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좋은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

글 수 900
2012.03.08 01:56:53 (*.159.49.162)
2152

"개 코도 모르면 잠자코 나 있지"

   

숙종대왕이 어느 날

미행 중 수원성 고개 아래 쪽 냇가를 지나는 데

허름한 시골총각이 관 을 옆에 놓고 슬피 울면서

물이 나오는 냇가에다 묘 자리를 파고 있는 것을 보고

‘아무리 가난하고 몰라도 유분수지

어찌 묘를 물이 나는 곳에 쓰려고 하는지 이상하다‘ 생각을 하고

무슨 연고가 있지 싶어 그 더벅머리 총각에게로 다가가

‘여보게 총각 여기 관은 누구의 것이요’

하고 물었다.

‘제 어머님의 시신입니다.’

‘그런데 개울은 왜 파는 고?’ 하고

짐짓 알면서도 딴청을 하고 물으니

‘어머니 묘를 쓰려고 합니다.’

.

미루어 짐작은 했지만

숙종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보게 이렇게 물이 솟아나고 있는 데

어찌 여기다 어머니 묘를 쓰려고 하는가?

하고 재차 다그쳐 물으니

그 총각은

"저도 영문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갈 처사라는 노인이 찾아와 절더러 불쌍타 하면서

저를 이리로 데리고 와

이 자리에 묘를 꼭 쓰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 분은 유명한 지관인데,

저기 저 언덕 오막살이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라고 힘없이 대답을 하고는

옷소매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자신의 곤혹스런 처지를

처음 보는 양반나리에게 하소연하듯 늘어놓았다.

.

숙종이 가만히 듣자하니

갈 처사라는 지관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궁리 끝에 지니고 다니던 지필묵을 꺼내어 몇 자 적었다.

"여기 일은 내가 보고 있을 터이니 이 서찰을 수원부로 가져가게.

수문장들이 성문을 가로 막거든 이 서찰을 보여주게."

.

총각은 또 한 번 황당했다.

아침에는 어머님이 돌아가셨지.

유명한 지관이 냇가에 묘를 쓰라고 했지.

이번에는 왼 선비가 갑자기 나타나

수원부에 서찰을 전하라 하지.

도무지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추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

그러나

총각은 급한 발걸음으로 수원부로 갔다.

서찰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명! 수원부사는 이 사람에게

당장 쌀 삼백 가마를 하사하고,

좋은 터를 정해서 묘를 쓸 수 있도록 급히 조치하라.

.

수원부가 갑자기 발칵 뒤집혔다.

허름한 시골 총각에게 유명한 지관이 동행하질 않나,

창고의 쌀이 쏟아져 바리바리 실리지를 않나.

"아! 상감마마, 그 분이 상감마마였다니!"

총각은 하늘이 노래졌다.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냇가에서 자기 어머니 시신을 지키고 서 있을 임금을 생각하니,

황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기쁨보다는 두려움과 놀라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

한편 숙종은

총각이 수원부로 떠난 뒤

괘심한 갈 처사라는 자를 단단히 혼을 내 주려고

총각이 가르쳐 준 대로 가파른 산마루를 향해 올라갔다.

단단히 벼르고 올라간 산마루에 있는

찌그러져가는 갈 처사의 단칸 초막은

그야말로 볼품이 없었다.

"이리 오너라"

"..............."

"이리 오너라"

".............."

한참 뒤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게 뉘시오?"

방문을 열며 시큰둥하게 손님을 맞는 주인은

영락없는 꼬질꼬질한 촌 노인네 행색이다.

콧구멍만한 초라한 방이라 들어갈 자리도 없다.

숙종은 그대로 문밖에서 묻는다.

.

"나는 한양 사는 선비인데 그대가 갈 처사 맞소?"

"그렇소만 무슨 연유로 예까지 나를 찾소?"

"오늘 아침 저 아래

상을 당한 총각더러 냇가에 묘를 쓰라했소?"

"그렇소"

"듣자니 당신이 자리를 좀 본다는데

물이 펑펑 솟아나는 냇가에 묘를 쓰라니

당키나 한 일이요?

골탕을 먹이는 것도 유분수지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요? "

.

