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좋은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

글 수 900
2014.04.19 11:19:36 (*.204.44.6)
2573

사흘 전 아침, 나는 친구를 만나고 있었다. 밥을 먹었고 커피를 마셨고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았다.

친구를 만나기 전 제주로 가는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승객의 대부분이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라는 기사도 읽었지만 다행히 전원 구조되었다고 했다. 그 소식까지만 듣고 나는 다른 날과 똑같은 하루를 보냈다. 어쩌면 이 나라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니, 대체 이래서야 아이들 소풍인들 마음 놓고 보내겠니, 뭐 그런 식의 상투적인 비난을 조금 더 많이 한 것 정도가 다르다면 다른 날이었을까.

 

그렇게 나는 아무 일도 없는 줄 알았다. 하루가 다 저물고, 어린아이에게 따뜻한 밥 지어 저녁 먹이면서야 비로소 나는 너희들이, 여전히 그 차가운 바닷물 속에 갇혀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사랑한다고, 마지막일지도 몰라 온 힘을 다해 사랑한다고 보낸 문자도 그제야 알았다.

 

차마 더 이상의 뉴스를 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돌린 순간 그날 있었던 일을 종알대며 밥을 먹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이유를 설명할 틈도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보냈던 하루의 시간이 고스란히 죄가 되어 목에 걸렸다.

 

나는 무서웠다. 아이들의 미래를 이렇게 쉽게 앗아가는 사회에서 나는 대체 이 아이를 끝까지 보호할 수 있을까. 그래, 나는 그 순간에도 내 아이를 먼저 걱정했다. 차가운 바다에서 표류조차 하지 못하고 같힌 너희들에 대한 걱정은 그 다음이었다.

 

미안하다. 우리에게 너희는, 청춘은, 늘 언제나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였다. 일찍 사실을 알았다 한들 내 죄가, 우리 어른들의 죄가, 이 사회의 죄가 가벼워졌을 리 없다.

 

한 시인이 페이스북에 올린 '철마다 합동분향소가 서는 나라'라는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유사한 사고를 돌아보기 위해 먼 시간을 훑을 필요도 없다. 지난 계절에도, 그 앞선 계절에도 이런 사고가 있었다. 그러고 사고는 어김없이 늘 죄 없는 청춘들을 주로 겨냥했다. 이 사회에 져야 할 책임이 하나도 없는 어린 것들만 늘 목숨을 빼앗긴다.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 재난관리 시스템의 부재에 대해서, 이 참담한 와중에도 얼굴 들이밀고 표 장사 하는 정치인에 대해서 말을 보태 무얼 할까 싶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게 하겠다고 말을 하지만,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및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 등 정부의 정체성을 되물어야 하는 사건 속에서 해외 순방부터 나서는 지도자가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도망간 선장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것인지,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근거 없는 안전을 약속하며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정부가 재난 시 대피를 명하지 않은 이들에게 또 어떻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만, 되돌린다 한들 그 시간 속에서 정치인들은 정쟁으로 바쁘고, 기업인들은 이익을 위해 수단의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을 테고, 부정과 비리 속에 사회의 곳곳이 병드는 동안 오직 성적으로만 평가되느라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나 방향을 배우지 못한 청춘들만 또다시 절명의 순간과 만나고 말 것이다.

 

침몰한 세월호 안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상징처럼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사회는 침몰 직전의 세월호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저, 이 사회의 개탄할 문제 따위는 나중에 묻고 한 생명이라도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지만 혹 버티지 못한 생명이라도 차가운 바닷속에서 머물지 않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 없이, 어떻게든 돌아와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순간까지 배에 울려 퍼졌다는 '가만히 있어라' 한마디가 아프게 마음에 남는다. 아이를 키우면서 '교육'이라는 혹은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이 그 말을 했던가.

 

제대로 된 어른이 실종된 나라에 살면서 어른이 되면 알 수 있다,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다, 그러니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어라, 가르쳤던 뻔뻔함이 부끄럽다. 그럼에도 그 무섭고 두려운 순간에 그 어린 너희들이 남긴 말이 사랑한다,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말이라는 사실 때문에 자꾸 눈물이 난다.

 

용서는, 우리가 그 아이들에게 구해야 하는 말 아니던가. 그러니 아이들아, 곱디고운 아이들아, 그 망망한 바다에서 길 잃지 말고 버티어주렴. 부디 모두 돌아와주렴. 제발!

 

글 : 한지혜(소설가)

출처 : 2014. 4. 19일 자 경향신문 '시론'

댓글
2014.04.19 13:47:58 (*.2.48.152)
고운초롱

제발!!

