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습니다.

글 수 4,852
바람과해
2010.07.25 16:07:59 (*.159.49.39)
2992



늙은 할배 일기

    일평생 땅만 파먹고 사신 농부가 있었다. 개구리, 물방개, 잠자리, 바람, 잡풀사이에서 새벽부터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땅만 파고 살았다. 밭두렁에 살구꽃 피는 봄이면 황소로 논을 갈고 거름을 내고, 못자리를 내어 볍씨를 뿌리고 숨이 칵칵 막히는 7-8월 땡볕에는 목줄을 타고 내리는 땀 소금덩어리가 그의 논밭에 흘리는 것이 서너 말은 넘었으리라. 흉년이 들어, 온 식구들이 먹거리가 떨어졌던 어느 해는 달랑 괭이 하나, 지게 하나만 갖고 석 달이 넘도록 척박한 땅을 일구다가 등허리에 등창이 나고 헐은 그의 등허리에 파리가 쉬를 실어 구더기가 일었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 열심이 일하는 사람을 보고는 "덕명이 일하 듯 한다" 혹은 “덕명이보다 더 지독하다” 했고 그의 이름 석자 그 자체가 그 지방에서 일 잘하는 대명사가 되어갔다. 그렇게 순 땅만 파먹고 뼈가 녹도록 일하여 9남매를 다 키워 객지로 내 보내고 어느 정도 살만하니 할머니가 먼저 덜컥 세상을 뜨셨다. 객지 자식들에게 부담 된다며 홀로 고향에서 직접 밥을 지어 먹고 살다가 나이가 80을 넘기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더 이상 농사도 못 지을 정도로 육신이 노쇠해지자 김 노인은 땅을 팔고 고향 집을 버리고 서울로 갔다. 왜냐하면 서울에 사는 아들들이 하나같이 "아부지요, 우리가 노후를 편하게 모실 테니 땅 팔아서 서울로 올라 오이소" 했기 때문이다. 보따리를 싸서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간 김 노인이 무슨 연유인지 3개 월 만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 오셨다. 밝은 대낮에는 고향 마실로 들어서기 부끄러워 읍내에서 서성거리다가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고향 마을로 돌아와서, 버리고 간 고향 빈집으로 더듬더듬 다시 들어가셨는데 간간히 꺼이꺼이 낮은 울음소리가 새벽이 다 되도록 들렸다. 고향 빈집에서 며칠 밤을 보내시고 새벽에 일어나 마당 물물로 목욕을 하고 할머니가 살아 있을 때 만들어 주신 깨끗한 한복을 갈아입으시고..... 다시 고향 집을 나섰다. 마침 느티나무 아래서 당파 씨를 고르던 이웃집 시울실 할매와 구담댁 할매가 뽀오얀 한복을 입고 나서는 김 노인을 보시고는 "저 어르신 아침부터 옷을 말끔하게 갈아입고 어디가시노?...." "서울 잘 사는 아들한데 호강하러 가신분이 저렇게 돌아와서 당체 말도 아니하니시 맴이 아프이더" "어제 아침에 죽을 끓여서 갖다드렸는데 한 숟가락도 안 먹었띠더.. 당뇨도 더 심하고... 이제 허리 병도 도져서 걸음도 잘 못 걸으실 것 같다하더니 읍내 약 사러 가는 모양있시더!" "빈집에 전기도 없어 우짜닛껴!" "전기는 어제 동장 말로는 다음 주에 불 키도록 한전에서 다시 전기 넣어 준다카디더만... 남의 못타리씨더" 당파 씨에 묻은 흙먼지를 털털 털면서 구담댁 할매가 "그 많튼 문전옥답 다 팔아 자식들 한데 다 떼이뿌고..... 늙으막에 남의 일 같지 안니더" 휴....하고 긴 한숨을 솥아 내쉬었다. 시울실 할매와 구담 할매가 걱정스러운 듯이 가만가만 힘겹게 걸어가시는 김 노인 쪽을 바라보는데.. 김 노인은 읍내 길로 아니 가시고 참 진달래꽃이 붉게 피어 있는 마을 앞 산으로 오르셨다. "저 어르신 어디가는데..읍내로 안 가시고 앞산으로 올라 가시노?" "할마이 묘에가시나..." "이제 와서 할마이 묘에 간들 무슨 소용있닛껴...." 시울실 할매가 당파 뿌리를 조금전 보다 더 쎄게 땅에 탈탈 털면서 눈시울을 훔치셨다. 그날 해가 어둑어둑해져도 앞산으로 오르신 할아버지는 마을로 내려오시지 않았다. 다음 날 ..... 동네 할매들이 김 노인 빈집 처마에 반쯤 비어있는 농약병을 들고는 "우얏꼬 우앗꼬" 탄식을 하며 눈물을 훔치셨고 읍내 형사들이 전경들을 앞세우고 앞 산 김 노인 할머니 산소 쪽으로 급하게 뛰어 올라가고 마을 어귀에는 읍내 권 병원 앰불런스 한대가 다급하게 왱왱 거리면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8년이 흘렀다. 늙은 농부가 사시던 고향 집은 다 허물어지고 늙은 노인이 살아 생전에 땀을 뻘뻘 흘리시며 거름을 가득이 지고 논밭으로 다니시던 지게에는 지난 해 피었던 해묵은 나팔꽃 줄기가 걸쳐 있었다.