숙종의 참았던 감정이 어느새 격해져 목소리가 커졌다.

갈 씨 또한 촌 노이지만

낮선 손님이 찾아와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비란 양반이 개 코도 모르면서 참견이야.

당신이 그 땅이 얼마나 좋은 명당 터인 줄 알기나 해?"

.

버럭 소리를 지르는 통에 숙종은 기가 막혔다.

(속으로 이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어디 잠시 두고 보자 하고 감정을 억 누르며)

"저기가 어떻게 명당이란 말이요?"

"모르면 가만이나 있지,

이 양반아 저기는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쌀 3백가마를 받고 명당으로 들어가는 땅이 야.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발복을 받는 자리인데,

물이 있으면 어떻고 불이 있으면 어때?

개 코도 모르면 잠자코 나 있으시오"

.

숙종의 얼굴은 그만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갈 처사 말대로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총각은 쌀 3백가마를 받았으며

명당으로 옮겨 장사를 지낼 상황이 아닌가!

숙종은 갈 처사의 대갈일성에 얼마나 놀랬던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공손해 졌다.

.

"영감님이 그렇게 잘 알면

저 아래 고래 등 같은 집에서 떵떵거리고 살지 않고

왜 이런 산마루 오두막에서 산단 말이오?"

" 이 양반이 아무것도 모르면

가만이나 있을 것이지 귀찮게 떠들기만 하네"

"아니, 무슨 말씀인지"

.

숙종은 이제 주눅이 들어 있었다.

저 아래 것들은 남을 속이고 도둑질이나 해 가지고

고래 등 같은 기와집 가져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

그래도 여기는 바로 임금이 찾아올 자리여.

지금은 비록 초라하지만

나랏님이 찾아올 명당이란 말일세"

.

숙종은 그만 정신을 잃을 뻔 했다.

이런 신통한 사람을 일찍이 만나본 적이 없었다.

꿈속을 해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왕이 언제 찾아옵니까?"

"거, 꽤나 귀찮게 물어 오시네. 잠시 기다려 보오.

내가 재작년에 이 집을 지을 때에 날 받아놓은 것이 있는데,

가만.... 어디에 있더라"

하고 방 귀퉁이에 있는 보자기를 풀어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먼지를 털면서 들여다보더니......

그만 대경실색을 한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에 나가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종이에 적힌 시간이 바로 지금 이 시간이었다.

임금을 알아본 것이다.

.

"여보게.... 갈 처사, 괜찮소이다.

대신 그 누구에게도 결코 말하지 마시오.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 묻힐 자리 하나 잡아주지 않겠소?"

.

"대왕님의 덕이 높으신데

제가 신하로서 자리 잡아 드리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어느 분의 하명이신데 거역하겠사옵니까?"

그리하여

갈 처사가 잡아준 숙종의 왕릉이

지금 서울의 서북쪽 서오릉에 자리한 "명릉"이다.

.

그 후 숙종대왕은

갈 처사에게 3천 냥을 하사하였으나,

노자로 30냥만 받아들고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이야기가

지금껏 전해오고 있다

*

신묘 하도다 갈 처사여

냇가에 묘를 쓰고 산마루 언덕에 초막을 지으니

음택 명당이 냇가에 있고

양택 명당은 산마루에도 있구나.

임금을 호통 치면서도 죄가 되지 않으니

풍수의 조화는 국법도 넘어가네.