제발!!

울컥울컥..가슴이 먹먹하고

아파 며칠을 잠도 설치고

심장도 두근두근 바짝 타들어 가는 나날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힘이 몽땅 다 빠져나가서

셩수업 날인데..

도저히 참여할 수가 없어서 풀장에 들어갔다가

발차기 몇번 하고 나왔습니다.

 

얼마나 차갑고

배가 고프고 힘들까요?

 

조금만 또 조금만 더 버텨보자!!

 

울 아이들 무사히 돌아올 수있도록..

 

오늘도 기도합니다.

댓글
2014.04.19 18:02:45 (*.154.117.141)
청정

너무나 어처구니 없고

안타깝고 허무한 눈물에

무어라 해야 할지.....

댓글
2014.04.20 13:03:56 (*.36.80.227)
고이민현

모든 국민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댓글
2014.04.21 10:37:00 (*.217.56.196)
쉼표
profile

답답하고 먹먹한 가슴으로 ..

할 수 있는 일이라곤 ....

기도밖에 없나는 것이 너무 슬프다.

댓글
2014.04.23 10:58:02 (*.51.39.189)
바람과해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너무 너무 아프네요.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조회 수 2857
가재미 (2)
오작교
2023.02.14
조회 수 3180
아름다운 인생을 위하여
오작교
2021.11.27
조회 수 3965
우유 한 잔
바람과해
2021.02.06
조회 수 4563
조회 수 4786
내 마음의 밝은 미소는 (2)
바람과해
2020.12.02
조회 수 4697
배려 (2)
바람과해
2020.09.28
조회 수 4803
너무 보고 싶다 (11)
바람과해
2020.08.08
조회 수 5174
幸福은 어디에서 올까요?
바람과해
2020.06.20
조회 수 4478
길은 잃어도 사람은 잃지마라
바람과해
2020.03.24
조회 수 4808
사랑의 마음 (3)
바람과해
2020.03.10
조회 수 4822
자동차와 여자 (4)
고이민현
2019.12.23
조회 수 5174
술주정/정철호 (6)
고이민현
2018.12.25
조회 수 5558
마음을 바꾸는 힘
바람과해
2018.11.07
조회 수 5655
★ 어느 수도자가 올린 글 ★ (6)
고이민현
2018.07.09
조회 수 6009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2)
바람과해
2018.07.05
조회 수 5553
♥ 치마와 팬티의 역설 ♥ (4)
고이민현
2018.05.09
조회 수 6552
조회 수 5939
허망한 눈맞춤 (4)
고이민현
2018.01.25
조회 수 6061
조회 수 5258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4)
바람과해
2017.12.13
조회 수 4131
멋있는 사람이란
바람과해
2017.05.29
조회 수 4459
할머니의 걱정 (7)
고이민현
2017.03.31
조회 수 3765
조회 수 3896
♧ 성공한 인생이란 ♧
고이민현
2016.12.22
조회 수 3910
부부가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 (5)
오작교
2016.10.04
조회 수 4057
♡ 고해성사(男子) ♡ (8)
고이민현
2016.09.09
조회 수 3784
착각 세 가지 ... (1)
데보라
2016.09.02
조회 수 3295
조회 수 5419
내게 너무 착한 남편 (1)
오작교
2016.08.26
조회 수 3259
☞ 웃기는 집안 ☜ (3)
고이민현
2016.08.16
조회 수 3637
정직과 진실만이 성공의 비결 (2)
바람과해
2016.07.26
조회 수 3529
☞ 니 신랑이 아니야 ☜ (4)
고이민현
2016.06.19
조회 수 3240
밤의 불청객 (1)
말코
2016.06.05
조회 수 2965
100세 시대의 수명 이야기 (5)
말코
2016.05.08
조회 수 2931
☎ 사이버 공간의 禮義 ☎ (5)
고이민현
2016.04.15
조회 수 3016
가슴 뭉클하게 하는 실화! (1)
바람과해
2016.03.30
조회 수 2852
어느 여대생의 일기 (5)
고이민현
2016.02.27
조회 수 3007
♣ 나이가 들면/김동길 ♣ (3)
고이민현
2016.02.04
조회 수 3643
8천억 전 재산 장학금으로" (6)
바람과해
2016.01.08
