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좋은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

글 수 900
2013.09.02 09:47:53 (*.156.211.24)
2500

3110_1.jpg

어느 중고 컴퓨터 장사의 일기

저는 인터넷이나 알림방 광고를 내어
중고 컴퓨터 장사를 합니다.
얼마 전 저녁때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아는 사람 소개 받고 전화 드렸어요.
여기는 경상도 칠곡이라고 지방이에요.
6학년 딸애가 있는데 중고컴퓨터라도 있었으면 해서요.
딸은 서울에서 할머니랑 같이 있구요...."

나이 드신 아주머니 같은데
통화 내내 목소리가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열흘이 지나서 쓸 만한 중고가 생겼습니다.
아주머니가 말씀하신 그 집에 도착하자,
다세대 건물 옆 귀퉁이 새시 문 앞
할머니 한 분이 손짓을 하시더군요.

액세서리 조립하는 부업거리가 보입니다.
지방에서 엄마가 보내주는 생활비로는
살림이 넉넉지 않은 모양입니다.

"야 컴퓨터다!"
그 집 6학년 딸이 들어와 구경하자,
할머니가 아이의 어깨를 두드리시더군요.
"너 공부 잘하라고 엄마가 사온 거여,
학원 다녀와서 실컷 해. 어여 갔다와."
아이는 "네~" 하고는 후다닥 나갔습니다.

설치를 끝내고 집을 나섰는데
대로변의 정류장에 아까 그 딸아이가 서 있습니다.
"어디로 가니? 아저씨가 태워줄게."
주저 할만도 한데 아까 봤던 아저씨라 믿었는지
아이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하계역이요~"
제 방향과는 반대쪽이지만 태워 주기로 하였습니다.
집과 학원거리로 치면 너무 먼 거리였습니다.

한 10분 갔을까.
아이가 갑자기 화장실이 너무 급하다고 합니다.
패스트푸드점 건물이 보이기에 차를 세웠습니다.
"아저씨 그냥 먼저 가세요."
다급히 아이는 건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무심코 보조석 시트를 보는데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검빨갛게 물들은 시트.

아마 첫 생리?
보통 바지가 젖을 정도...
당황한 아이의 얼굴,
당장 처리할 방법도 모를 테고 마음이 너무 급했습니다.
재빨리 청량리역까지 와서
속옷을 여러 사이즈로 샀습니다.
아이엄마에게 전화했다가는 마음이 아파하실 것 같아
연락도 못하겠더군요.

집사람한테 전화 했습니다.
"지금 택시타고 빨리 청량리역...
아니 그냥 오면서 전화해.. 내가 찾아 갈게."
"왜? 뭔 일인데?"
자초자종 이야기하자, 집사람이 온다고 합니다.
아, 아내가 구세주 였습니다.

가는 중 전화가왔습니다.
"약국 가서 생리대 사. XXX 달라 그러고
없으면 XXX 사....속옷은?"
"샀어.."
"근처에서 치마 하나 사오고....
편의점 가서 아기 물티슈도 하나 사와."

진두지휘하는 집사람 덕에 장비(?)를 다 챙겨서
아이가 좀 전에 들어갔던 건물로 돌아갔습니다.
없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합니다.
아이 이름도 모르는데,

집사람이 들어가니 화장실 세 칸 중에
한 칸이 닫혀 있었습니다.
말을 걸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까지 그 안에서 혼자 울면서 끙끙대고 있었던 겁니다.
다른 평범한 가정이었으면 조촐한 파티라도 할
기쁜 일인데... 콧잔등이 짠하더군요.

집사람과 아이가 나오는데
그 아이 눈이 팅팅 부어 있더군요.
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묻더군요.
"그 컴퓨터 얼마 받고 팔았어?"
"22만원"
"다시 가서 주고 오자.."
"뭐?"
"다시 가서 계산 잘못 됐다고 하고,
10만원 할머니 드리고 와."