Once Upon a Time 


댓글
2010.07.26 21:21:18 (*.47.132.228)
쇼냐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들의 노후를 보는것 같군요 .

그래도 스스로 목숨은 안 끊어야 될건데 ...

누구든 장담은 못하겠죠 . 꽃이피었따 지는 자연스런일이

우리인생에도 닥치니 ...누구누구탓하지말고 마음으로

준비는 하며살아야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댓글
2010.07.28 11:19:17 (*.159.49.39)
바람과해

쇼 냐님

누구나 노후는 자기 스스로 미리

준비를 해야 할겉 갔네요.

이글을 보니 가슴이 아픕니다.

건강하게 지내세요.

번호
제목
글쓴이
공지 우리 홈 게시판 사용 방법 file
오작교
2022-04-26 70388  
공지 테이블 매너, 어렵지 않아요 2 file
오작교
2014-12-04 81162  
공지 당국이 제시한 개인정보 유출 10가지 점검 사항 4 file
오작교
2014-01-22 97873  
공지 알아두면 유익한 생활 상식 7
오작교
2013-06-27 98464  
4052 오작교에서의 좋은 만남~ 4
데보라
2010-08-08 2673  
4051 부모라는 거울 2
바람과해
2010-08-07 2146  
4050 촌수와 호칭 2
오작교
2010-08-03 17369  
4049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지혜들 2
바람과해
2010-07-30 3005  
4048 天惠의 補藥 "숲" 2
바람과해
2010-07-29 2807  
늙은 할배 일기 2
바람과해
2010-07-25 2992  
4046 어느 수의사의 양심 고백 2
바람과해
2010-07-25 2109  
4045 행복 헌장 (幸福 憲章) 1
바람과해
2010-07-25 2028  
4044 소중 하게 느끼는 만남 5
WebMaster
2010-07-24 2163  
4043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수증 4
바람과해
2010-07-20 2802  
4042 방금 SBS TV 방송에서 "오작교"님을~ 13
Jango
2010-07-20 2598  
4041 마음이 편해지는 글 2
바람과해
2010-07-17 2529  
4040 중년의 마시는 한병의 술은~...... 10
데보라
2010-07-16 3005  
4039 삶에 휴식이 되어주는 이야기 3
바람과해
2010-07-16 2322  
4038 어머니의 깊고 깊은 사랑 2 file
바람과해
2010-07-14 2977  
4037 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껴라 2
바람과해
2010-07-12 2088  
4036 난 비밀경찰이야 ! 4
데보라
2010-07-10 3020  
4035 중년의 삶이 지치거든 3
바람과해
2010-07-10 3216  
4034 인연 6
바람과해
2010-07-09 2785  
4033 니가 시방 어른을 가지고 노냐? 5
데보라
2010-07-09 2694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