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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편지 -잘난 남자들의 숙명 / 한 상복

시몬 시몬 2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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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놀랐지? 갑자기 엄마의 메일을 받아서.

 미안하게도 네 프라이버시를 침범하고 말았단다. 미안해, 아들. 네 방을 청소하는데 컴퓨터가 켜져 있지 뭐니. 끄려다가 아빠가 보내준 메일을 보게 됐어. 미안해.

 못 본 척하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너한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메일을 보내는 거야. 네가 아빠와 메일로 자주 소통한 것을 보니까 약간은 질투도 나고, 엄마와도 그런 대화가 가능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 만날 공부하라고만 하는 잔소리꾼 이미지는 싫거든.

 친구들보다 키도 작고, 잘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어서 답답하다고? 루저가 될까봐, 여자 친구가 생기지 않을까봐 걱정이라고?

 성적은 네가 얼마나 더 노력하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겠지. 컴퓨터게임 하는 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그 시간에 수학 문제를 푼다면 점수가 달라질 거야. 미안해. 또 공부하라는 얘기로 빠졌네.

 엄마는 우리 아들의 용모가 평범해서엄마기준엔 훤칠하고 멋지기만 하지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 '무서운 여자'를 만날 확률이 그만큼 줄어들 테니까 말이야. 무슨 얘기냐고?

 언젠가 너도 알게 되겠지만, 키 크고 잘생기고 심지어 공부까지 잘한 남자의 여자는 거의가 비슷하단다. '무서운 여자'라는 거지. 신은 언제나 공평하단다. 다 주는 법이 없으니까.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무서운 여자들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에는 많이 있단다. 그러니까 자나 깨나 여자 조심!

 엄마가 지금까지 살면서 봐온 사람들의 경우는 거의가 그랬어. 선배들이나 친구들을 오랫동안 관찰했고, 여러 사람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내린 결론이야. 그렇지만 이 얘기는 어디까지나 '엄마표 학설'일 뿐이야. 남들한테는 얘기하지 마. 괜한 질투를 한다는 오해를 부를 수도 있으니까.

 

 너도 이제 15금 영화는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그 수준에 맞춰 설명해볼게.

 먼저, 키 크고 잘 생기고, 공부까지 잘한 남자흔히 '킹카'라고 부르는 를 차지하는 여자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야겠지?

 TV 드라마를 보면, 평범한 여자 주인공에게 킹카 왕자님이 다가와서 하루아침에 신데렐라로 만들어주는 경우가 많아. 여자가 어려움에 처할 때면 짠~ 하고 나타나 해결해주고 말이야. 하지만 그건 드라마 시청자 대부분이 여자라서 그런 거야.

 현실은 드라마와 반대라고 보면 돼. 킹카는 대시하는 여자가 많아서 귀찮아 할 때가 더 많다는 게 진실이라고 봐야 해. 여자들이 기회를 만들어보려고 '의도된 우연'을 연출할 때마다, 그 뻔한 수작이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이거든. 그래서 킹카의 마음을 얻는 여자는 '뭔가 남다른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해. 따뜻해 보이다가 갑자기 냉담해지고, 냉정을 가장해 은근히 유혹하고, 때로는 느닷없이 화를 내기도 해서 호기심을 유발하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낯설게 보이도록 포장할 줄 안단다.

 그래서 남자가 사랑에 빠져 다가서면, 이번에는 그의 불안감을 교묘하게 이용하지. 마음을 열 듯하다가 물러서기를 반복하고, 질투심을 자극하기도 한단다. 그러다 보면 남자는 어느덧 그 여자의 노예가 되어 있는 거야.

 엄마는 신데렐라야말로 '무서운 여자'였을 거라고 생각해.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12번 울리는 사이에 궁궐의 넓은 무도회장에서 계단을 거쳐 마차가 있는 곳까지 뛰어나가려면, 웬만한 여자로선 흉내도 낼 수 없는 초인적인 체력의 소유자였을 거야. 게다가 그 정신 없는 와중에 유리 구두 한 쪽을 벗겨진 듯 남겨놓는 센스까지 발휘한 걸 보면, 왕자님을 차지할 충분한 자격이 있는 거지.

 구두가 벗겨진 건 우연이었을 거라고? 그건 남자들의 환상일 뿐이란다. 나중에 그 구두가 신데렐라의 발에만 정확히 들어맞는 장면은 그럼 뭐란 말이니? 그러니까 킹카를 차지하는 여자들은 출발부터가 이미 '보통'은 아닌 거야.

 얼굴로 볼 수 있는 건 여자의 일부에 불과해. 진짜는 마음속에 있거든.

 무서운 여자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킹카를 자기 것으로 거머쥐는 것으로 그치지 않아. 그동안 공을 들인 투자에 대해 확실한 대가를 받으려는 경향이 있지. 잘난 만큼, 또 노력한 만큼, 상대에 대한 기대 수준도 높을 수밖에 없겠지. 애정 표현이나 이벤트, 심지어는 소소한 마음 씀씀이 등 모든 면에서 말이야.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해. 왜냐하면 킹카 또한 기대 수준이 높거든. 킹카는 여자가 맨 처음 가까워졌을 때처럼 자기에게 지속적으로 잘해주기를 바라지. 여기서 '잘해준다'는 것은 대개 그를 위한 헌신이야. 킹카들은 거의가 어릴 적부터 '특별 대우'를 받아온 부류잖니. 받는 데만 익숙해져 있으니까 그런 틀이 갑자기 위협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지.

