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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에서/정호승

빈지게 2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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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에서/정호승


이제 날은 저물고
희망 하나가 사람들을 괴롭힌다
밤길을 걷는 자의 옷자락 소리가
서둘러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오늘도 나는 깨어진
이웃집 창문 앞에서

잔인한 희망의 추억을 두드린다

눈조차 오지 않아
쓸쓸한 오늘밤에도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불행하고
희망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더 불행하다

풀잎 속에 낮게 낮게 몸을 낮추고
내가 일생을 다하여 슬퍼한 것은
아직 눈물이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아직 희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또다시 해는 기울고
희망이 우리를 타락시키는 밤은 깊다
바닷가 모래 위에
녹아 버린 눈길 위에
녹아 버린 눈길 위에
빵을 뜯어먹으며
사람들이 울고 있다

희망에 굶주린 밤은 오는데
희망은 아침마다 새벽이슬로 젖는데
나는 오늘밤
희망의 추억을 가지고 밤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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