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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싸리는 연기를 내지 않는다/허만하
가을 싸리는
불길 속에서도 연기를 내지 않는다
극한을 견딘 죽음은 정갈하다
사람들은 지금 가을을 거부하지만
가을 물든 잎새들은 벌써
저마다의 최후의 몸짓이 되고 있다
수천 수백의 잎새가 지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지는 것은 잎새 하나의 감수성이다
최후의 한 잎이 잔가지를 떠나는 때
세계의 가을이 소리 없이 쓰러진다
정령치 해발 1천 172미터의 전망은 넓다
전망은 높이가 아니다
높이는 본능처럼 가을을 먼저 느끼는 감성이다
반야봉에서 천왕봉으로 너울지는 능선의 배경은
코발트 블루 하늘이 아니라 역사의 가을이다
참싸리는 높이에서만 자란다
산마루에서 싸리꽃 자주색은 반란처럼 외롭다
떨어지는 잎새의 가을은 한 번뿐이지만
산청에서 남원으로 흩어져있는 지명은
한 해에 복수의 가을을 가진다
푸른 낙옆이 지던 또 한 번의 가을을 기억한다
잎 진 나뭇가지를 건너는 아득한 바람 소리
계곡의 반쯤은 올해도 고동색 낙엽에 덮인다
풀 넝쿨이 전나무숲 우듬지처럼 직립할 때까지
나는 가을의 사상을 흔드는 은빛 억새 물결이다
죽음은 마른 싸리 불꽃으로 타올라라
가을 싸리는 연기를 내지 않는다
가을에는 깨끗한 사라짐이 있을 뿐이다
정령치재는 지금 눈부신 가을이다
그냥 지나처서 송구한 마음입니다~
그 덕에 고운 글 다시 한번 감상하니 더 좋습니다~
참, 큰 결례를 할 뻔하였군요~
지난 태풍에 많은 격려덕에 마무리 잘하였음을 보고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