볼품없는 초라한 몸이라도,

가난한 이웃에게 적선하고

나랏님께 충성하노니,

그 이름 역사에 길이길이 남으리라.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번호
제목
글쓴이
700 어느 판사의 감동적인 이야기 2
바람과해
2012-11-28 2102
699 밥그릇을 쓰다듬던 아내 5
오작교
2012-11-08 2298
698 낼은 어여쁜 초롱이의 생일날이랍니당 ^^* 18 file
고운초롱
2012-11-05 2276
697 ♧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 10 file
고이민현
2012-11-05 2286
696 6년 뒤에 오뎅 값을 갚은 고학생 3 file
바람과해
2012-11-02 1986
695 ♥...한번만 꼭옥 안아줄래요...♥ 3
파란장미
2012-11-01 2251
694 ♡...당신이 있어 행복한 하루...♡ 3
파란장미
2012-11-01 2079
693 아름다운 인연 2
바람과해
2012-11-01 1807
692 효자 도둑 이야기 3 file
바람과해
2012-10-23 2024
691 ★...가슴에 남는 좋은글 모음 ☆... 6
파란장미
2012-09-18 2625
690 ♣ 가을엔 사랑과 동행을 하자 ♣
파란장미
2012-09-17 1959
689 ♥...사랑과 믿음 그리고 행복...♥ file
파란장미
2012-09-10 2389
688 ♤...마음속에 깨달음을 주는 글...♤
파란장미
2012-09-10 2107
687 밥을 얻어다 주인을 섬기는 개 (실화) 2
바람과해
2012-09-07 2180
686 남편이란 나무 4 file
고이민현
2012-08-31 2893
685 돌부리/..... 5 file
데보라
2012-08-24 2177
684 ♣★ 행복하고 싶은가?★♣ 9 file
데보라
2012-08-23 2164
683 초등학생이 그린 20년후의 세계지도 10 file
고이민현
2012-08-22 3140
682 보리밥을 좋아하는 남자 5
데보라
2012-08-15 2240
681 사랑받은 기억 3
바람과해
2012-08-14 2180
680 새벽을 찬란하게 만드는 것은 2 file
데보라
2012-08-10 2007
679 친구라는 소중한 선물 3 file
데보라
2012-08-10 2083
678 어느 판사의 감동적인 이야기 2
바람과해
2012-08-06 2050
677 아름다운 사이버 인연 11
고이민현
2012-07-28 2579
676 행복을 느낄줄 아는 사람.... 7 file
데보라
2012-07-27 1984
675 우동 한그릇 6
바람과해
2012-07-26 1966
674 인터넷이 노인의 특효약이다 2
바람과해
2012-07-25 1965
673 아름다운 기도... 6
데보라
2012-07-20 2200
672 ♡... 아침에 우리는 행복하자...♡ 1 file
데보라
2012-07-14 1935
671 행복은 작은 냄비안에서... 1
데보라
2012-07-08 2100
670 황혼의 멋진 삶을 위하여~.... 1
데보라
2012-07-08 1976
669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만남일지라도~ 9 file
데보라
2012-07-05 2130
668 7월을 드립니다 5 file
데보라
2012-07-05 2083
667 까아껑?까꽁? 6 file
고운초롱
2012-06-25 2129
666 세 종류의 인생~... 1 file
데보라
2012-06-19 2135
665 이 게시판 에디터 사용설명서 file
오작교
2012-06-19 25648
664 바람이 가는 길 / 이재옥 5
niyee
2012-06-19 2053
663 어머니께 드립니다... 8 file
데보라
2012-06-17 2026
662 가난했던 한 시인이 천국으로 떠났다 4
고이민현
2012-06-14 2097
661 음악처럼 흐르는 하루... 6
데보라
2012-06-09 2570
660 자매 같은 두 엄마.... 6 file
데보라
2012-06-05 2493
659 저 오늘은 꼭 이말을 해야 겠습니다. 7
Jango
2012-05-27 3402
658 2
여명
2012-05-24 2771
657 對鍊 한판 하고픈날~ 4
여명
2012-05-23 2508
656 장고의 고달픈 삼각관계 21
Jango
2012-05-21 3313
655 겨을에도 씨를 뿌리는 사람
바람과해
2012-05-20 2417
654 "꼭꼭꼭" 3번 "꼭꼭" 2번..... 8 file
데보라
2012-05-17 2789
653 퇴계선생 며느리 개가하다. 4
데보라
2012-05-13 2929
652 빗소리 -詩 김설하 3
niyee
2012-05-09 2635
651 어버이 날에 띄우는 카네이션 편지 2 file
데보라
2012-05-08 2649
650 어머니의 유산/... 2
데보라
2012-05-06 2504
649 어머니의 꽃다발/.... 2