램 값이 내렸다는 등 대충 얼버무리면서
할머니에게 돈을 돌려 드렸습니다.
나와서 차에 타자 집사람이
제 머리를 헝클이며 "짜식~" 그랬습니다.

그날 밤 11시 쯤 아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여기 칠곡인데요. 컴퓨터 구입한......."

이 첫마디 하고
계속 말을 잇지 못하시더군요.
저도 그냥 전화기 귀에 대고만 있었습니다.

profile
댓글
2013.09.06 21:20:26 (*.202.123.69)
오작교

아직 세상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나타나기를 거려해서

신문이나 방송에는 매번 흉악하고 나쁜 사람들만 비춰지기

때문에 세상이 온통 썩어들어가는 것 같지만

아직은 살아볼만한 세상임에 틀림없습니다.

 

쉽게 할 수 있지만 쉽지 않은 것,

남을 위한 작은 배려이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삭제 수정 댓글
2013.09.09 11:13:28 (*.244.220.253)
산세

정말 아름다운 글입니다. 가슴이 찡할정도로 우리사회가 이런 사회이었으며 좋겠습니다.

남을 생각해주는 너그러운 마음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찬한 마음 모든이들이 다같이 이런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말이 싫어하는 사람 (4)
고이민현
2014.01.01
조회 수 2923
♣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자 ♣ (6)
고이민현
2013.12.26
조회 수 3103
♣ 클럽 하우스 락커 룸 ♣ (6)
고이민현
2013.11.14
조회 수 2989
조회 수 3144
인생의 마지막 5분간(分間) (2)
오작교
2013.11.05
조회 수 2915
스님과 어머니 (3)
바람과해
2013.11.01
조회 수 2852
♣ 아내의 눈썹 ♣ (3)
데보라
2013.10.31
조회 수 2845
어느 어머님의 일기 (1)
시몬
2013.10.30
조회 수 2718
철이 든 형님 (2)
데보라
2013.10.27
조회 수 2659
참친절 (1)
시몬
2013.10.26
조회 수 2447
감동 이야기 (10)
바람과해
2013.10.25
조회 수 2579
나이 70은 從心이라 부른다 (3)
청풍명월
2013.10.15
조회 수 3391
길 떠나는 인생 (4)
고이민현
2013.10.12
조회 수 2833
스스로 아프게 하지 말아요 (1)
시몬
2013.10.03
조회 수 2499
약속의 유효기간 (1)
시몬
2013.10.02
조회 수 2521
인간 관계 (1)
시몬
2013.09.30
조회 수 2534
오직 한사람... (1)
시몬
2013.09.12
조회 수 2597
마주 보는 법 (1)
시몬
2013.09.10
조회 수 2516
♠ 충청도 장모 vs 서울 사위 ♠ (4)
고이민현
2013.09.05
조회 수 3220
가을 편지 / 외외 이재옥 (1)
niyee
2013.09.04
조회 수 2471
가슴 따뜻한 이야기.. (2)
시몬
2013.09.02
조회 수 2500
조회 수 2552
어느 며느리의 편지 (6)
시몬
2013.08.31
조회 수 2756
꽃무릇(상사화)/김돈영 (1)
niyee
2013.08.30
조회 수 2439
코끼리에게도..... (1)
시몬
2013.08.28
조회 수 2259
조회 수 2418
성은 참이요,이름은 이슬 (6)
고이민현
2013.08.24
조회 수 2582
노년에 관해.. (3)
시몬
2013.08.23
조회 수 2539
조회 수 2385
인순이... (2)
시몬
2013.08.20
조회 수 2246
그 남자 그 여자 (1)
시몬
2013.08.19
조회 수 2320
어느 사랑이야기 (1)
시몬
2013.08.18
조회 수 2405
조회 수 2397
조회 수 4995
미소(微笑)예찬 / 주응규 (3)
niyee
2013.08.14
조회 수 2291
조회 수 2672
