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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2007.07.31 01:17:58 (*.25.2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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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형이를 돌려줘요 - 이미자
1.두형아 내동생아 너 있는곳 어데냐
너를 잃은 부모님은 잠못들고 운단다
동에 가도 네가 없고 서에 가도 너없으니
낯선사람 정을붙여 엄마생각 잊었느냐

2.고사리 어린손아 노래하던 재롱아 너와 함께 놀던 동무 너를 찾아오는데 어느때나 돌아오리 죄도 없는 어린 목숨 애타는 엄마품에 두형이를 돌려줘요



두형아 내동생아 너있는곳 어데냐

너를 잃은 부모님은 잠못들고 운단다

동에가도 네가 없고 서에가도 너 없으니

낮선사람 정을 붙여 엄마생각 잊었느냐
어머니의애원 

여보세요 제발애원이요
아무것도 모르는 그 천진한 어린것을 

제품에 꼭 돌려보내주세요 네

세상의 부모마음은 모두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정말정말 애원이에요
고사리 어린손아 노래하는 재롱아

너와함께 놀던동무 너를찾아 오는데

어느때나 돌아오리 죄도없는 어린목숨

애가타는 엄마품에 두형이를 돌려줘요
 4살배기 2代독자 납치후 돈요구 편지 배달
 두형이 찾기 확산 … 공연장서도 구호 '헛수고'
 
 " 두형이를 돌려줘요 " 
이 노래는 온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사건의 노래다.
아니 자식을 가진 부모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우리나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어린이 유괴 사건이다
지금은 유괴사건이 많아졌지만 당시에는 처음으로 유괴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국민이 관심을 갖지 않을수가 없었다.
자식을가진 부모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 사건으로 불안에 떨게 됐다.
다시 말한다면 우리국민들은 이렇케 못된 사건 없이 평화롭게 살아왔다.
그러다가 두형이 유괴사건을 접하고보니 자식을 가진 부모들은 하루라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어떻케 이런 범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범행을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두형이 유괴사건은 1962년 9월 초순경에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에 살고있는 사업가 조병각씨,
당시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조씨의 외아들인 장남 조두형, 당시 네 살 어린이가 실종되면서 잉태됐다.
두형이 부모는 두형이를 찾으려고 두형이가 갈만한 곳은 다 찾아봤지만 끝내 두형이를 찾질 못했다.
이렇게 두형이를 애타게 찾던 두형이의 부모들은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혹시나 어디서 두형이가 살아있다는 기쁜소식이라도 오지 않을까 하며, 가슴을 조리면서 기다리는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이렇케 기다리기를 며칠이 흘렀다.
필자의 지금 생각으로는 한 삼일이 지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때 두형 네 집으로 편지가 한 통 배달 되었다.
두형이네 가족들은 이편지를 받으면서 혹시나 두형이가 살아서 잘있다는 기쁜 소식이라도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편지를 뜯어봤다.

이게 웬일인가.
편지 내용을 읽어 본 두형이네 가족들은 기절을 했다.
그 편지 내용은 이러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두형이를 죽여서 시신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우리가 두형이를 잘 데리고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돈을 준비하여 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리고 만약에 경찰에 신고할 시에는 당신의아들 두형이는 죽어서 싸늘한 시체로 당신네 집으로 배달이 될 것이다.
그러니 경찰에는 신고하지 말고서 돈이나 준비하고 있다가 우리가 다시 연락을 할테니 그때에 장소를 정하여 만나자는 내용의 편지였다.

