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좋은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

글 수 900
2012.10.23 12:50:01 (*.159.49.57)
1795

Hyoja.jpg

효자 도둑 이야기



수확의 계절 가을이 오면 생각나는 효자 도둑님이 있었다.
어언 60여 년 전 어릴 적 이야기 이니까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랄까 내가 살던 시골은 인심도 좋고 산수도 아름다운
그런 평화스러운 마을 이였지만 당시 어느 곳이나 찢어지게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봄이면 산나물 들나물 캐어서 보리밥에 나물국으로 연명했고
여름에는 산에 올라 칡뿌리 캐어서 먹고 살았지만 일 년 삼백
육십오일 사리문 활짝 열어놓고 이웃사람 제집나들이 같이
하던 그런 마을에 쌀자루 훔쳐 가다 붙잡힌 도둑이 있었다.
그래도 이 마을에서 제법 부자로 살고 있었던 분의 댁에
한밥 중에 도둑이 들어 대청마루에 있었던 쌀뒤주에서 쌀을
한말 자루에 담아 달아나다 고만 이집 며느님에 들킨 것이다.

상습 도둑 이였다면야 건장한 청년이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지는 여인네 즘이야 얼마든지 뿌리치고 달아 날수도
있었겠지만 난생처음 도둑질 해보는 이 아마 도둑놈은 재발에
질려 힘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도둑이야 하는 소리 듣고 달려
나온 남정네들에게 붙잡혀 동네 앞 미루나무에 묶이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날이 밝자 이소문은 삽시간에 집집마다 전해 젓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도둑구경 하려 나왔다 도둑이라면 얼굴이 우락부락하고
턱수염이 수북한 험상궂은 모습으로만 상상하고 있었는데 이 도둑은
너무도 착하게 생겼기 때문에 나도 놀랐다. 시골이라 이웃마을
사람들도 대부분 서로 알고 있는 처지 인지라 동리 사람들 중에
이 도둑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고 해서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더니
금방 이 도둑의 집에도 전해 젖고 70이 넘은 도둑의 노모가 달려 왔다

그리고는 이 할머니 가 동리 사람들에게 큰절을 하면서 아이고
아이고, 동네 사람들아! 내말 좀들의 주소 착하디. 찬한 내새끼
도둑놈 만든 이 늙은이 대신 붙들어 매여 놓고 저놈 좀 풀어 주소
미루나무에 묶인 체 밤을 새워 손은 피가 통하지 않아 파랗게 변해저
있었고 그 고통에 얼굴은 사색이 되어 신음하고 있었다.

이보소. 동내 사람들아 내말 좀 들어 주소! 저놈이 쌀을 훔친 것은
이 늙은 할망구 소원 들어 주려고 도둑놈이 된 김니더.제발 내말 좀
들어 주소 하시면서 늘어놓는 넋두리는 이러 했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에서 따온 도토리 죽을 보면서 야 이놈아 오늘도 도토리
죽이냐 남들은 추석명절에 떡도 하고 흰쌀밥에 고기 국도 먹는다 던데
네놈은 어째서 허구한 날 풀죽에 개떡에 도토리 죽이 전부인가
 
이 가을에 쌀밥 한번 먹어 보지 못한다면 언제 먹어 보누 하고 푸념을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이 효자 아들은 어머님 염려
마십시오. 이번 김 부잣집 품 삯으로 쌀을 한말 받기로 했으니 어머님
소원은 반드시 들어 흰쌀밥 지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려
했는데 이놈의 쌀을 구할 길이 없어지자 고만 도둑놈이 되어 노모의
소원을 풀어 들이려 한 것이라 했다

노모의 애원하는 소리를 들어 우선 동아줄만 풀어주고 굻어 앉혀 놓고
시골이라 주재소(일본 경찰파출소)도 없어 동리의 사람들의 재판이
벌어 졌다. 용서 해주자는 편과 갸륵한 효심은 생각하면 용서 하는 것이
좋겠지만 후에 주재소 에 신고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 지면 모두가 화를
입을 수 있게 되니 주재소에 압송해야 한다는 편이 갈라져 한참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 소문을 늦게야 듣고 달려온 김 부잣집 아드님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이 도둑을 붙잡아 일으키면서 아이고 박 서방 내가 잘못했네
그려 어제 저녁에 자네에게 줄 품삯으로 쌀 한말 자루에 담아 대청마루에
올려놓고 자네에게 언제든지 시간 나는 대로 가져가라 일러 주기만 했지
우리 집사람에게는 그런 말을 알려놓지 않아 이런 봉변을 당하는 구려
 
여보, 마누라
박 서방은 훔킨 것이 아니라 품값으로 내가 준 것인데 당신이 무례를
했구려. 냉큼 가서 그 쌀 푸데 에다 한말 더 보태서 가져 오게 한말은
품삯이고 한말은 당신의 잘못에 대한 벌금일세. 이런 명판관의 판결문이
거짓인줄 알면서도 모두들 속는척하며 박수를 첫 주며 흐뭇해하던 동네
사람들의 모습은 오래토록 기억에 남아 있다



댓글
2012.10.23 16:10:18 (*.159.174.196)
오작교

이 공간에 한 달 하고도 5일 만에 글이 올려졌네요.

하루 1,000여명의 분들이 오가는 공간인데,

조금 빈약한 수치이지요?

댓글
2012.10.23 16:50:25 (*.231.236.105)
여명

마음 푸근한 글 읽습니다.

푸짐한 결실의 계절 이렇게 나누며 따뜻해지는....

단풍이 한창 이지요?

이곳 북한산 자락도 붉게 물들여져 갑니다.

댓글
2012.10.25 22:30:25 (*.108.163.66)
천일앤

쟝발장의 은촛대 흡사하군요 

가을 수확의 계절에 이웃을 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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