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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4,852
2007.11.08 16:26:58 (*.202.148.183)
1278



       
      * 가을에 심는 나무
      
      
      나는 가을에 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때를 놓친 게 아닙니다
      나의 가을나목(裸木)을 심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버금 가지 두어 개와
      그 버금 가지에서 다시, 무수한 이상(理想)이 자라나
      서른 해쯤 지나길 기다리렵니다
      누구나 부러운 아름드리 나무이면 좋겠지만
      무엇보다, 곧고 밝게 자라는  
      우리의 아이들이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봄 여름을 수 없이 지나오는 동안 
      돋아나지 말았어야할, 없어도 좋을 많은 것들이 돋아났기에
      허황한 잎이며, 제멋대로 뻗은 가지
      울 담 아래를 지나
      다른 이의 가슴까지 뻗은 뿌리, 밑둥으로 잘라냈습니다
      그리고는, 평생의 회한(悔恨)과 환희(歡喜)도 함께 묻고
      그로 흘린 눈물로 
      흠뻑 물을 주어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바라건데, 두 가지 중 한 가지는
      모두를 위하는 냉철(冷徹)한 이성(理性)으로 
      남은 한 가지는
      아픔이나 증오(憎惡) 없는 감성(感性)으로 돋아나 
      조화로운 이상(理想)을 펼치는 나무였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무수한 사랑의 이파리들로 그늘 넓어
      아이가 마음대로 뛰놀 수 있고
      그걸 바라보며 뜨개질하는 엄마가 있는 풍경이었으면 합니다  
      
      서른 해 정도면
      가을에 나무를 심은 이는 
      세상에 없거나, 있어도 심은 걸 기억도 못하게 될 테지요
      허지만, 
      회한(悔恨)의 의미는 뿌리에 남아 우리아이들에게도 전해지겠지요
      말 한마디
      글 한줄
      행동 하나하나 역지사지(易地思之).....
      그 슬기, 바람처럼 이세상을 고르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0711. 邨 夫 Ador.
      
삭제 수정 댓글
2007.11.09 10:12:46 (*.5.77.184)
최고야
고운글
잘 보고 갑니다
저도 가을에 나무를 심고 싶습니다
댓글
2007.11.09 21:49:57 (*.202.154.153)
Ador
어제가 입동이네요~
한 해의 마무리 계절, 겨울.....
많은 회의가, 가을의 정서에 눌러붙어 불면의 밤이 잦아집니다.

무엇을 남기고 갈까.....
사람이면, 꼭, 무언가라도 남겨야하는 걸까.....

후손이 보는 조상,
오래 얼굴 대하며 살다 남겨진 이들에게의 의미.....
어떻게 마무릴질까.....

깊어진 상념이 다시 불을 켜고 앉게하고,
생각과는 다르게 글은 껍질만 엮다가 밤을 샜습니다.

중년으로 들어설 때부터여야 했는데......
너무 늦은 건 아닌지 혼자 있는시간이 두려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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