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습니다.

글 수 4,852




이것은 괴로움인가 기쁨인가/황동규

1

내 그처럼 아껴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던 어린 나무들이 얼어 쓰러졌을 때 나는 그들을 뽑으러 나갔노라. 그날 하늘에선 갑자기 눈이 그쳐 머리 위론 이상히 희고 환한 구름들이 달려가고, 갑자기 오는 망설임, 허나 뒤를 돌아보고 싶지 않은 목, 오 들을 이 없는 고백. 나는 갔었다, 그 후에도 몇 번인가 그 어린 나무들의 자리로.
그런데 어느날 누가 내 젊음에서 날 부르는 소리를 들었노라. 나즉히 나즉히 아직 취하지 않은 술집에서 불러내는 소리를.


날 부르는 자여, 어지러운 꿈마다 희부연한 빛 속에서 만나는 자여, 나와 씨름할 때가 되었는가. 네 나를 꼭 이겨야겠거든 신호를 하여다오. 눈물 담긴 얼굴을 보여다오. 내 조용히 쓰러져 주마.


2

갑자기 많은 눈이 내려 잘 걸을 수 없는 날
나는 너를 부르리
그리고 닫힌 문 밖에
오래 너를 세워두리
희부연한 어둠 속에 너의 머리 속에
소리없이 바람은 불고
문이 열리면
칼로 불을 베는 사내를 보게 해 주리
타는 불 머리의 많은 막막함
흩어진 머리칼 아래 무심한 얼굴
혼자 있는 사나이의 청춘
그물 속의 불빛 그물 속의 불빛
뒤를 보려무나
그 사이에 나는 웃으리, 금간 얼음장에 희부연한 빛으로,
그물 속의 불빛 그물 속의 불빛
나는 너를 보리.


3

나무들이 요란히 흔들리는 가운데 겨울 햇빛은 떨어지며 너를 이끌어 들인다, 얼은 들판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나에게로. 잘 왔다 친구여, 내 알려줄 것이 있다. 저 캄캄해 오는 들판을 바라보라. 들판을 바라보는 그대로 너를 나에게 오게 하는 법을 배웠느니라.


이제 무엇을 말하겠는가. 혹은 다시 보겠는가. 네 허전히 보낸 나날의 표정 없는 얼굴을. 네 그처럼 처음을 사랑했던 꿈들을.


보여라, 살고 싶은 얼굴을. 보아라, 어지러운 꿈의 마지막을. 내려서라, 들판으로, 저 바람 받는 지평으로.




* 시집 [三南에 내리는 눈] (민음사, 1995)

삭제 수정 댓글
2005.11.05 19:33:48 (*.105.78.16)
산머루
빈지개님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그동안 편안하셨는지요^^ 하루에 서너번씩 방문해도 댓글다는것이~~~
성의가 부족한 탓이라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루에 한건도 댓글달기가 쉽지않은데 우리 오작교님께선 일일히 신경써야 되니
그 심정 알만합니다. 그리고 존경스럽답니다. 댐에 또 들르겠습니다.
삭제 수정 댓글
2005.11.05 21:10:39 (*.168.149.147)
유리
아~~~~~~~~~~~~~,,빈지게님??
잘 보고 갑니데이,,thank you~~~,,
댓글
2005.11.07 17:47:10 (*.159.174.222)
빈지게
산머루님! 감사합니다. 잘 지내시지요?
늘 건강하시고 좋은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유리님! 늘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주일 열
어가시길 바랍니다.^^*
공지 우리 홈 게시판 사용 방법 file
오작교
69451   2022-04-26 2022-04-26 17:00
공지 테이블 매너, 어렵지 않아요 2 file
오작교
80206   2014-12-04 2021-02-04 13:44
공지 당국이 제시한 개인정보 유출 10가지 점검 사항 4 file
오작교
96921   2014-01-22 2021-02-04 13:58
공지 알아두면 유익한 생활 상식 7
오작교
97518   2013-06-27 2015-07-12 17:04
올챙이의 비밀
김일경
2005.11.06
조회 수 1257
추천 수 1
인간은 고독하다
바위와구름
2005.11.05
조회 수 1196
추천 수 3
그대여 가을이 가려합니다. (1)
황혼의 신사
2005.11.05
조회 수 1246
어느 가을날 (1)
고암
2005.11.05
조회 수 961
추천 수 4
조회 수 1018
추천 수 1
101가지 선물~거시기
김남민
2005.11.04
조회 수 1252
추천 수 1
조회 수 1247
추천 수 1
감국 甘菊 (2)
차영섭
2005.11.04
조회 수 1242
추천 수 1
안나의 생활^^
안나
2005.11.04
조회 수 1314
조회 수 1342
추천 수 2
잘보고 갑니^^
정용인
2005.11.03
조회 수 1226
추천 수 5
해마다 가을이 오면
고선예
2005.11.03
조회 수 1109
추천 수 14
단풍/나태주
빈지게
2005.11.03
조회 수 1218
추천 수 1
당신이 보고 싶은 날이면 (1)
하늘빛
2005.11.03
조회 수 1291
지리산 천왕봉2 (2)
하늘빛
2005.11.03
조회 수 1271
지리산 천왕봉1 (1)
하늘빛
2005.11.03
조회 수 1291
11월의 숲/심재휘
빈지게
2005.11.03
조회 수 1221
추천 수 4
어떤 꿈 이야기
동산의솔
2005.11.03
조회 수 1082
추천 수 7
아름다운 관계
차영섭
2005.11.02
조회 수 1303
조회 수 5309
추천 수 174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