 이처럼 자기밖에 모르는 성향을 가진 킹카에게 무서운 여자가 '그동안 밀린 것 플러스 알파'를 바라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기대의 충돌'이 빚어지게 되어 있어.

 무서운 여자들은 항상 '당신 때문에 내 모든 걸 포기했다'고 주장하지. 그러나 그건 100퍼센트 입에 발린 말이란다. 겉으론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아. 오히려 '하나도 빠짐없는 모든 것'을 원하지.

 킹카는 처음에는 순수해 보였던 여자가 다른 모습으로 철저히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혼란에 빠지지. 그렇지만 그가 누구지? 잘난 남자야.

 엄마의 경험에 따르면, 잘난 사람일수록 승부 근성이 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집요해. 그런데 커플 두 사람이 모두 그렇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로에 대해 원하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일까? 킹카를 얻는 여자들이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대가가 있어. 바로 '불안과 상실감'이야.

 잘난 남자는 어디서든 환영받지. 많은 여자의 시선과 유혹은 당연하고, 그런데 잘난 남자가 사교적이기까지 해서 활동 범위가 넓다면, 그 남자의 여자는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믿고 내버려둔 채 안심할 수 있을까. 그러기가 쉽지 않으니까 틈만 나면 옭아매고 자유까지 제한하려 들겠지. 게다가 남성 중심이라는, 우리 사회의 불합리성까지 생각해본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지.

 킹카와 나란히 서면 더욱 빛이 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거야. 킹카는 여전히 빛이 나는 반면, 여자는 그에 딸린 장식품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거지. 상대적 박탈감이 여자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어.

 그럴 때 여자의 마음은 어떨까? 추운 숲 한가운데 혼자 서 있는 것처럼 외롭지 않을까?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상실감과 소외감에 좌절할 거야. 누군가 그런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라겠지.

 불행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고 봐, 엄마는.

 킹카는 여자의 그런 마음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해. 그런 입장이 되어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 그의 관점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괜히 우울해하거나 심통을 부리는 여자를 이해할 수 없는 거야. 킹카가 나쁜 남자라서가 아니야. 다만 그는 그런 것을 납득할 수 없을 뿐이야.

 여자는 그래서 더 무섭게 외로워지지. 뛰어나지만 외로운 여자, 사랑하는 남자에게 이해받지 못해 더욱 외로운 여자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야.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면 남자의 마음은 어떨까? 그렇게 외롭고 무서운 상대와 함께해야 한다면, 그것도 자신이라는 존재의 특성 때문에 외롭고 힘겨운, 그래서 나날이 무섭게 변해가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대와 함께해야 한다면 말이야. 의미도 없는 "미안하다"를 입에 달고 살지만, 그의 진심은 모두 타버린 향초처럼 작은 바람에도 흩날릴 만큼 무게를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잘난 남자들의 숙명은 그렇게 외로운 여자를 만나 그 여자를 더욱 외롭게 만들게 되어 있다는 것이 엄마의 주장이야. 그래서 그 자신도 사랑하는 사람의 외로움 때문에 외롭지.

 그러니까 완벽해 보이는 친구들을 부러워만 할 필요는 없어. 완벽이라는 건, 절대 인간의 영역이 아니거든. 아무리 그렇게 보여도 말이지.

 

 옛말에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어. 부잣집에서는 뒤웅박에 쌀을 담고, 가난한 집에서는 여물을 담기 때문에, 여자가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느냐, 아니면 가난한집으로 시집을 가느냐에 따라 그 여자의 팔자가 결정된다는 뜻이지.

 하지만 엄마는 '남자 팔자야말로 뒤웅박 팔자'라고 생각해. 어떤 여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볼품없던 남자가 우뚝 서서 뻗어나가기도 하고, 승승장구하던 남자가 비루먹은 개처럼 초라해지기도 하니까.

 이 점에서 엄마도 "큰어머니가 대단한 분"이라는 아빠의 이야기에 공감해. 큰아버지가 높은 자리에 오르고, 마라톤 5회 완주라는 꿈을 이룬 데는 큰어머니의 격려가 큰 도움이 되었을 거야. 그러니까 '땅꼬마'라고 큰어머니 별명을 함부로 부르면 안 돼. 엄마가 보기에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철탑만 한 여인'이니까.

  불운을 뒤집으면 그게 행운이라는 말이 있어.

 아들, 킹카가 아니라고 주눅들 필요가 전혀 없어. 오히려 다행이지. '무서운 여자들'이 킹카에게 몰려드는 사이, '약간 덜 무서운 여자'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엄마는 우리 아들이 '덜 무서운 여자'를 만나 일상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리며 스스로의 뜻을 펼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어. 상대를 존중해주는 방법을 알고, 스스로도 존중받게 행동하는 외롭지 않은 여자 말이지.

 그럼 엄마는 어느 쪽이냐고? 네 상상에 맡길게.

 

잘난 남자들의 숙명
-한상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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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명월 2013.10.14. 20:59

엄마의 편지---잘난 남자들의  숙명  한상복의 글 감명깊게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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