두형이의 부모는 이 편지를 읽고 충격적인 내용에 혼절을 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형이는 이대 독자였다.
딸만 낳았던 집에서 아들이라고는 두형이 하나인데 이렇게 유괴 를 당한 것이다.
그러니 두형이 부모는 물론이요 그의 가족들은 심정이 어떠했을까.
정신을 가다듬은 두형이 부모는 경찰에 신고하기로 입장을 정하고 그 다음날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건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경찰에서도 다각도로 수사를 하지만 일이 쉽게 풀리지를 않고 수사는 점점 꼬여만 갔다.
이렇게 되니 두형이의 부모 심정은 어떠했을까.
온 가족이 아니 친척들이 다 모여서 전단을 찍어가지고 두형이를 찾는데 동서남북을 누비며
두형이 사진을 보이면서 두형이를 본 사람이 없느냐고 애타게 찾아보지만 두형이를 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신문방송을 통하여 광고를 해봐도 두형이를 찾는데 크게 도움이 되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방방곡곡 으로 전단을 돌리며 두형이의 사진을 붙쳤지만 그도 역시 아무런 효과를 보지를 못했다.
그러니 두형이 부모는 날이 가면 갈수록 초조하니 애타는 심정은 더해만 갔다.
이러다 보니 두형이의 아버지는 하던 사업도 전폐하고,
정신은 물론이요 육신까지도 몰라보게 망가져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끝내는 두형이 부모와 누나 할 것없이 식음을 전폐하고 쓰러지는 등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이렇게 되다보니 전국민이 알게되어 두형이 찾기운동을 펴고 전국에 있는 초중고등학교으로까지 두형이 찾기운동은 확산됐다.
그리고 전국민들까지도 내 자식같이 생각하고 두형이를 찾는데 힘을 모아 애타게 찾아봤지만 두형이는 찾을 길이 없었다.
이렇게 전국민들이 곳곳을 누벼도 두형이는 끝내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처음에 두형이네 집으로 편지를 보낸 사람도 그 후에는 다시 연락이 없었다.
그러니 경찰에서도 이 사건을 풀어볼  길이 없었다.
아무리 단서를 찾으려고 애를 써도 아무런 단서가 없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정부에서도 두형이 찾기에 다각도로 힘을 썼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연예인들도 극장에서 공연을 하면서까지 무대에서 우리 다같이 두형이를 찾아주자고 외쳐봤지만 헛수고였다.
이렇게까지 전국민이 두형이 찾기에 한마음이 되어 애타게 찾았지만 헛 수고였다.
이렇게 두형이 찾기를 한지 1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이때 아세아레코드회사 최치수 사장이 두형이 찾는데 보탬이 될지도 모르겠다며 착안한 계획이 노래를 만드는 거였고,
이로써 두형이를 돌려줘요란 노래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작사·작곡후 가수 한참 뜨던 이미자씨
정부 지원속 방송타고 삽시간에 퍼져
끝내 못찾아 … 생존했다면 40대 중반
 
두형이 유괴사건이 발생한지 1년이 되었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아세아 레코드회사 사장인 최치수씨가 착안하여
작사가인 반야월씨와 상의 끝에 두형이 찾기에 보탬이 될런지도 모르니 음반을 제작하여 널리보급하는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말을 들은 반야월씨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것도 좋은 생각이라고 답변을 하고서
두형이를 돌려주세요란 제목을 붙여 작사를 했다.
그리고  작곡가를 누구를 시켜야 할가하고 두 사람은 상의 끝에 당시 작곡가이면서도 편곡을 주로 많이 하던,
지금은 고인이 된 라음파가 어떠냐고 의논 끝에 의견을 같이했다.
라음파가 슬픈 곡조는 잘 쓰는 편이니 라음파로 하기로 합의를 하고 반야월씨는 작사를 하여 라음파에게 가사를 주면서
당신이 두형이 유괴사건을 잘알고 있으니 가사 내용을 잘 생각하여 듣는 사람이 감동,
마음을 움직이도록 연구해 곡을 쓰라고 당부했다.

그 곡을 받은 라음파는 반야월씨가 당부한 바를 잊지않고 심혈을 기울여 곡을 만들었다.
라음파는 만든 곡을 최치수 사장과 반야월씨가 있는 아세아 레코드회사에 와서 들려주었다.
두 사람은 라음파가 들려주는 노래를 조용이 듣고 있다가 이구동성으로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안았다.
노래는 이렇게 해서 잘만들어졌지만 노래를 부를 가수를 누구로 선정하느냐가 또 문제였다.
이렇게 세 사람이 한참을 연구했으나 답을 얻지 못하고 고민들을 했다.
이렇게 고민하기를 몇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중 이미자가 어떨런지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당시 가수 이미자씨는 데뷔한지 얼마데지 안됐을 때다.
그러면서도 인기가 서서이 올라가는 가수였다.  
지금으로 표현한다면 뜨는 가수였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애수적인 목소리였다.
그러니 이미자에게 잘 맞을거라고 생각들을 하고 이미자를 불러다가 연습을 시켜봤다.
그랬더니 노래가사나 곡조가 딱맞아 떨어졌다.

이렇게해서 최치수 사장과 반야월씨 라음파씨 이 세 사람은 이미자씨로 결정하고,
즉시 연습에 들어가면서 빠른 속도로 레코드 취입을 하게됐다.
레코드가 발매되기가 바쁘게 레코드는 각 대리점을 통해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판매가 됐다.

