀 밭
봄날 풀밭에 누워서
눈감고 조용히 들으면
어디선가 미묘한 음악이
하나도 아니요 여럿이
수천 수만의 숨소리가
귀를 막아도 울려오는
선녀의 합창하는 소리가
사면으로 일어나서
내 신경을 진동합니다
그것은 무수한 생명이
검은 흙 속에서 때를 헤는
신비의 곡조입니다.
시방 그 조용한 속에 있는 「힘」을
나는 듣습니다 맡습니다 만집니다
태양과 공기가 그 「힘」으로
내 영혼을 멱감깁니다.
1900 10월 14일 평남 평양 출생
1912 평양숭덕 소학교 졸업
1917 단편소설 <마을집>을 <청춘>에 발표
1918 일본 메이지학원 중등부 졸업
1919 동경 제1고등학교 졸업 시<에튜우드>를 <학우>에 발표
1919 문학동인지<창조>의 발간동인
1925 중국 상해 호강대학 졸업
1929 동아일보 편집국장 논설위원
1933 조선일보 편집국장 전무 역임 일제말기 <조선문인보국회>가담
1945 해방 후 문단활동을 중단
1979 사망
평양에서 개신교 목사인 주공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설가 주요섭과 극작가 주영섭이 주요한의 친동생이다.
소학교 때 아버지를 따라서 도일하여 일본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일본어로 쓴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입문하였고,
대표작으로 꼽히는 〈불놀이〉(1919)도 이 시기에
김동인, 전영택 등과 함께 발간한 동인지 《창조》 창간호에 발표했다.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합류한 뒤 《독립신문》 기자가 되었다.
상하이의 호강대학을 졸업하고 1925년 귀국하여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에서 근무했다.
시집 《아름다운 새벽》(1924), 《3인 시가집》(1929),
《봉사꽃》(1930)을 간행한 뒤 1930년대부터는
화신산업 취체역 등 기업 활동을 하면서 시작이 뜸해졌고,
광복 후에는 문단 활동을 접고 기업인, 언론인, 정치인으로만 활동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지식인들이
대거 체포되었을 때 주요한도 검거되었고
이듬해 이광수, 전영택, 현제명, 홍난파 등과 함께 전향하였다.
조선문인보국회, 조선임전보국단, 언론보국회 등
여러 친일 단체에 가담해 징병제를 선전하는 등
태평양 전쟁 수행에 적극 협력했다.
광복 후 흥사단에 관계하며 대한무역협회 회장(1948)을 지냈고,
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4·19 혁명으로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제2공화국 내각에
부흥부 장관, 상공부 장관으로 입각했으며,
5·16 군사정변으로 장면 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대한일보》 사장과 대한해운공사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려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가을가뭄
촉↓촉↓ 달래주시는 .. 한방울에 일억짜리
고마운 비님이 속삭이며 오십니더^^*
해 서 오늘은
- 신바람 월 욜 입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