데보라
2012-05-06 2792
648 봄은 눈부신 부활이다 3 file
데보라
2012-04-30 2645
647 바라기와 버리기 ... 3 file
데보라
2012-04-30 2873
646 갱년기~~!! 5 file
데보라
2012-04-26 2768
645 게으름/...."이놈 다시 오기만 해봐라" 9
데보라
2012-04-24 2662
644 서로에게 생각나는 사람으로 살자 4 file
데보라
2012-04-22 2853
643 봄날의 환상 / 외외 이재옥 2
niyee
2012-04-21 2564
642 감동이네요~.... 4 file
데보라
2012-04-20 2516
641 나이는 먹는게 아니라 거듭나는 거래요.. 3 file
데보라
2012-04-20 2144
640 봄/박효순 2
niyee
2012-04-01 2798
639 [오늘의 좋은글]... 3 file
데보라
2012-03-31 2443
638 ♡...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법 ...♡ 2 file
데보라
2012-03-30 2270
637 인생의 스승은 시간이다 2 file
데보라
2012-03-25 2222
636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4
데보라
2012-03-21 2393
635 살다 보니~... 3 file
데보라
2012-03-21 2282
634 사랑도 커피처럼 리필할수 있다면... 3 file
데보라
2012-03-17 2308
633 봄날 -素殷 김설하 2
niyee
2012-03-13 2165
개 코도 모르면 잠자코 나 있지
바람과해
2012-03-08 2152
631 오늘처럼 햇살 고운 날에는 / 박효순
niyee
2012-03-02 2248
630 그리운 얼굴/ 최수월 3
niyee
2012-02-17 2609
629 필요한 자리에 있어 주는 사람...^^ 6 file
데보라
2012-02-15 2491
628 따뜻한 어느 명 판사님 이야기 3
바람과해
2012-02-14 2718
627 감동을 주는 이야기 2
바람과해
2012-02-10 2602
626 꽃동네 새동네 3 file
데보라
2012-02-08 2500
625 꽃망울 터지는 소리 / 바위와구름 1
niyee
2012-02-04 2314
624 어느 식당 벽에 걸린 액자 이야기 9 file
보리피리
2012-01-30 2749
623 나목/아도르님의 쾌유를...... 18 file
고이민현
2012-01-28 3192
622 '옛집"이라는 국수집 5
바람과해
2012-01-23 2554
621 울 고우신 님들! 따뜻한 명절이 되세효~ 8 file
고운초롱
2012-01-21 2700
620 살아만 있어도 좋을 이유 ~ 박만엽 2
niyee
2012-01-13 2606
619 댓글 15
고이민현
2012-01-11 3427
618 이어령의 영성글..... 1 file
데보라
2012-01-08 2679
617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용!!!!!!!!!!!.... 2 file
데보라
2011-12-31 2738
616 존경하고 사랑하는 울 감독오빠의 생신을 축하해주실래욤? 18 file
고운초롱
2011-12-30 2992
615 壬辰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3
niyee
2011-12-29 2790
614 굴비 두마리 file
바람과해
2011-12-26 2684
613 12월의 송가 -詩 素殷 김설하 3
niyee
2011-12-19 3010
612 여인은 꽃잎 같지만 엄마는 무쇠 같더라 2 file
데보라
2011-12-18 3103
611 12월/... 그리고 하얀 사랑의 기도 4
데보라
2011-12-18 3034
610 겨울밤의 고독 / 바위와구름 4
niyee
2011-12-13 2599
609 생명(生命)보다 진한 형제애
바람과해
2011-12-07 2466
608 작년에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올해 친정부모님 두분까지 모두 잃었습니다.. 9
정현
2011-12-06 3173
607 빈손으로 가는 여유로움 4 file
데보라
2011-12-04 3056
606 지갑속에 담긴 사랑 이야기 2 file
데보라
2011-12-04 2669
605 노을 / 김유숙 3
niyee
2011-11-27 3194
604 사랑을 전하세욤^^* 4 file
고운초롱
2011-11-11 3691
603 인생이 한그루 꽃나무라면~... 9 file
데보라
2011-11-10 3511
602 오늘은 어여쁜 초롱이 생일날이랍니다^^* 21 file
고운초롱
2011-10-19 4171
601 ♧ 백수 한탄가 ♧ 6
고이민현
2011-10-18 3825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