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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석문

귀비 1967

3
조지훈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희 슬픈 영혼의 모습니다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남긴 푸른 도포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 감을 어찌합니까?


 

  몇만 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 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 허공 중천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 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뭇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 년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 조지훈 시인의 시, '석문 (石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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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비 글쓴이 2008.07.10. 12:02
돌문, 나무문, 철문, 유리문, 싸리문, 토문

모두 드나드는 통로일 텐데
저마다 느낌이 달라요
돌문..
그 안에는
영겁의 시간이 있고, 첩첩이 쌓인 침묵이 있고
그리고 어둠일 듯

기다리는 사람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는 열리는 돌문

기다리는 사람이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한 줌 티끌로 사라지는

오직 기다림을 위한 육체

돌아온 사람은
천년동안의 안부를 묻고
다시 천년을 앉아 기다리라고 하고 총총 문밖으로 사라져 ~..
간혹 그리움에 복사꽃빛 홍조가 돌기도 하는
기억만 움켜진 육체

재처럼 흘러내리는
적막한 몸

지금 내 몸은 거의 허물어졌어
너의 기억만
피와 살로 남아 있어
너는 어디 있니
너는 어디 있니.. 하고

어디에 가도..
"덥죠..?" 라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요?
그래도 웃음잃지 않고 여유있는
마음으로 "덥죠..? 하고 안부를..


향기나는글 2008.07.13. 22:31
낭송방에 낭송 올렸습니다
귀비 글쓴이 2008.07.16. 15:01
향기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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