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습니다.

글 수 4,852
2005.12.29 22:10:31 (*.87.197.175)
1204
13 / 0




꽃지게/우경화


성냥갑만 한 슬레이트 지붕
다닥다닥 붙어 정겹고도 쓸쓸한 달동네
희망 같은 연탄 가득 실은 손수레 끌며
검둥이 한 마리 앞세우고
가파른 비탈길 휘청휘청 올라가는 할아버지
허리띠같이 좁은 골목 입구에 멈춰 서서
지게에 연탄 착실히 옮겨 짊어지고
성지 순례하듯 발걸음 느릿느릿 떼 놓는
등 굽은 할아버지의 뒷모습
하필이면 어깨에 박인 굳은살 같은 지게
평생 내려놓지 못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닮았을까
몹쓸 병으로 쿨럭거리는 둘째 딸
엉덩이에 주삿바늘 찌르는 솜씨도 날마다 늘어
당신 스스로 돌팔이 의사 다 되었다며
짐짓 쓴웃음 지으시던 아버지
장마 때면 시름인 양 쌓인 빈 스트렙토마이신 병들
비료 푸대에 말없이 주워 담아 지게에 얹고
남몰래 마을 앞 냇가 쪽으로 무거운 발걸음 옮기셨던가
봄날이면 큼직한 나뭇단 눌러 쟁인 지게 위에
참꽃 한아름 자랑스레 꽂고 저녁놀 등에 지고 걸어오시던
아버지와 살던 고향 뒷산 붉은 참꽃 맛이 문득 그립다
아, 천생 부지런한 아버지 닮은 한 할아버지
독거 노인들 옹기종기 모여 사는 달동네
겨울 되면 집집마다 효도하듯 한층 빨갛게 타오를
연탄꽃, 그 환한 꽃지게 지고 계단을 오르신다
눈부신 서울 변두리
할아버지의 무겁지만 따뜻한 꽃지게
뒷모습이 아.름.답.다



-방통대 문학상 시 부문 수상작(가작)-
번호
제목
글쓴이
공지 우리 홈 게시판 사용 방법 file
오작교
2022-04-26 70534  
공지 테이블 매너, 어렵지 않아요 2 file
오작교
2014-12-04 81325  
공지 당국이 제시한 개인정보 유출 10가지 점검 사항 4 file
오작교
2014-01-22 98026  
공지 알아두면 유익한 생활 상식 7
오작교
2013-06-27 98611  
672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1
도담
2005-12-30 1194 15
671 새해 福 많이 받으세요...^^ 1
niyee
2005-12-30 1222 8
꽃지게/우경화
빈지게
2005-12-29 1204 13
669 눈물 먼저 고이는 그리움 6
하늘빛
2005-12-29 1209 2
668 어두운 곳 없도록.. 1
꽃향기
2005-12-28 1257 2
667 똥의 심층적 분석 6
안개
2005-12-26 1240 7
666 늦은 가을 2
고암
2005-12-25 1343 1
665 잠재우지 못한사랑/참이슬 1
김남민
2005-12-24 1161 17
664 울~가족님들 메리 크리스마스~~^^* 6
안개
2005-12-24 4096 86
663 다시 사랑의 싹을 1
차영섭
2005-12-24 1096 12
662 여기 가난한 마을에도 / 박해옥 1
빈지게
2005-12-24 1161 1
661 12월을 보내며 3
하늘빛
2005-12-23 1805 48
660 가는 해 오는 해 2
꽃향기
2005-12-23 1255 17
659 도전하는 노년 3
황혼의 신사
2005-12-23 1533 22
658 즐거운 성탄절 되시길.... 2
선한사람
2005-12-22 1263 16
657 ★ Merry Christmas ☆ 3
♣해바라기
2005-12-22 1218 18
656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2
빈지게
2005-12-22 1255 18
655 검정고무신/한인애
빈지게
2005-12-22 1306 20
654 민들레 뿌리/도종환
빈지게
2005-12-22 1188 2
653 말없이 사랑하십시오 -이혜인 3 file
하은
2005-12-22 985 4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