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습니다.

글 수 4,852
2013.12.23 10:53:56 (*.120.212.56)
1767

어느 남편의 일기

결혼 8년차에 접어드는 남자입니다.
저는 한 3년 전쯤에 이혼의 위기를
심각하게 겪었습니다.
...
그 심적 고통이야 경험하지 않으면
말로 못하죠. 저의 경우는 딱히
큰 원인은 없었고 주로 아내 입에서
이혼하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더군요.
저도 회사생활과 집안 일로 지쳐있던 때라
맞받아쳤고요.

순식간에 각방 쓰고 말도 안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화가 없으니
서로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 갔고요.
사소한 일에도 서로가 밉게만 보이기
시작했죠. 그래서 암묵적으로 이혼의
타이밍만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도 눈치가 있는지
언제부턴가 시무룩해지고, 짜증도
잘 내고 잘 울고 그러더군요.
그런 아이를 보면 아내는
더 화를 불같이 내더군요.
계속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가 그러는 것이 우리 부부 때문에
그런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요.
가끔 외박도 했네요.
그런데 바가지 긁을 때가 좋은 거라고
저에 대해 정내미가 떨어졌는지
외박하고 들어가도 신경도 안 쓰더군요.

아무튼 아시겠지만
뱀이 자기 꼬리를 먹어 들어가듯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었답니다.
그러기를 몇 달,
하루는 퇴근길에 어떤 과일 아주머니가
떨이라고 하면서 귤을 사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에 다 사서 집으로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주방 탁자에 올려놓고 욕실로
바로 들어가 씻고 나오는데, 아내가
내가 사온 귤을 까먹고 있더군요.

몇 개를 까먹더니
"귤이 참 맛있네.”
하며 방으로 쏙 들어가더군요.

순간 제 머리를 쾅 치듯이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아내는 결혼 전부터
귤을 무척 좋아했다는 것하고,
결혼 후 8년 동안 내 손으로 귤을
한 번도 사 들고 들어간 적이 없었던 거죠.
알고는 있었지만 미쳐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뭔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예전 연애할 때 길 가다가 아내는
귤 좌판상이 보이면 꼭 천원어치 사서
핸드백에 넣고 하나씩 사이좋게
까먹던 기억이 나더군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해져서
내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답니다.

시골집에 어쩌다 갈 때는
귤을 박스채로 사들고 가는 내가
아내에게는 8년간이나 몇 백원 안하는
귤 한 개 사주지 못했다니
마음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 후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전혀 쓰지 않게 되었다는 걸 알았죠.
아이 문제와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말이죠.

반면 아내는 나를 위해 철마다 보약에
반찬 한 가지를 만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신경 많이 써 줬는데 말이죠.

그 며칠 후에도
늦은 퇴근길에 보니 그 과일
좌판상 아주머니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또 샀습니다.

저도 오다가 하나 까먹어 보았구요.
며칠 전 아내 말대로 정말 맛있더군요.
그리고 살짝 주방탁자에 올려놓았죠.

마찬가지로 씻고 나오는데
아내는 이미 몇 개 까먹었나 봅니다.
내가 묻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않던 아내가

“이 귤 어디서 샀어요?”
“응 전철 입구 근처 좌판에서”
“귤이 참 맛있네.”

몇 달 만에 아내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도
몇 알 입에 넣어 주구요.
그리고 직접 까서 아이 시켜서
저한테도 건네주는 아내를 보면서
식탁 위에 무심히 귤을 던져놓은
내 모습과 또 한 번 비교하며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뭔가 잃어버린 걸 찾은 듯
집안에 온기가 생겨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아내가 주방에 나와 아침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보통 제가 아침 일찍 출근하느라
사이가 안 좋아진 후로는 아침을 해 준적이
없었는데, 그냥 갈려고 하는데, 아내가
날 붙잡더군요.
한 술만 뜨고 가라구요.

마지못해 첫 술을 뜨는데,
목이 메여 밥이 도저히 안 넘어 가더군요.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같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미안했다는
한마디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부끄러웠다고 할까요.
아내는 그렇게 작은 일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작은 일에도 감동받아
내게로 기대올 수 있다는 걸 몰랐던
나는 정말 바보 중에 바보가
아니었나 싶은 게

댓글
2013.12.24 08:11:23 (*.142.164.40)
오작교

옛 어른들의 말씀이 있습니다.

'부부가 싸움을 하더라도 잠은 꼭 한방에서 자야한다'는 말씀.

 

각방을 쓰지않고 한방을 썼더라면 더욱 빨리 해결이 되었을

부부의 문제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댓글
2013.12.24 12:00:19 (*.120.212.56)
청풍명월

그렇습니다 부부싸움은  깔로 물베기 라고

하지만 서로 용서하고 이해 해야지요

번호
제목
글쓴이
공지 우리 홈 게시판 사용 방법 file
오작교
2022-04-26 69731  
공지 테이블 매너, 어렵지 않아요 2 file
오작교
2014-12-04 80502  
공지 당국이 제시한 개인정보 유출 10가지 점검 사항 4 file
오작교
2014-01-22 97211  
공지 알아두면 유익한 생활 상식 7
오작교
2013-06-27 97804  
어느 남편의 일기 2
청풍명월
2013-12-23 1767  
4531 (손바닥 수필) 붕어빵 2
청풍명월
2013-12-22 1855  
4530 참 친구란? 1
청풍명월
2013-12-22 1708  
4529 바람처럼 떠날수 있는 삶 2
청풍명월
2013-12-21 1818  
4528 먼 길 돌아온 인생의 노을 2
청풍명월
2013-12-21 1714  
4527 한번 웃어 보더라구요 3
청풍명월
2013-12-20 2091  
4526 분노가 고여 들거든 2
청풍명월
2013-12-20 1662  
4525 대자보가 메아리를 얻고... 2 file
오작교
2013-12-20 1587  
4524 성공하는 말의 법칙 1 file
청풍명월
2013-12-19 2179  
4523 진실은 가슴속에 있습니다 3
청풍명월
2013-12-19 1675  
4522 숙제하듯 살지말고 축제하듯 살자 1
청풍명월
2013-12-19 1666  
4521 돌을 치워보니까 1
청풍명월
2013-12-19 1838  
4520 베풀면 반드시 돌아 옵니다--!! 6
청풍명월
2013-12-17 2059  
4519 登山과 人生 2
청풍명월
2013-12-17 1797  
4518 감동 실화 브라운과 주디스의 사랑 2
바람과해
2013-12-17 2011  
4517 누가 더 부자일까? 1
청풍명월
2013-12-16 1750  
4516 우리네 인생 그리 길지도 않은데 3
청풍명월
2013-12-12 1863  
4515 먼길 돌아온 인생의 노을 2
청풍명월
2013-12-12 1730  
4514 노년에 물드는 낙엽 1
청풍명월
2013-12-11 1742  
4513 자갈치 아지매-----김동아 7 file
청풍명월
2013-12-07 1999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