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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뇌는 계속 멍해도 되는 걸까?

문득 나도 모르게 멍한 상태가 되는 경우가 있다. 한 손에 리모컨을 쥐고, 혹은 한 손이 버스 손잡이를 잡고, 혹은 한 손에 주방 칼을 들고 멍한 상태가 되곤 한다. 정신을 놓은 듯 멍해지는 그 찰나의 순간, 뇌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렇게 반복적으로 멍해지는 생활을 지속해도 되는 것일까? 멍해지는 뇌는 부정적이기만 할까?


▲ 뇌세포와 멍한 습관

사람이 멍해지는 순간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심한 출혈·뇌손상·심장마비·저산소증 등 신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게임·텔레비전·마약 등의 중독에 빠졌을 때, 수면 부족·피로 누적 등의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설거지·빨래·복사·버스 줄서기 등 반복적 습관에 노출되어 있을 때 멍한 순간은 기습적으로 찾아온다.

이런 ‘멍 때리기’는 대부분 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세포의 노화를 빠르게 하고 치매 가능성도 커진다. 건망증이 심해지고, 불안·분노·근심 등의 표현이 잦아진다. 계산 능력과 판단력도 떨어지며, 우울증을 불러오기도 한다. 40대 이후 뇌세포는 급격히 감소한다.

안타깝게도 전업주부의 경우 더욱 조심해야 한다. 젊은 치매 환자가 늘어나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멍하게 있는 일이 잦다고 느껴진다면,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일이 흔하다면 젊다는 자신감만으로는 부족하다.


▲ 긍정적 멍 때리기

물론 멍 때리는 그 순간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뇌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주위의 자극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눈을 뜨고 있는 동안 수없이 많은 자극에 노출되지만, 그 모든 자극을 수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뇌는 필요한 자극만을 골라내는데, 그 과정이 극대화되는 경우 타인의 시선에는 멍 때리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채플린의 사진 촬영 일화를 보자. 유명 사진작가와 중요한 촬영을 앞둔 채플린은 무엇인가에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촬영이 시작되었지만 채플린은 촬영에 집중할 수 없었다. 채플린은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는 멍한 시선을 고집하며 카메라만을 바라보았다. 그 짧은 순간이 흐른 뒤에 그는 그만의 독특한 표정 연기를 발휘했고 촬영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다.

지하철에 앉아 있는 사람들 대다수는 멍하게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 순간이 지독한 집중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멍해 있다가 어느 순간 메모를 하거나, 전화를 걸거나, 무언가 능동적인 행동을 이어간다. 순간의 번뜩임이 ‘멍 때리기’와 만나는 순간이다.


▲ 멍 때리기에 관한 가설들

멍하게 있는 순간의 뇌는 아무 활동도 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이나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한 연구 결과들을 보면 오히려 이 상태에서 더 활성화되는 뇌 영역들이 발견되었다. 활성화되는 부위는 쐐기전소엽, 후대상회, 내측 전전두엽과 일부 내측 측두엽을 포함한다.

이 상태에 대한 가설들도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주위 자극을 감시, 감지한다고 보는 견해와 자유로운 생각이 일어난다고 보는 견해 등이다. 특히 후자는 창조적인 생각을 떠올리는 데에 이런 상태가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가설들이고 진행 중에 있는 연구들이지만, 멍 때리고 있는 상태가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 의도적 멍 때리기

끝없이 쏟아지는 정보로 인해 골치가 아픈 현대인은 의도적으로 멍 때리기를 수행하기도 한다. 명상, 걷기, 요가, 마라톤, 사우나 등이 그것이다.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오직 자신의 몸에 집중하면서 스트레스를 완화한다. 특히 명상은 휴식과 이완에 관련된 세타파를 증가시키고, 코르티솔 호르몬을 줄여 혈압과 맥박,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린다.

또한 베타 엔도르핀을 생성하여 인체의 면역 기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도 명상은 피로, 긴장, 우울, 분노 등을 크게 감소시킨다. 또한 전두엽 영역을 활성화해 창조력과 고등 인지력을 높이는 알파파를 증가시키기도 한다.

걷기 또한 현대인의 건강한 취미가 되고 있다. 숲이 지닌 생명력과 치유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다시 숲을 찾아 걷고 있다. 걷기 시작하면 심장박동률이 증가하면서 뇌 혈류량이 증가한다.

증가한 뇌 혈류량은 뇌의 연료 공급을 증가시켜 사고력과 집중력, 기억력을 높인다. 걷기 시작한 지 10~15분이 지나면 뇌 속의 혈액순환은 50퍼센트나 증가한다.

타인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자신을 만나는 시간도 중요하다.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기 위해 멍 때리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집 앞을 걸어보거나, 목욕을 하면서, 시간이 나지 않는다면 침대 위에서라도 모든 생각을 지우고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해본다.

깊게 쉬는 숨 하나만으로도 몸이 이완되고 마음은 평화로워진다. 자신의 호흡과 관절 마디마디, 근육 하나하나가 건네는 언어를 느끼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확인하는 것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글·최유리yuri2u@hanmail.net
출처 : 브레인미디어 www.brai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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