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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게/우경화

빈지게 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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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게/우경화


성냥갑만 한 슬레이트 지붕
다닥다닥 붙어 정겹고도 쓸쓸한 달동네
희망 같은 연탄 가득 실은 손수레 끌며
검둥이 한 마리 앞세우고
가파른 비탈길 휘청휘청 올라가는 할아버지
허리띠같이 좁은 골목 입구에 멈춰 서서
지게에 연탄 착실히 옮겨 짊어지고
성지 순례하듯 발걸음 느릿느릿 떼 놓는
등 굽은 할아버지의 뒷모습
하필이면 어깨에 박인 굳은살 같은 지게
평생 내려놓지 못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닮았을까
몹쓸 병으로 쿨럭거리는 둘째 딸
엉덩이에 주삿바늘 찌르는 솜씨도 날마다 늘어
당신 스스로 돌팔이 의사 다 되었다며
짐짓 쓴웃음 지으시던 아버지
장마 때면 시름인 양 쌓인 빈 스트렙토마이신 병들
비료 푸대에 말없이 주워 담아 지게에 얹고
남몰래 마을 앞 냇가 쪽으로 무거운 발걸음 옮기셨던가
봄날이면 큼직한 나뭇단 눌러 쟁인 지게 위에
참꽃 한아름 자랑스레 꽂고 저녁놀 등에 지고 걸어오시던
아버지와 살던 고향 뒷산 붉은 참꽃 맛이 문득 그립다
아, 천생 부지런한 아버지 닮은 한 할아버지
독거 노인들 옹기종기 모여 사는 달동네
겨울 되면 집집마다 효도하듯 한층 빨갛게 타오를
연탄꽃, 그 환한 꽃지게 지고 계단을 오르신다
눈부신 서울 변두리
할아버지의 무겁지만 따뜻한 꽃지게
뒷모습이 아.름.답.다



-방통대 문학상 시 부문 수상작(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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