조회 수 2562
丙申年 새해가 밝았네요 (6)
고이민현
2016.01.01
조회 수 2288
가슴 뭉쿨한 이야기 한토막
바람과해
2015.12.16
조회 수 2305
천국으로 가는 길 (4)
오비이락
2015.12.05
조회 수 2319
조회 수 2262
친절한 마음 (1)
오비이락
2015.12.04
조회 수 2038
조회 수 2195
茶와 情 (5)
고이민현
2015.11.16
조회 수 2120
어느 노인의 기막힌 지혜 (2)
바람과해
2015.10.01
조회 수 2368
풍요로운 한가위 (2)
고이민현
2015.09.22
조회 수 1883
가을 향기 기다리며 (2)
머루
2015.09.04
조회 수 1908
돈 보다 귀 한 것 (5)
바람과해
2015.09.01
조회 수 2172
조회 수 2090
조회 수 2502
여보, 사랑해 (3)
오작교
2015.08.06
조회 수 2128
조회 수 2348
우리 어머니가 (2)
바람과해
2015.06.29
조회 수 2127
♣ 가슴 아픈 인생길 ♣ (2)
고이민현
2015.06.14
조회 수 2265
♣ 고스톱은 괴로워 ♣ (4)
고이민현
2015.05.16
조회 수 4276
꽃이 지네 사랑도 지네 (7)
말코
2015.05.09
조회 수 2776
사람을 외모로 취하자 말라
바람과해
2015.05.07
조회 수 1980
봄 속에서 (2)
niyee
2015.04.09
조회 수 2331
다시 오는 봄 / 도종환 (9)
尹敏淑
2015.04.03
조회 수 2982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 (2)
바람과해
2015.03.06
조회 수 2326
◆ 늙어가는 모습 똑같더라 ◆ (8)
고이민현
2015.02.20
조회 수 2455
꿈의 뜨락 / 설향 최경자 (2)
niyee
2015.02.16
조회 수 2224
백세 인생(百歲 人生) (2)
고이민현
2015.01.28
조회 수 3475
♠ 아버지는 가슴으로 운다 ♠ (4)
고이민현
2015.01.01
조회 수 2673
내가 모르고 있는 소중한 것 (2)
바람과해
2014.12.16
조회 수 2397
3등칸에 탄 슈바이쳐 박사
바람과해
2014.12.16
조회 수 2511
☞ 술의 두 얼굴 ☜ (4)
고이민현
2014.12.04
조회 수 2632
총장 이야기
바람과해
2014.10.31
조회 수 2688
니미 뽕~~ 이다 (5)
오작교
2014.10.24
조회 수 2971
너 늙어 봤나 난 젊어 봤단다 (7)
고이민현
2014.10.11
조회 수 4029
90세 노인이 쓰신 글 (2)
오작교
2014.09.28
조회 수 3440
내 안에 흐르는 눈물~~ (12)
Jango
2014.09.11
조회 수 3133
♣ 자연이 들려주는 말 ♣ (4)
고이민현
2014.07.29
조회 수 3267
6년 후에 오뎅값을 갚은 청년 (2)
바람과해
2014.07.20
조회 수 2971
♠ 노인이 되더라도 ♠ (12)
고이민현
2014.07.11
조회 수 3394
소금 / 류시화 (2)
尹敏淑
2014.06.26
조회 수 3445
♣ 어떤 닭을 원하나요 ♣ (6)
고이민현
2014.06.16
조회 수 3023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웅 (4)
바람과해
2014.06.03
조회 수 2999
25 센트의 기적 (2)
바람과해
2014.06.01
조회 수 3117
가슴 뭉클한 동영상 (3)
바람과해
2014.05.30
조회 수 3007
삶을 하나의 무늬로 바라 보라 (2)
尹敏淑
2014.05.28
조회 수 2922
염일방일 (拈一放一) (4)
바람과해
2014.05.21
조회 수 3035
나의꽃 / 한상경 (1)
尹敏淑
2014.05.16
조회 수 5313
우리는 살아가면서
고등어
2014.05.15
조회 수 2790
♣ 한걸음 떨어져서 가면 ♣ (6)
고이민현
2014.05.14
조회 수 2714
우유 한 잔의 치료비(실화) (3)
바람과해
2014.05.12
조회 수 2642
돌아와주렴 제발! (5)
오작교
2014.04.19
조회 수 2573
흘린술이 반이다./ 이혜선 (7)
尹敏淑
2014.03.25
조회 수 3081
꿈을 위한 변명 / 이해인 (4)
尹敏淑
2014.02.25
조회 수 2870
바닷가에 대하여 / 정호승 (10)
尹敏淑
2014.02.19
조회 수 3226
조회 수 2662
나의 겨울 -목련 김유숙 (2)
niyee
2014.01.07
조회 수 2373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