이 때에 정부에서도 두형이 찾기운동에 적극 협조를 하였다.
그래서 각 방송국에 협조를 요청하여 두형를 돌려줘요란 노래를 방송 해줄 것을 당부, 매일 라디오 방송으로 이 노래가 퍼져나갔다.
그러다보니 이미자씨의 슬픈 목소리는 듣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는데 좋은 소식은 들리질 안았다.
이렇게 전국민이 두형이를 찾고자 애를 쓰건만 유괴된 두형이는 찾을길이 더욱 막막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 노래를 들을 적마다 애타는 두형이 부모를 생각하여 모두가 한마음으로 같이슬퍼했다.
그 것뿐이 아니다.
두형이를 돌려줘요 이 노래는 노래가사 속에서 흘러나오는 대사가 있다.
두형이 어머니 입장에서 하는 대사다.
" 여보세요 제발 애원이에요. 아무 것도 모르는 그 천진한 어린것을 제품에 꼭 돌려보내주세요. 네.
부모 마음은 모두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정말 정말 애원이에요. 네. "
이렇게 성우의 떨리면서 흐느끼는 목소리로 대사가 흐른다.
이 대사에 듣는 사람들은 울지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노래로서 감동을 시켜 두형이를 보내달라고 애원을 하건만 이 유괴를 한 사람들은
이 노래를 들었는지 아니면 못들었는지 아무런 대꾸가 없다.
사람이라면 이미자의 슬픈 목소리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이미자씨의 노래에 다들 우는데
어찌하여 유괴를 한 사람들은 감정도 눈물도 없단 말인가.
아니 그들은 자식도 없단 말인가.
노래 예술은 짧은 시간이지만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웃기는 예술이다.
그렇기에 이 노래를 듣고 우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유괴범도 이 노래를 듣고 감동하여 두형이를 돌려줄까 하는 애타는 심정에서 예술가까지 두형이 찾기에 애를 썼것만
이렇게도 냉혈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한 생각이 든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정부에서도 두형이 찾기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고, 전국민이 하나가 되어 찾았으나 끝내 두형이는 찾질 못했다.
여기서 하나 강조할 것은 두형이를 찾고자 노래까지 만들어서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을 이용하여 애를 썼지만
그도 소용이 없는 걸로 봐서는 두형이를 유괴한 범인은 참으로 잔인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서 당시에 두형이를 찾는 언론기관의 상황을 살펴보자.
극장에서 본 영화를 하기전에 예고편이 방영되며 이어서 대한뉴스라는 삭막한 영화가 상영이 되고, 이어서 본 영화가 상영된다.
그 때에 대한뉴스에서까지 이미자씨의 슬픈목소리로 두형이를 돌려줘요를 들려준다.
이미자씨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영화를 보러왔던 관객들은 이미자의 흐느끼는 목로리에 본 영화도 보기 전에 먼저 울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이렇케까지 노력을 했어도 두형이를 찾질 못했다.

이것 뿐이 아니다.
당시 경향신문에는 이러한 기사가 실려있었다.
어릴 때 양친을잃고 14년간이나 철도검사원 노릇을 하다가 10년 전부터 레코드 업계에 진출한 최치수 사장은
[1] 시골에는 유성기 있는 집에 사람이 많이 모이고
 [2] 엠프 시설이 광범이하고
[3]레코드의 지방보급이 빠르다는점 등에 착안하여 레코드 업자들도 거국적인 이 운동에 참여할 길을 찾은 것이
마침내 두형이 찾기 노래를 레코드 제작하게 되었다 한다.
인간의 착한 마음씨를 예술로서 되찾아보자는 이 노래는 오는 25일 취입이 완료된다.

이상은 당시 경향신문의 기사를 소개한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렇게 전국민이 두형이 찾기 운동을 거국적으로 폈으나 두형이는 끝내 돌아오지않고, 아니 찾질 못하고
노래만 남아 국민들이  애창하며 울곤했다.
아니 필자도 술만 한 잔 하고 취하면 두형이 부모의 애타는 심정을 생각하며 이 노래를 부르면서 울어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아니 이 노래를 작사한 반야월씨도 이 노래를 듣고 울고 이 노래를 작곡한 라음파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 울곤했다.
그렇게 애타게 찾던 두형이는 찾질 못하고 애타게 찾던 그의 노래만 남아 있으니
이 글을 쓰는 필자의 심정은 씁쓸하기 만 하고 웬지 가슴이 뭉클하니 눈물이 곧 터질 것만 같다
지금 두형이가 살아 있다면 40대 중반이 넘지안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김명환 한국가요작가협회 작사·작곡가
 
댓글
2007.07.31 07:19:47 (*.204.44.1)
오작교
어렸을 적..
그러니까 이 사건이 난 것이 1962년이었으니 제가 '국민학교'에 입학을 하던 해로군요.
이 노래를 참 잘 불렀던 이모님이 계신 덕으로
이 노래를 빨리 배웠었습니다.
어슴프레 '두형'이의 유괴사건으로 시끌적 했던 당시의 모습들이
기억이 되고요...
45년을 훌쩍 뛰어 넘어 갔다 옵니다.

"잊혀진 사간들" 게시판에 올려졌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댓글
2007.08.08 08:27:15 (*.253.54.80)
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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