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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뿌리/도종환

빈지게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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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뿌리/도종환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때가 되면 햇살 가득 넘치고 빗물 넉넉해

꽃 피고 열매 맺는 일 순탄하기만 한 삶도 많지만

사는 일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아

어느해엔 늦도록 추위가 물러가지 않거나

가뭄이 깊이 튼실한 꽃은커녕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다

눈치빠른 이들은 들판을 떠나고

남아 있는 것들도 삶의 반경 절반으로 줄이며

떨어져나가는 제 살과 이파리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겉보기엔 많이 빈약해지고 초췌하여 지쳐 있는 듯하지만

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

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 곧게 아래로 내린다

꽃피기 어려운 때일수록 두 배 세 배 깊어져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진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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