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습니다.

글 수 4,852
2005.11.08 09:22:37 (*.159.174.222)
1993
9 / 0




울타리 / 김명인


이곳으로 이사 온 다음 날부터의 산책길이
거기까지만 이어졌다 끊어진 것은
가시 철망으로 둘러진 울타리 끝없어서
나의 산보 숲의 그 쯤에서 가로 막혔던 탓만이 아닙니다

철책 앞에 멈추어 설 때마다
그 너머 무성한 숲의 비밀 그다지 알고 싶지 않다고
못내 궁금함을 떨치고 돌아서곤 했습니다

오랫동안 너무 많은 질문 혼자서 새겼으므로
이 오솔길 어디만큼 이어졌다 끝나는 지
울타리 너머 누가 사는 지
울창한 그늘에 가려 짐작이 안 되는대로
널판자 엮어 세운 쪽문 틈새 가끔씩 엿보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만발했던 들꽃들이 경계 이쪽으로도
떨기 흩어 놓아 그 꽃철 다 가기까지
마음 홀로 얼마나 자주 울타릴 넘나 들었는 지요

하루는 장대비 속인데 비옷도 안 걸친 사내가
흠뻑 젖은 등을 보이며 쪽문을 못질하고 있어서
누구도 더는 넘볼 수 없게 하려는가
참을 수 없도록 말 건네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설 순간의 그가 두려워져
땀과 비로 얼룩졌을 그의 얼굴을 끝내 보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도 그 쯤에서 내 산책길 가로 막았던 것은
단단한 경계인 쇠가시 울타리가 아니라
이쪽으로도 드리워지던 떨기 꽃그늘이거나
한동안 지울 수 없던 그 사내 완강한 뒷 모습일 거라고

만발하던 울타리 너머의 꽃들 해마다 지고
우레를 끌고 가며 염소 울음처럼
오래 질척거리며 한철 우기도 잦아 들었지만
더는 이어지지 않는 산책길
지금은 아니지만 언제가 나도 울타리 너머로 끝없이
따라 걷고 있을 거라고

아직도 흐느낌처럼 그때의 떨림 남아 있어서
울타리 저쪽 숲의 주인이 누구인 지
궁금해 질 때마다 마음 갈피 더는 어둡지 않게
등불 환하게 밝혀 둡니다
삭제 수정 댓글
2005.11.08 13:28:40 (*.91.97.36)
유리
지금 내겐 울타리가 보이질 않아
성글게 엮인 통나무 울타리 저 너머 핀 꽃들의 구경도
오가는 사람들의 궁금함도 그 어떤 것도 느낄 수가 없음이..
번호
제목
글쓴이
공지 우리 홈 게시판 사용 방법 file
오작교
69431   2022-04-26 2022-04-26 17:00
공지 테이블 매너, 어렵지 않아요 2 file
오작교
80189   2014-12-04 2021-02-04 13:44
공지 당국이 제시한 개인정보 유출 10가지 점검 사항 4 file
오작교
96897   2014-01-22 2021-02-04 13:58
공지 알아두면 유익한 생활 상식 7
오작교
97495   2013-06-27 2015-07-12 17:04
472 가슴 아팠던 가을이 떠나갑니다
하늘빛
1110 1 2005-11-11 2005-11-11 11:20
 
471 기도 1/나태주 1
빈지게
1890   2005-11-11 2005-11-11 00:30
 
470 빼빼로 데이~ 3
향일화
1399   2005-11-10 2005-11-10 23:05
 
469 당신은 나의 의미 1
고암
1312   2005-11-10 2005-11-10 22:22
 
468 내장사의 가을1
하늘빛
1302 7 2005-11-10 2005-11-10 18:45
 
467 떠나간 사랑 3
하늘빛
1279   2005-11-10 2005-11-10 18:42
 
466 빈지게님 축하 드립니다 9
우먼
2368 56 2005-11-10 2005-11-10 12:53
 
465 소의 말/이중섭
빈지게
1049 2 2005-11-10 2005-11-10 10:47
 
464 사랑이라는 의미의 그대는
김미생-써니-
1346   2005-11-09 2005-11-09 19:22
 
463 단풍나무 아래에서 띄우는 편지
황혼의 신사
1305   2005-11-09 2005-11-09 15:44
 
462 남자의 욕망 4
안개
3143 60 2005-11-09 2005-11-09 11:28
 
461 겨울로 가는 그리움의 흔적/박 영실
빈지게
1185 1 2005-11-09 2005-11-09 09:25
 
460 기차/정호승 1
빈지게
1244 2 2005-11-09 2005-11-09 09:23
 
459 그대내겿에 있어준다면/김정한
김남민
1150 1 2005-11-08 2005-11-08 13:40
 
458 이별도 그렇게 오는것을 1
고암
1229 1 2005-11-08 2005-11-08 11:20
 
울타리 / 김명인 1
빈지게
1993 9 2005-11-08 2005-11-08 09:22
울타리 / 김명인 이곳으로 이사 온 다음 날부터의 산책길이 거기까지만 이어졌다 끊어진 것은 가시 철망으로 둘러진 울타리 끝없어서 나의 산보 숲의 그 쯤에서 가로 막혔던 탓만이 아닙니다 철책 앞에 멈추어 설 때마다 그 너머 무성한 숲의 비밀 그다지 알고...  
456 눈 길, 청학동 가는 / 복 효근
빈지게
1248 14 2005-11-08 2005-11-08 09:09
 
455 갈대연가 / 조미영
빈지게
1253   2005-11-08 2005-11-08 09:06
 
454 상상
차영섭
1250 5 2005-11-07 2005-11-07 18:11
 
453 무술의 달인 2
김일경
1310 8 2005-11-06 2005-11-06 08:29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