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가기
  • 아래로
  • 위로
  • 목록
  • 댓글
희망

뚝딱, 한 그릇의 밥을 죽이다

우먼 4228

1
이덕규

뚝딱, 한 그릇의 밥을 죽이다 / 이덕규

먼 들판에서 일에 몰두하다 보면 문득 허기가 밀려와 팔 다리를 마구 흔들어댈 때가 있다
사람을 삼시세끼 밥상 앞에 무릎 꿇여야 적성이 풀리는 밥의 오래된 폭력이다
때를 거르면 나를 잡아먹겠다는 듯이 사지를 흔들어대는 허기진 밥의 主食은 그러니까, 오래 전부터 사람이다
결국 사람은 모두 밥에게 먹힌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이 빈 밥통의 떨림,
그러나 캄캄한 우물처럼 깊고 고요한 밥통의 중심에 내려가 맑은 공명을 즐기듯
먹먹하게 담배를 피워 물고 논두렁에 가만히 앉아 잇어면 어느 순간
감쪽같이 배고픔이 사라지고 어떤 기운이 나를 다시 천천히 일으켜 세우는 것인데, 그 힘은
내 마음 어딘가에서 밥을 제압하기 위해 흘러나오는
또 다른 밥의 농밀한 엑기스인 치사량의 毒과 같은 것이다

사나흘 굶고도 그 알 수 없는 기운으로 벌떡 일어나 품을 팔았던 어머니들처럼
수시로 닥치는 밥의 위기 때마다
마지막인 듯 두 눈 부릅뜬 채 막다른 곳으로 밥을 밀어붙이면 비로소 밥은 모락모락
두 손 들고 밥상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래 먼 들판에서 하던 일 마저 끝내고 허적허적 돌아와
그 원수 같은 한 그릇의 밥을 죽이듯 뚝딱, 해치우고 나면
내 마음의 근골 깊숙이 묻힌 절미항아리에
낮에 축낸 한 숟가락의 독이 다시 끄르륵, 들어차는 소리 듣는 것이다


공유
1
은하수 2009.07.05. 23:52
잘 읽고갑니다 우먼님! ^^*
건강하세요..♡
댓글 등록
취소 댓글 등록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목록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번호 시인이름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오작교 기타 태그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오작교 10.09.12.22:57 78399 0
공지 기타 이 방의 방장님은 동행님입니다. 6 오작교 08.10.05.21:25 75070 +62
공지 기타 이 게시판에 대하여 2 오작교 08.05.18.21:33 82370 +73
58 박예숙 희망
normal
바람과해 18.09.07.10:52 3173 0
57 배혜경 희망
normal
바람과해 16.05.10.11:06 2496 0
56 강남주 희망
normal
동행 16.04.04.23:24 2513 0
55 신호균 희망
normal
바람과해 14.10.12.10:49 3265 0
54 이영숙 희망
normal
바람과해 14.09.09.16:33 3562 0
53 박노해 희망
normal
루디아 14.07.03.22:35 2988 0
52 장광운 희망
normal
바람과해 14.06.19.10:14 2812 0
51 시현 희망
normal
동행 13.07.27.08:35 2935 0
50 권대욱 희망
normal
진리여행 11.07.15.13:46 5869 0
49 김정아 희망
normal
바람과해 11.04.18.12:24 7631 0
48 정석희 희망
normal
바람과해 10.12.20.22:55 2506 0
47 김사인 희망
normal
시내 10.11.10.06:38 2719 0
46 김영화 희망
normal
바람과해 10.10.22.11:16 3641 0
45 이해인 희망
normal
은하수 10.02.05.01:15 3234 0
44 김영달 희망
normal
데보라 10.01.04.17:53 2414 0
43 이해인 희망
normal
은하수 09.09.17.23:15 1870 +4
42 희망
normal
은하수 09.07.14.00:32 1981 +16
41 희망
normal
은하수 09.06.25.23:24 2732 +11
희망
normal
우먼 09.05.25.09:59 4228 +24
39 희망
normal
은하수 09.05.21.11:48 2211 +20