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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4,852
2006.09.24 00:45:13 (*.87.197.175)
1300

 


 


 



가을 아득한/마종기


 



 


아 정말, 잎 다 날린 연한 가지들
주인 없는 감나무에 등불 만개 밝히고
대낮부터 취해서 빈 하늘로 피어오르는
화가 마티스의 감빛 누드, 선정의 살결이
그 옆에서 얼뜬 미소로 진언을 외우는
관촉사 은진미륵, 많이 늙으신 형님.


야 정말, 잠시 은근히 만져보기도 전에
다리 힘 다 빠져 곱게 눕는 작은 꽃,
꽃잎과 씨도 못가린 채 날아가버리지만
죽은 풀, 시든 꽃가지, 집초 씨까지 모아
뜨거운 다비(茶毘)에 부쳐 사리나 찾아보고
연기 냄새 가볍게 품고 꽃을 떠날밖에.
 
저 산에 흥청이는 짙은 단풍에 비하면
옳다, 우리들의 일상은 너무 단순하다.
산 너머 저 쪽삧 바다에 비하면
옳다. 우리들의 쪽배는 너무나 작다.
그러나  살아온 평생은 운명일밖에.
눈을 뜬 육신의 마주침도 팔짜일밖에.


멀고 가까움, 높고 낮음이 가늠되지 않는
야 정말, 아득한 것만 살아남는 이 가을
어렵게 살아온 천지간의 이 가을.


 


 



 


-마종기님 시집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에서 -


 

댓글
2006.09.24 02:40:20 (*.36.158.133)
cosmos
빈지게님...
계절에 딱 맞는 글이네요.

삶에 철학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듯한...
멋진 글입니다.

잘 지내시죠?
울 빈지게님도 가을 타시나...
말수가 적어 지신듯 보입니다 ㅎㅎ...

건강하시구요!

댓글
2006.09.24 19:31:37 (*.249.117.233)
푸른안개
빈지게님~ 안녕 하시죠?

읽고 또 읽었읍니다.
요즘은 단풍도 이뿌지가 않데요.
나뭇잎이 병들어 그냥 말라버리니...
해피한 주말 잘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cosmos님 안뇽!!! ^^*
삭제 수정 댓글
2006.09.24 21:51:14 (*.205.75.19)
늘푸른
빈지게님!

이 가을
고운글에 흠뻑빠져
비틀거리면서 즐감하고 갑니다

고운글과
음악의 조화가 환상이네요

오늘도 편안하고 행복하세요^^**빈지개님!
댓글
2006.09.24 23:31:24 (*.87.197.175)
빈지게
cosmos 칭구!! 감사합니다. 얼마전에는 박성철님의
산문집을 한권 구입했었고, 어제 오전에는 미리 전
화로 주문을 했던 마종기님의 시집이 막 도착했다고
전화가 와서 곧바로 가서 사가지고 왔었지요.ㅎㅎ
새 책을 접할때의 상쾌한 그 기분 너무 좋았답니다.
첫사랑 하는 여인을 만났을 때의 느낌처럼 말예요.

칭구!!
저 가을을 타지는 않아요.ㅎㅎ
편안한 휴일 보내시길 바래요.^^*
댓글
2006.09.24 23:31:46 (*.87.197.175)
빈지게
푸른안개님!
갈수록 오염이 많이 되나 봅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님께서도 즐겁고
행복한 휴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댓글
2006.09.24 23:35:12 (*.87.197.175)
빈지게
늘푸른 형님!
휴일 잘 쉬셨나요?
음악은 제 넣지 않았는데 cosmos님이나 푸른
안개님께서 올려 주신 것 같습니다. 다시한번 감솨!!
편안한 밤 고운꿈 많이 꾸세요!!
댓글
2006.09.25 13:25:12 (*.118.25.23)
길벗
오빠 ~

'도대체, 이거 어떤 걸 올려야 좋은게야 ......'
가을밤을 책장마다 기웃거리는
오빠의 고뇌가 더욱
가을 맛 나게 합니다.
마티스의 이야기라니 ......

오빠 ~ 굿 !
댓글
2006.09.27 00:20:26 (*.87.197.175)
빈지게
길벗님!
고맙습니다. 편안한 밤 복꿈 많이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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