녹슨 삶을 두려워하라 (1)
시몬
2013.08.13
조회 수 2336
조회 수 2320
피는 물보다 진하다. (4)
조지아불독
2013.08.10
조회 수 2403
먼길을 다해..
시몬
2013.08.03
조회 수 2404
천천히 걷기를... (1)
시몬
2013.07.31
조회 수 2324
낙조 (1)
niyee
2013.07.30
조회 수 2212
일본은 끝났다 (5)
시몬
2013.07.29
조회 수 2315
왜 사느냐고..?
시몬
2013.07.26
조회 수 2173
내가 산다는 것.. (2)
시몬
2013.07.20
조회 수 2250
배우는 자의 행복한 기도 ... (3)
데보라
2013.07.20
조회 수 2314
조회 수 2327
말 돼네 (6)
고이민현
2013.07.13
조회 수 2812
내 아들들 에게 쓰는 편지 . (1)
시몬
2013.07.10
조회 수 2331
시원하게 한번 보세요~~~ (2)
시몬
2013.06.30
조회 수 2347
변호사와 전화 (2)
시몬
2013.06.27
조회 수 2304
조회 수 2303
빨간도깨비...
시몬
2013.06.24
조회 수 2720
인간은 만남을 통해 살아간다 (1)
고등어
2013.06.19
조회 수 2356
인생의 향기 (1)
시몬
2013.06.19
조회 수 2258
말에 관한 충고 (3)
시몬
2013.06.11
조회 수 2437
떠날 수 있다는건..
시몬
2013.06.10
조회 수 2237
불안도 쓸모 있다
시몬
2013.06.07
조회 수 2323
세월아 술한잔 하자 (6)
고이민현
2013.06.06
조회 수 2809
관심..
시몬
2013.06.05
조회 수 2280
청 춘.. (2)
시몬
2013.06.02
조회 수 2242
조회 수 2175
조회 수 2426
독도는?! (13)
바람이된별
2013.05.25
조회 수 2676
대숲에 들면 -박광호 (1)
niyee
2013.05.18
조회 수 2393
조회 수 2890
조회 수 2687
중년이라는 나이 (4)
오작교
2013.04.02
조회 수 3582
내가 알고 있는것 (1)
尹敏淑
2013.03.28
조회 수 2567
조회 수 2474
창밖에 걸린 봄 /오은서 (1)
niyee
2013.03.27
조회 수 2568
★ 어느 선술집벽 낙서 ★ (2)
고이민현
2013.03.22
조회 수 3070
조회 수 2633
어머니의 웃음! (1)
데보라
2013.03.02
조회 수 2566
메일이 맺어준 사랑이야기(寓話) (2)
고이민현
2013.02.22
조회 수 2661
어느 노부부의 외출 (6)
오작교
2013.02.16
조회 수 2794
당신은 애무나 잘 하셔! (10)
고이민현
2013.02.11
조회 수 4631
메아리.... (6)
데보라
2013.02.10
조회 수 2700
조회 수 2699
조회 수 2663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네 가지 (6)
오작교
2013.01.22
조회 수 3119
'나' 와 '우리'의 갈림길/.... (1)
데보라
2013.01.21
조회 수 2437
태화강 연가Ⅱ / 송호준 (1)
niyee
2013.01.21
조회 수 2609
조회 수 2498
조회 수 2537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7)
Jango
2012.12.21
조회 수 2692
눈물어린 등불~.... (5)
데보라
2012.12.20
조회 수 2502
조회 수 2490
설화 / 송호준 (1)
niyee
2012.12.17
조회 수 2427
에미 맘~.... (7)
데보라
2012.12.07
조회 수 2422
꿈과 소망으로 아름다운 하루 (1)
고등어
2012.12.05
조회 수 2462
겨울 장미/ 외외 이재옥 (2)
niyee
2012.11.30
조회 수 2503
가을 엘레지 -詩 김설하 (3)
niyee
2012.11.29
조회 수 2528
♠ 어느 실버의 간절한 소망 ♠ (5)
고이민현
2012.11.28
조회 수 2429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